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49> 동삼동패총 조개 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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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석기문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유적을 꼽으라면, 단연 부산 동삼동패총일 것이다.
조개가면은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시행한 동삼동패총 제3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되었다.
1999년 부산박물관의 동삼동패총정화지역 발굴조사에서도 조개가면으로 추정되는 패제품 2점이 출토됐다.
신석기시대 동삼동패총 사람들에게 바다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이 조개가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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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신석기문화를 가장 잘 대표하는 유적을 꼽으라면, 단연 부산 동삼동패총일 것이다. 여기서 출토된 수많은 유물 중에서 우리나라의 다른 어디에서도 출토되지 않은 유물이 있으니, 바로 조개가면이다. 조개가면은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이 시행한 동삼동패총 제3차 발굴조사에서 출토되었다. 크기가 10.7㎝의 국자가리비에 마치 사람의 눈과 입처럼 구멍을 3개 뚫은 형태이다.

1999년 부산박물관의 동삼동패총정화지역 발굴조사에서도 조개가면으로 추정되는 패제품 2점이 출토됐다. 역시 국자가리비로 제작된 것으로 각각 8.7㎝, 7.5㎝이다. 그러나 부산박물관 소장품은 흡사 눈만 표현한 것처럼 2개의 구멍만 있어 전형적인 가면 형태는 아니다.
가면의 기본 용도는 얼굴을 가리는 데 있다. 하지만 이 조개가면들은 10㎝ 안팎 크기로 사람이 직접 착용하기에는 너무 작다. 그러면 이들은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일까? 연해주의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구멍이 하나 뚫린 굴 껍데기가 발견되었다. 그 구멍에는 끈으로 묶은 흔적이 있어 조개껍데기를 층층이 걸어두기 위한 용도로 추측한다. 이를 동삼동패총 출토품과 연관시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동삼동패총 출토품은 구멍 형태가 정형성이 있고 단순히 걸기 위한 것이라면 1개 이상 뚫을 이유가 없다. 또 다른 의견으로 조개국자 기능이 있다. 통영 상노대도에서는 작은 구멍 2개를 조개 각정부(조개껍데기의 가장 높은 끝부분)와 수직 방향으로 나란히 뚫은 것이 출토됐다. 이를 나무막대에 이어 국자로 썼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동삼동패총 출토품은 구멍 크기가 훨씬 커서 국자 역할을 하기에는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의식용 도구설이 가장 유력해 보인다. 집단의 공동의식이나 축제, 벽사적 행위 때 사용됐을 가능성이다. 정착 생활을 하고 농경 생활이 시작된 신석기시대에는 자연환경 변화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생활 자체가 종교적이고 의례적인 측면이 강했다. 자연에 대한 두려움과 생업활동의 안전과 풍요 등을 종교적 신앙으로 해결하고, 일부 자연물과 동식물을 신격화·형상화하여 숭배 대상으로 삼았다. 즉 조개가면은 바다의 신을 형상화한 일종의 주술구인 셈이다. 또한 단순히 아이들 놀이용뿐 아니라, 제의를 일종의 종교적 축제로 보면 놀이문화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장난감으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일본의 조몬 중기 유적인 아다카패총(阿高貝塚) 출토 조개가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재질이 벚굴(굴의 종류)인 점은 동삼동패총과 차이가 있으나 형태가 똑같다. 이는 동삼동패총에서 보이는 흑요석, 조몬토기와 같은 일본 규슈 지역과의 교류의 산물로 추정할 수 있다.
바다는 동삼동패총 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이었던 만큼 가장 신성시되기도 했지만 그만큼 두려운 존재였을 것이다. 그 바다를 통해 생업은 물론 교류도 이뤄지고 특징적인 문화도 만들어졌다. 신석기시대 동삼동패총 사람들에게 바다의 의미를 가장 잘 나타내주는 것이 바로, 이 조개가면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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