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에서] 근현대사 비중이 77%?
현재 고교생들이 배우는 ‘한국사’ 교과서를 읽어보면 많은 사람이 깜짝 놀란다. 과거 열심히 공부했던 삼국 시대, 조선 시대 내용은 거의 없고,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나 80년대 민주화 운동 등 최근 역사 분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 시절 검정을 통과해 2020년부터 학생들이 배우는 현행 고교 교과서는 크게 네 주제로 이뤄져 있는데, 첫째 ‘전근대 한국사의 이해’는 선사 시대부터 19세기 전반까지를 다루고, 나머지 세 주제는 ‘근대 국민국가 수립 운동’ ‘일제 식민지 지배와 민족 운동의 전개’ ‘대한민국 발전’으로 개항 이후 근현대사를 다룬다. 큰 주제를 놓고 보면 넷 중 셋(75%), 작은 주제는 26가지 중 20가지(77%)가 근현대사다. 5000년 한국사 가운데 150년 남짓한 내용에 교과서 대부분을 할애한 것이다.
교과서의 근현대사 비중이 논란이 된 건 노무현 정부 때다. 이전 교과서는 근현대사 분량이 50% 미만이었는데, 노무현 정부는 근현대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근현대사’ 과목을 아예 별도 선택과목으로 개설해 교과서를 만들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는 다시 50% 정도로 줄였다가, 문재인 정부 때 다시 77%까지 높아졌다.
그러잖아도 한국사는 대입 필수인데 고등학생들이 근현대사만 집중적으로 배우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많다. 학교 현장 교사들은 이런 교육과정 때문에 일제 시대와 민주화 운동에 대해선 시시콜콜한 것까지 잘 아는 반면 고구려, 백제, 신라의 수도가 어딘지도 모르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이렇게 근현대사 비중이 높다 보니 학생들이 아직 역사적 평가가 제대로 끝나지 않은 내용을 기정사실인 양 배운다는 점이다. 예컨대 현행 교과서들은 불과 6~7년 전 박근혜 정부 때 촛불 시위와 대통령 탄핵을 다룰 뿐 아니라, 직전 문재인 정부 때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많은 분량을 할애해 설명한다. 김정은 집권 이후 최근 10여 년간 북한 경제가 안정됐다고 서술하거나, 남북 관계도 좋아졌다고 서술한다. 아직 역사적 평가가 끝나지도, 진영 간 합의가 이뤄지지도 않은 최근 정부 일까지 다루다 보니 교과서 내용을 놓고 사회적 갈등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런 문제를 해결해야 할 교육부는 “어느 정권까지 교과서에 실을지는 검정 심사 기준에도 없고 집필자들 자율로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만 반복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학계에선 교육부가 교육과정을 고쳐 근현대사 비중을 줄이는 동시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 “최근 20~30년까지는 교과서에 싣지 않는다” 같은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근현대사 비중을 이대로 두는 것은 학생들의 한국사 교육을 책임져야 할 교육부의 책임 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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