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에 도청당한 줄도 몰랐을 것··· 우방국이라 더 쉽게 뚫려"

송주용 2023. 4. 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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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정보기관, 대통령실 도청 의혹
전문가 3인 인터뷰 
"대통령실 보안시설 재점검해야"
용산 대통령실 전경. 한국일보 자료사진
"도청당한 줄도 몰랐을 겁니다."

미국 정보당국이 대통령실 주요 인사들을 도·감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가운데 정보보안 전문가들의 현실 진단은 차가웠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갖춘 정보보안 기술의 한계를 지적하며 범정부적 대응을 주문했다. 10일 국가정보원 국장 출신인 석재왕 건국대 교수,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김승주·권헌영 교수와 현안 인터뷰를 진행했다.


"도청당한 줄도 몰랐을 것"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정부 주요 인사들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1월 캄보디아 프놈펜 한 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석 교수는 "미국의 도·감청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고 날을 세웠다. 미 중앙정보국(CIA), 국가안보국(NSA) 등을 중심으로 "국제연합(UN) 사무총장은 물론 모든 나라의 대통령과 정부 주요 인사 심지어 야당 인물까지 도청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국이 미국의 주요 동맹국이라 할지라도 정보 수집을 위한 도청 행위에서 예외는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는 "한국이 현재 보유한 기술로는 도청을 당한 사실조차 인지하기 어렵다"면서 "예를 들어 정부 인사들이 외국과 소통할 때 사용하는 위성통신, 해저케이블을 도청하는 미국 기술은 뛰어난 반면 한국이 도청 사실을 미리 알아채거나 막는 대도청 기술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태가 발생하는 동안에도 국정원이 대통령실 등에서 대도청 작전을 진행했지만 그 경계가 뚫린 것으로 봤다.

석 교수는 도·감청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정보위원회 설치를 주문했다. 현재 정부 정보활동은 국정원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지만 대통령실과 군을 비롯한 정보 작전과 관련 모든 부처가 공동 대응할 수 있는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대통령실 등 재점검해야"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이 지난해 5월 용산 대통령실 지하에 마련된 국가위기관리센터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모습. 대통령실 제공

권 교수는 '대체 어떻게 도·감청 사실도 몰랐을까'라는 질문에 "우방국이라 더 쉽게 도청을 당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확한 경로가 밝혀지진 않았지만, 미국은 동맹국이기 때문에 오히려 도청 장치 등을 설치할 수 있는 외교관이나 정보기관 사람들이 보안 공간에 접근하는 것이 쉬웠을 것으로 봤다. 김 교수도 "미국이 작정하고 도청을 하면 막기는 힘들다"면서 "이미 수십 년 전부터 계속되는 문제다. 어떤 방식으로 도청이 이뤄졌는지 기술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두 사람은 용산 대통령실을 포함해 국가 정보보안 시스템 전반의 재점검을 요구했다. 대통령 집무실이 청와대에서 용산 대통령실로 급박하게 옮겨졌기 때문에 보안 측면에서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노출된 기밀문서에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였던 김성한 전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의 대화도 포함된 만큼 해당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면 국가 보안에 큰 허점이 발견됐다고 우려했다.

권 교수는 "대통령실이든 지하벙커든 취약점이 발견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창문이나 벽면 떨림으로 도청이 됐다는 말도 있고, 휴민트(내부 정보자)와 연계된 문제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실 등 보안시설 전체를 뜯어고쳐서라도 보안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외교적 해결책을 함께 제안했다. 그는 "미국은 이미 한국을 필요하면 감청이 가능한 나라로 분류하고 있다"면서 "일본은 미국이 도·감청을 하지 못하도록 외교적 노력을 하고 있는데 우리도 그런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번 사태에 대해 대통령실의 보안 인식이 부족했을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최용선 문재인 정부 청와대 국가안보실 선임행정관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하는 벙커는 창문이 없고 과거에도 국방부 시설이었기 때문에 도청이 불가능할 것"이라며 "김 전 안보실장과 이 전 비서관이 개인 휴대폰으로 민감한 대화를 주고받았다면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고 적었다. 보안 장치가 되어 있는 전화기인 '비화기' 대신 도청이 쉬운 일반 개인 전화기로 국가 안보 사안을 논의하다 도청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는 의혹이다.

송주용 기자 juy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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