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교 칼럼]동맹국 배려한 美 전기차 보조금 지침
미국 행정부가 지난해 8월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상의 보조금 규정을 발표하자 국내 전기차 업계는 충격을 받았다. 당시 미국이 언급한 ‘전기차 세액 공제 시행 지침’은 초미의 관심사였다. 3월 31일 나온 보조금 시행 지침은 우려와 달리 미 행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완화 조치가 대거 포함됐다.
IRA법에 명시된 북미 조립 조건은 어쩔 수 없었지만, 국내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가 혜택을 볼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지난해 10월 말 착공한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카운티의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공장(HMGMA)이 2025년 상반기에 완공되면 조립 조건도 충족시킬 수 있어 IRA 상의 보조금 혜택 범위도 확대될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보조금 시행 지침은 동맹국을 배려하면서 미국내 산업 여건까지 고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미지역 외에 미국이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 체약국으로 보조금 대상 지역을 대폭 넓혔고, 부가가치 계산 방식과 구성 재료 개념 등으로 규정된 배터리 적격 요건을 충족시킬 경우 국내 기업들도 IRA 보조금을 기대할 수 있도록 했다. 완성차 업체는 핵심광물의 국내 조달 유인을 갖게 됐고, 이에 따라 국내 핵심광물 공급망이 확충될 수 있다.
그동안 미 재무부는 국내외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면서 미국 내에 전기차 공급망이 아직 충분치 못한 상황에서 보조금 요건의 강화로 인한 파장을 고민했을 것이다. 전세계 전기차 및 배터리 업계가 리튬·코발트·망간·흑연 등 핵심광물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미 조달을 고수할 경우 IRA법은 인플레이션 감축이 아니라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범이 될 수 밖에 없다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크게 보면 미국은 중국산 핵심광물을 북미산 혹은 우방국산으로 대체하도록 보조금 지침을 마련했다. 중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저지하고 핵심광물 ‘무기화’를 무력화하는 대응 조치다. 이와 관련해 2024년 12월 31일 이후 ‘해외 우려 기관’(FEOC)이 생산한 핵심광물을 사용할 경우 보조금을 받지 못하도록 규정한 점이 눈에 띈다. 조만간 발표될 해외 우려 기관 명단에는 미국이 인프라 투자 고용법(IIJA), 수출통제개혁법(ECRA) 등에서 규정하는 테러단체, 재무부의 요주의 인물(SDN), 중국·러시아·이란·북한 정부가 통제하는 기업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미국은 핵심광물 조달 가능 대상 지역에 기존에 알려져 있던 북미지역 외에 미국의 FTA 체약국(한국 등 20개 국가), 핵심광물 협정(CMA) 체약국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 지침이 발표되기 이틀 전인 3월 29일 미국은 일본과 CMA를 체결했다. 앞으로 유럽연합(EU)과도 유사한 협정 체결을 거쳐 IRA법의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미 행정부는 핵심광물 생산국 및 수요국들과 광물협정을 추진해 왔기에 앞으로 핵심광물 조달 가능 지역이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미 의회는 이 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재무부의 조치는 CMA를 FTA로 간주하는 것인데, CMA에 FTA 지위를 부여하려면 의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재무부를 관할하는 상원 재무위원회와 하원 세입위원회 소속 위원들은 미 헌법에 명시된 의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 강력 항의하고 있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도 중요한 사안이다. 보조금 부가가치 기준(올해 40%)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일본과 EU 외에 아르헨티나와 콩고 등 핵심광물 자원 부국들이 널리 포함돼야 한다. 동맹국과의 연대가 필요한 바이든 대통령이 정치력을 발휘해 이 논란을 해결하길 기대한다.
이번 IRA 보조금 세부 지침으로 국내 관련 기업들은 다소 숨통을 트게 됐다. 그 과정에서 우리나라 통상 및 경제안보 당국의 역할이 컸다. 이 기회를 이용해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업들의 연구개발(R&D) 및 전략적 해외투자, 정부의 R&D 및 설비투자 지원 등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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