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는 곳마다 스타트업… 카카오 신규사업 쉽지 않네
스타트업 소다기프트의 창업자 이윤세 대표는 이달 초 카카오에서 메일을 받았다. 소다기프트는 해외 사용자에게도 모바일 선물을 보낼 수 있는 서비스를 2019년부터 운영해왔는데 카카오가 “우리도 이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메일을 보낸 것이다. 카카오는 “해외 거주자 대상 카톡 기프티콘 서비스를 최근 시작했고, 국가 간 선물하기 서비스도 곧 개시할 것”이라며 “기존 사업자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이 대표는 본지 통화에서 “수년을 고생한 우리 노하우를 ‘손 안 대고 코 풀듯 파악하고 싶다’는 말로 들린다”며 “카카오와 같은 대기업이 굳이 우리와 똑같은 모델로 확장을 해야 하나”라고 말했다.
카카오의 신규 사업 진출이 곳곳에서 논란을 빚고 있다. 카카오가 당뇨 관리앱, 골프 기록 소프트웨어 등 최근 출시했거나 출시하기로 한 제품과 서비스들에 대해 스타트업·중소기업들이 “우리 제품과 유사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카카오와 경쟁하면 시장을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카카오는 과거 꽃배달, 헤어숍, 퀵서비스 등 골목 상권 침해 논란을 빚었다. 카카오는 당시 “필요치 않은 확장과 투자는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했고 실제로 일부 사업을 정리했다. 하지만 새로 진출하는 사업 분야가 여전히 기존 기업들의 영역을 침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 시장 왜 들어오나” 스타트업 사업과 충돌
스타트업 스마트스코어는 지난 2월 카카오 골프계열사 카카오VX를 상대로 가처분을 신청하고,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이 업체는 골프장에서 태블릿 PC로 점수를 기록하는 소프트웨어를 2015년 시장에 내놓고 전국 360개가 넘는 골프장과 계약했다. 2021년 카카오가 비슷한 소프트웨어를 내놓고 골프장을 상대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위기가 찾아왔다. 스마트스코어 관계자는 “클럽체크·단체 점수 집계 등 아주 세세한 기능까지 추가하며 점점 우리 제품과 비슷해졌다”며 “최근엔 골프장들을 상대로 ‘위약금을 대신 내줄 테니 스마트스코어와 계약을 해지하라’는 영업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카오의 행위가 기술 침해와 부정 경쟁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당뇨·건강 관리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닥터다이어리는 연내 출시 예정인 카카오헬스케어의 앱이 “자사 제품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스타트업은 2017년부터 당뇨 환자들이 혈당 수치·식단을 관리하는 서비스를 운영했는데, 지난달 카카오헬스케어가 출시하겠다고 발표한 앱이 비슷한 기능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송제윤 닥터다이어리 대표는 “카카오 측에서 이미 3년 전 사업 협력과 투자를 문의하면서 4~5차례 미팅을 가졌고, 우리 비즈니스에 대해 설명했다”며 “제품에 대한 설명만 들어도 우리 사업 모델과 지나치게 유사하다”고 했다.
◇업계에선 “카카오 확장, 신중한 접근 필요”
카카오는 “타사 제품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베낀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카카오 관계자는 “카카오 선물하기 서비스를 시작한 2010년부터 해외 선물하기 기능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면서 소다기프트에 메일을 보낸 것도 협업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건강 관리앱에 대해서는 “이미 해외에 비슷한 제품이 있는 혈당·식단 관리 기능은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아이디어이고, 실제 세부 작동 원리는 다르다”며 “출시도 안 된 제품을 두고 유사성을 논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카카오는 건강 관리앱은 국내 시장이 아닌, 해외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라고도 했다.
카카오VX 관계자는 “골프 스코어를 디지털로 전환한 건 일본 기업이 1995년 개발해 2008년 국내에 들어온 기술”이라며 “스마트스코어가 주장하는 불법 영업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미 시장에 있는 기술을 카카오의 골프 사업에 맞춰 서비스하려 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의 배경에는 국내 인터넷 서비스 시장의 체질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다. 수많은 스타트업과 벤처의 등장으로 시장이 포화 상태가 되면서 카카오 같은 대기업들이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기 쉽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모바일 소프트웨어나 앱의 기능과 편의성이 비슷한 것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논란이 되는 일”이라며 “하지만 수천만명이 사용하는 카카오 플랫폼의 영향력을 고려하면, 사업 확장을 할 때 기존 사업자가 있는 분야는 더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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