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저위전방절제증후군, 임상연구의 현실
예전에는 직장 하부에 암이 위치한 경우 충분한 안전 절제 거리를 확보하기 어려워서 항문을 보존할 수 없었고, 따라서 배에 인공항문을 만들어야 했다. 이러한 위치의 직장암은 항문 기능을 보존하는 것이 어려웠다. 요즘은 수술을 쉽게 하는 의료기기가 개발되고 수술기법도 발전하면서 하부 직장암 수술 시 항문을 살리는 확률이 높아졌다.
직장은 소화된 음식물이 배출 직전 일시 머무는 장소다. 배변 시에 수축해서 원활한 배출을 돕는다. 직장은 변을 저장하고 잠시 참을 수 있는데 이를 저장능력이라 한다. 몇 가지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직장은 다른 장보다 두껍다. 직장의 정상 기능을 상실하게 되면 변을 오래 참지 못하거나 조절이 어렵고 온종일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등 생활에 불편을 겪게 되는데 직장암 수술 후 배변장애가 발생하는 증상을 저위전방절제증후군이라 한다. 직장절제를 하면서 골반 내 혈관, 신경 및 직장항문 주위 괄약근의 손상이 발생한다. 직장을 제거하면 상부의 장으로 직장을 대체하는데 얇은 장은 많은 양의 변을 저장하지 못해 소량의 변이 내려와도 곧바로 변의를 느낀다.
통상 수술 후 18개월 정도 지나면 수술 손상이 회복되고 대체한 신생 직장도 서서히 적응하면서 기능이 회복된다. 손상의 정도가 심하거나 방사선 치료의 부작용 등이 동반되면 정상 기능을 회복하지 못한다.
직장암 수술 후 생기는 배변장애의 개념은 희박한 편이어서 집도전문의조차 그저 수술 후 생기는 증상이니 일정 기간이 지나 회복되면 다행이라 생각한다. 음식 조절, 악화 요인 예방, 외출 시 직장 비우기, 상황 발생 대처, 패드 챙기기, 가까운 화장실 위치 파악 등으로 실수를 줄이는 정도의 보존적 치료를 권유하는 정도가 의료 현실이다.
이렇게 발생하는 배변장애는 삶의 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때 직장항문생리 전공 의사가 인기를 끌었다. 배변장애의 원인분석과 임상시험도 붐을 이뤘다. 학회에는 항상 흥미로운 주제로 관심을 끌었다.
그러나 막대한 시설·장비나 인력양성에 대한 투자비 회수, 의료수가 보상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환자의 진료, 기초연구, 원인 분석은 물론 상담과 교육 및 결과분석 등에 기울인 시간과 노력에 비하면 그 대가는 미미했다.
최근 의사들의 학술활동을 살펴보면 직장항문생리나 배변장애에 관한 주제는 드문드문하다. 암 관련 주제는 넘쳐난다. 우리나라 대장암 치료 가이드라인은 훌륭하게 표준화가 구축돼 치료 결과도 세계 최상이다. 이런 성과 덕분에 연관 유럽 학회는 한국의사들로 붐비고 한국 학회와의 교류도 반기는 추세다.
배변장애 분야에 관한 의료 수준은 답보상태이고 세계적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다. 신의료기술의 국내 진입장벽이 높고 이미 도입된 의료기술도 규제로 인해 치료 확장성이 떨어져 있다. 의료보험 보장 혜택도 암이나 위급함을 다투는 질병군에 비해 기능성 질환에는 보상이 턱없이 낮은 이유로 의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소수 의사의 활약은 비인기 진료 분야로 주목받지 못한다.
이스라엘의 램 교수는 114명의 저위전방절제증후군 환자에서 천수신경조절 치료 결과를 분석해 83%에서 증상 호전의 결과를 발표했다. 숫자가 적긴 하나 항문 괄약근 압력 개선, 직장 저장능력 호전 및 삶의 질 향상을 나타냈다. 다른 연구에서는 94% 증상 개선의 결과도 있다. 일본은 천수신경조절이 이들 증상에 대한 효과가 있음을 인정해서 의료급여로 환자에 혜택을 주고 있다. 유럽에도 신경조절, 줄기세포 재생치료 등 많은 임상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된다.
저위전방절제증후군은 발생 비율이 낮지만 의료 전문가들 사이에는 엄연히 잘 알려진 난치성 질환이고 다수의 환자가 고통을 겪고 있다. 필자와 같은 맥락으로 신경조절, 줄기세포치료 등으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수도권 대형병원의 한 의사가 “성과를 얻지 못해 연구를 포기했다”고 고백했다. 유럽 학회에서 주목받기도 한 연구 주제였다. 어려운 여건 때문에 연구의 맥이 끊어지는 것 같아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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