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잇기서 튀어나온 ‘남한말’…北운동선수들 노동교화형, 가족들은 개마고원 추방

박준희 기자 2023. 4. 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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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도중 오락회 하다 남한 말 사용
스마트폰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걸려
‘북한에 南영화·드라마 몇천 개인데’
주민들 ‘어떻게 근절하냐’ 불만 높아
지난해 4월 15일 김일성 생일, 즉 태양절 110주년을 맞아 북한 평양의 김일성광장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 뉴시스·조선중앙TV 캡처

고교생 정도 나이에 불과한 북한의 운동선수들이 여가 시간 중 ‘남한 말’을 썼다는 이유로 노동교화형에 처해지고, 그 가족들은 오지로 추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은 ‘남한 말’을 ‘괴뢰말투’로 칭하며 강력 단속과 처벌 방침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따르면 양강도의 한 주민소식통은 “지난 3일 오후, 혜산시 광장에서 고급중학교(한국의 고등학교에 해당) 졸업생 등 청소년 대상 공개폭로모임이 있었다”며 “삼지연시에 갔던 체육선수들이 훈련 도중에 오락회를 하다가 남조선 말을 한 것이 화근이 됐다”고 전했다. 지난 2월 한 달간 양강도에서 도내의 청소년 체육선수들을 모집해 삼지연시에서 동계훈련이 실시됐으며 양강도 내 청소년 선수단 등이 훈련에 참가한 가운데 남한 말을 사용한 이들에 대한 폭로가 나왔다는 것이다 .

이 소식통은 “도 안전국(경찰국)과 검찰소의 주최로 진행된 이번 공개폭로모임은 혜산시의 각급 공장, 기업소, 사회단체, 학교 학생들과 주민들이 모인 가운데 광장에서 열렸다”며 “훈련도중 오락회에서 말꼬리 잇기를 하다가 남조선 말이 튀어나온 것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공개폭로모임에서는 오락회에 참가한 20명 전원에게 교화형이라는 법적 처벌이 가해졌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며 “체육선수들은 대부분 힘있는 간부집 자식들이지만 이 문제가 중앙에까지 제기되면서 가차 없는 처벌 지시가 내려지고 해당 간부들은 해임 철직되고 가족은 산간 오지인 삼수로 추방결정이 내려졌다”고 전했다. 삼수는 개마고원 끝자락에 위치한 지역으로 혜산시에서 약 40km 떨어진 산간지역이다.

북한 내 스마트폰이 보급된 것이 이 같은 남한 말 사건이 벌어진 원인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양강도의 또 다른 주민소식통은 “폭로대상 전원이 교화형에 처해지면서 주민들의 불만이 높다”며 “누군가 훈련도중에 있던 오락회 영상을 손전화로 찍었고, 한 여학생이 손전화기에 저장된 이 동영상을 보다가 불시단속에 걸려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RFA는 해당 여학생이 현장에서 동영상을 직접 찍었는지, 다른 사람이 동영상을 찍어 보내준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 여학생의 손전화에서 문제의 동영상이 발견돼 이번 폭로모임의 대상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고 지적했다. 이 소식통은 “도내에서 이 사건을 덮으려고 했지만 단속한 안전원이 이를 무마하려는 사실까지 중앙당에 신고하며 당적인 시범사건으로 번지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공개폭로모임’ 현장에 참석했다는 또 다른 소식통은 “현재 우리(북한)내부에 있는 남조선 영화와 드라마는 몇 백, 몇 천개인지 이루 헤아릴 수 없다”며 “당에서 남한 말을 ‘괴뢰’말이라며 강하게 단속하지만 친한 사람들끼리 모여 (남한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비밀에 부치는데 근절할 방법이 있겠냐”고 반문했다. 이 소식통은 이번에 처벌을 받은 체육선수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남한말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지 못한다면서도 ‘오빠’나 ‘자기야’ 등의 남한말이 나왔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앞서 올해 1월 북한 당국은 북한 내에서 ‘남한 말투’가 급속히 퍼지자 남한말을 쓰면 6년 이상의 징역형, 남한 말투를 가르치면 최고 사형에 처한다는 내용의 ‘평양문화어보호법’을 제정한 바 있다. 평양문화어는 북한의 표준어를 의미한다. 또 문건은 ‘괴뢰말’에 대해 “어휘, 문법, 억양 등이 서양화, 일본화, 한자화되여 조선어의 근본을 완전히 상실한 잡탕말로서 세상에 없는 너절하고 역스러운 쓰레기말”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또 해당 법 18조는 “‘괴뢰말투제거용프로그람(프로그램)’을 손전화기, 콤퓨터(컴퓨터), 봉사기에 의무적으로 설치할 데 대하여 규제하였다”고 RFA는 설명하기도 했다. 이 같은 법 제정은 3년 전 ‘반동사상문화배격법’을 제정해 남한 영상물 유포자를 사형으로 다스리려 한 북한 당국의 강경한 기조가 계속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RFA는 북한 당국이 지난 2021년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남친(남자친구)’, ‘쪽팔린다(창피하다)’를 비롯해 남편을 ‘오빠’, 남자친구를 ‘자기야’로 부르는 행위 등 남한식 말투와 호칭을 강하게 단속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박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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