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인한 다발성 위기에 대비해야[동아시론/박호정]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2023. 4. 11.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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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온실가스 감축 미온적, 기후위기 현실화
가뭄, 연료값 폭등, 금융위기 ‘퍼펙트스톰’ 우려
산업 재편, 자본 축적해 기후적응 역량 키울 때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최근 발표된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종합보고서는 다가오는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우리 인류의 한계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각국이 선언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만으로는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경고한다. 2도 이상 상승할 경우 비록 영화 투모로우에서 극단적으로 묘사되기는 하였지만 이른바 급작스럽고 비가역적인 기후변화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1.2%를 차지하는 우리나라가 극적으로 넷제로를 달성할지라도 대형 배출국에서의 실질적인 넷제로 없이는 기후위기는 다가온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후위기 적응정책은 소극적 협의와 적극적 광의의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는 기후위기 취약지역이나 계층에 대한 지원, 기후위기 영향평가와 재난 대응체계 구축 등 기후변화의 영향을 완화하는 노력을 포함한다. 후자의 정책은 기후위기에서도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미래세대에 보장할 수 있는 강건한 형태의 사회와 산업 구조로 재편하는 노력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더욱 절실한 것은 이 광의의 적응 정책이다. 왜냐하면 광의의 기후적응 정책을 통한 자본축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협의의 대응정책 추진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IPCC 보고서가 우려하는 기후위기가 가시권에 들어오기도 전에 우리나라는 이미 인구절벽, 연금절벽, 재정절벽의 3대 절벽 위기에 봉착되어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제로 경제성장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 목표도 달성될 것 같다는 자조 섞인 탄식이 전문가들 사이에 나올 정도인데도 불구하고, 지난 정부 때 발표된 탄소중립 시나리오는 다분히 발전 부문과 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일변도 정책으로 도배되었다. 반면 기후적응과 지속가능한 경제성장 개념이 부재한 정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을 보아도 마찬가지인데 주로 기상정보 관리체계나 기후위기 영향평가와 같은 소극적 정책으로 구성돼 있다.

그린수소 기반의 무탄소 전원과 연료전지를 포함한 재생에너지 비중이 거의 90%에 육박하는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를 봐도 기후적응 관점에서 비현실적임을 알 수 있다. IPCC 보고서의 기상 데이터를 분석한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기후변화가 고조됨에 따라 기상 변동성과 극단치도 증가하게 된다. 가령 태풍의 연속 상륙 또는 장기간 장마로 2∼3주간 재생발전이 급감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면 이미 비가역적으로 탈석탄, 탈LNG, 탈원전인 한국의 상황은 그야말로 실존적 위기에 직면하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발전원 구성에 관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자체가 기후적응적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몇 년간 우리가 경험한 위기는 앞으로 다가오는 위기의 전초전일 것이다. 예를 들면 2022년과 유사하게 극단적인 가뭄은 식량난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전력발전에도 영향을 미쳐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을 폭등시키고 이는 다시 비료 가격 상승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른바 에너지 인플레이션과 애그플레이션이 동시에 발생하고 이는 금융과 재정 위기로 연결되는 퍼펙트 스톰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다발성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역량 확보가 바로 적응정책이기에,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가적 규모의 자본 축적이 꾸준히 이루어져야 한다. 주요국은 자국의 실리를 앞세워 이처럼 성장자본을 축적하고 일자리 창출을 통한 기후위기 적응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 또는 그 전신인 ‘더 나은 재건법(Build Back Better)’은 도로, 교량, 인터넷망, 송전망 등 그동안 낡은 인프라 시설을 다가오는 기후위기에 적응할 수 있도록 재건하되 미국의 자본과 미국의 기술 및 노동력으로 확보하겠다는 미국 우선 철학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인플레이션감축법’을 통해서 배터리, 핵심광물공정, 태양광 패널 등 미 제조업 분야의 세액공제와 일자리 창출을 과감하게 추진하고 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유럽연합(EU)의 핵심원자재법과 탄소국경조정제 역시 역내 산업과 일자리를 보호하고 저탄소 비교우위를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도 기후적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첫걸음은 국내 산업 생태계의 구축과 이를 통한 일자리 창출과 자본 축적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IPCC 보고서가 밝히고 있듯이 효과적인 기후행동의 실행은 거버넌스와 재산권 설정이 전제돼야 하는 만큼 전력 및 에너지 산업과 환경 분야 법제도 기반을 공고히 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후적응 정책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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