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유럽 최대 반도체 기업이 말하는 장수 비결… “최고 인재는 기업 문화에서 나온다”

황민규 기자 2023. 4. 11.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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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 30년간 자사 DNA로 ‘지속가능성’ 강조
직원 창의성, 인재 유입 위해 유연한 근무제도 필수
인력 유출 막으려면 ‘리더십 모델’ 구축 필요
라지타 드수자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사(HR) 및 사회공헌(CSR) 부문 사장./ST 제공

“근무지로의 복귀가 대세인 지금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재택근무와 주40시간 근무를 원칙적으로 고수하는 것은 사람이 반도체 기업의 중심이라는 철학 때문입니다. 최고의 인재를 회사로 끌어오고, 직원들의 창의성을 최대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이처럼 유연한 인재 전략이 필요합니다.”

라지타 드수자(Rajita D’souza)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인사(HR) 및 사회공헌(CSR) 담당 사장은 10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유럽 최대 반도체 기업이자 세계 ‘반도체 백화점’으로 불리는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는 유럽 내에서 가장 오래된 반도체 기업이자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근속연수가 긴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반도체 업계가 불황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ST마이크로의 실적은 탄탄대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매출액은 161억달러(한화 21조원)로 기대치를 상회했으며 올해 매출 전망치 역시 178억달러(23조원) 수준으로 꾸준한 성장세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ST의 주요 매출 포트폴리오 중 하나인 전기차 시장이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면서 집중적인 수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ST마이크로는 까다로운 것으로 정평이 나있는 유럽연합(EU)의 환경규제에도 보조를 맞추며 꾸준히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인텔, 엔비디아 등 주요 반도체 기업들이 미국 정부의 과불화화합물(PFAS) 규제에 대항해 로비 연합을 만들어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와중에도 ST마이크로의 경우 일체의 로비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드수자 사장은 “ST는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반도체 산업과 관련한 규제를 꾸준히 추적하고 측정해왔기 때문에 (규제는) 전혀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라며 “타사와 같은 대정부 로비 활동이 전혀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철저하게 대비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뿐 아니라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반도체 업계 인력난에 대해서도 “인재를 비즈니스 전략의 중심에 둬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반도체 기업의 성장 동력은 곧 사람의 창의성이며 이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연한 근무 제도와 문화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드수자 사장과의 일문일답.

−삼성전자나 인텔 등 다른 반도체 회사가 핵심 DNA로 혁신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ST는 늘 ‘지속가능성’을 강조한다. ST가 말하는 지속가능성이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지속가능성이란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기술을 개발해 고객사들이 사람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도록 돕는다. 사람과 지구를 우선순위로 삼아 반도체 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대한 줄이고자 한다. 사실 이런 부분은 ST에서 새로운 것이 아니다. 지난 30년간 지속가능성은 비즈니스 모델과 기업 문화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지속가능성의 개념도 30년간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진화한다.

지속가능성은 ST의 경영 활동 전반에 깊이 녹아져 있다. 이미 1990년대 초반부터 준비를 해왔다. 에너지, 물, 가스 사용을 줄이는 툴, 장비 등에 투자하는 것은 단순히 환경보호 뿐만 아니라 회사의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에너지 사용 절감에 투자했을 때 투자 회수 기간이 평균 3년 정도라는 것을 발견했고, 에너지 소비 폐기물을 줄여왔다. 그래서 반도체 기업으로는 최초로 2027년 탄소중립을 달성한다는 목표를 세울 수 있었다.”

라지타 드수자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사장./ST 제공

-지속가능성을 목표로 한 경영 방식이 결과적으로 반도체 신기술, 신제품 개발에도 선순환 효과를 발휘한 것인가.

“ST의 비즈니스 전략은 기본적으로 세 가지 장기 트렌드를 설정해 출발한다. 전기차와 같은 스마트 모빌리티, 사물인터넷(IoT)과의 연결성이다. 반도체 제품을 혁신해 저탄소, 에너지 효율 제품군을 늘리고 지속가능성이 사회적 차원으로도 환원되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친환경적인 제품이 나온다. ST의 경우 전체 제품의 67%가 리스폰서블 프로덕트로 분류되는데, 이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성을 지원하는 검증된 제품을 의미한다. ST는 기술이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반도체 기술은 청정하고, 안전하고, 스마트한 사회로 전환하는 핵심 동력이기도 하다.

-최근 한국을 비롯한 각국 반도체 회사들이 인력난을 호소하고 있다. 인재 역시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지표 중 하나인데 ST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ST는 사람을 회사 비즈니스 전략의 중심에 둔다. 직원들의 창의성이 회사가 내세운 목표 달성의 필수 동력이다. 따라서 직원들의 민첩성, 생산성 등을 발휘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최고의 인재들을 회사로 끌고 오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들이 가진 기대를 반영해야 한다. 대표적으로 ST는 세계 각국에서 근무지로 복귀가 대세인 것과 달리 업무 환경의 유연성을 위해 재택근무 정책을 가져가고 있으며 주 40시간 근무를 엄격하게 지키고 있다. 필요에 따라서는 근무 환경을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가져가 직원들의 ‘워라밸’을 보장할 수 있도록 근로 시간을 적절하게 조정해줘야 한다.

-인텔, 삼성전자와 같은 대형 반도체 기업들은 핵심 인력들이 타사로 유출되는 문제로 고민이 커지고 있다. ST가 인재들을 빼앗기지 않는 노하우가 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리더십 모델이다. 리더십 모델이란 것은 조직에서 필요한 공통적 요구 사항을 행동 지침으로 규정한 것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에 대한 부분과 사람과 사람 간의 도덕성 등 인간적 가치를 중요시 한다. 이는 회사가 미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과정 역시 리더십 모델에 반영돼 있다.

리더십 모델은 특히 회사가 장기적 목표를 가지고 가는 전략이자 프로그램이다. 특정 조직의 수장이나 CEO가 바뀌더라도, 혹은 반도체 업계 환경이 급변해도 리더십 모델은 시스템적으로 변화가 없어야 한다. 회사가 3년, 5년 등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와 연결돼 있는 것이다. 그걸 위해 ST는 리더들의 행동 지침을 아예 규정해놨다.

-유럽에서는 3대에 걸쳐 ST에 근무하는 사례가 많을 정도로 근속연수가 긴 편이다.

“소속감이 매우 강한 조직이기 때문인 것 깉다. ST는 전 세계 115개국에 5만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이 있는 아주 큰 회사지만 가족적이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회사가 안정적인 소속감을 제공하는 것 역시 중요한 전략으로 삼고 있다는 의미이며, 기여에 대한 적극적인 인정 역시 중요한 요소다. 일부 직원들은 ST가 자신의 ‘핏 속에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ST가 추구하는 ‘인재 전략’이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자면 ST는 사람을 가장 큰 자산으로 여긴다. 특히 최근 젊은 세대에게 이러한 부분을 많이 어필하고 있다. 단순히 지속가능성을 추구하는 ‘착한 기업’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환경, 사회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혁신한다는 기업이어야 한다. ST가 매출의 12%를 연구개발(R&D)에 투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속가능성을 30년 동안 강조한 기업은 흔치 않다. 건내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리더십이 핵심적이다. 인재, 환경, ESG 등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타협 없이 이를 추구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소수의 경영진 몇명이 이뤄낼 수 있는 목표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인사를 담당하는 HR 부문을 중심으로 큰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인사는 결국 회사의 리더십을 개발하는 부서다. 기업 문화와 직원들에 대한 복리후생 등 새로운 시대에 맞는 목표를 설정하고 달성하기 위해서는 리더십 모델을 완전하게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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