동네에도 정신과 있는 세상인데…"우울증 약먹어요" 고백했더니

한유주 기자 2023. 4. 1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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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증세 살피지 않은 일률적 가입 거절은 '차별'"
일부 정신질환 실손 보장되지만…"위험률 관리 어려워" 난색
ⓒ News1 DB

(서울=뉴스1) 한유주 기자 = 경증의 우울증을 앓는 환자의 실손 가입을 구체적 심사 없이 거절한 것은 '차별'이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판단을 보험사들이 수용했다. 이를 계기로 정신질환 병력이 있을 경우 보험가입이 거절되거나 보험금이 적게 지급되는 차별적 관행이 시정될지 주목된다.

11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인권위는 지난해 8월 우울증 환자 A씨의 실손보험 가입을 거절한 보험사 2곳에 보험 인수기준 재정비와 A씨에 대한 재심사를 권고했다.

사건은 2020년 10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증의 우울증을 앓던 A씨는 실손보험 가입을 위해 B보험사에 상담을 의뢰했다. A씨는 상담 과정에서 그해 2월부터 경증의 우울증으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B보험사 상담원은 1시간 이후 A씨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약물 복용 중으로 가입이 어렵다"며 "약물을 끊은 후 1년이 지나야 심사라도 할 수 있다"고 안내했다.

A씨는 또다른 C보험사에도 상담을 의뢰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A씨는 금융감독원 민원을 거쳐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고, 인권위는 A씨의 주장을 받아들여 두 보험사에 재심사와 재발방지책 마련을 권고했다.

보험사들은 인권위 권고를 대부분 수용하기로 했다. B보험사는 인권위에 "우울증 치료 중에도 가입을 연기하지 않고 서류를 통해 중증도를 파악한 후 인수 여부를 결정하기로 인수 심사기준을 개정했다"며 "치료 중이라도 진단명과 치료내용, 현 상태 등을 서류 검토해 경증인 경우에는 인수(할증)가 가능하다"고 답했다. 또 "진정인이 희망할 경우 재심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C보험사도 "질환의 발생 원인과 치료 경과 등에 따라 세분화해 완치가 가능한 경우 인수를 검토하겠다"며 "치료가 종결된 후 일정 기간 경과를 전제조건으로 하는 경우에도 단순히 심사를 연기하거나 가입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의학적 타당성 검토 등 추가 심사절차를 진행하도록 인수기준을 개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A씨처럼 정신질환 병력이 있는 소비자들이 보험 가입을 거절당하거나 보험료가 할증되는 일은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특히 우울증 환자들은 자살률이 높고 치료비도 많이 부담해 그 위험부담을 보험사들이 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인권위도 이번 결정문에서 "영리를 추구하는 보험회사가 위험률을 관리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진정인에 대한 보험가입 거절은 일정 정도 타당해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A씨의 우울증 정도나 건강상태 등을 구체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단순히 우울증을 앓는다는 이유만으로 실손가입을 거절한 것을 문제 삼았다.

2016년 전까지는 실손보험으로 정신질환 치료비를 보장받을 수 없었지만, 2016년 실손보험 표준약관이 개정되면서 우울증·기억상실증·편집증·공황장애·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대체로 증상이 명확해 치료 목적을 확인할 수 있는 정신질환은 보장이 가능해졌다.

이에 보험사들도 단순히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가입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각사가 마련한 기준대로 보험계약 인수를 결정한다. 우울증 치료 종료 이후 1~5년이 지나면 실손가입이 가능하고, 입원력이 있거나 치료가 종료된 지 얼마 안 됐다면 보험료가 할증되는 식이다.

이렇게 기준이 마련돼 있는데, 구체적인 심사 없이 가입 상담 과정에서부터 보험가입이 막힌 것은 명백한 차별이란 게 인권위의 판단이었다.

보험업계에서도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유병률이 늘고 있는 만큼,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데는 공감하는 분위기다.

다른 질병 대비 정신질환은 증상에 대한 예측이 어려워 민감할 수 있지만, 관련 수요가 늘고 있는 만큼 제도적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신질환의 경우 사회적 인식 때문에 치료나 진단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보험사들이 증세와 관계없이 정신질환 유병자에 대한 인수에 소극적이면 되레 병력을 숨기고 보험가입을 시도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코로나 이후로 정신건강 문제가 중요해지고 있고, 유병자보험을 강화하는 측면에서 보험사들도 관심을 두고 있는 문제"라며 "인수기준을 촘촘히 만들고 개인의 상태에 맞게 심사할 수 있도록 절차를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why@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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