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후쿠시마 오염수와 ‘과학’
과학(科學)이란 뭘까. 사전에는 ‘보편적인 진리 발견을 목적으로 한 체계적인 지식’이라고 써 있다. 좁게는 자연과학이고, 넓게는 모든 학문을 가리킨다. 무엇이 됐든 과학의 기본은 논리적인 접근이다.
요즘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이라는 표현이 부쩍 많이 등장한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오염수를 바다에 버리려는 일본 때문이다. 후쿠시마 원전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오는 오염수의 안전 여부를 과학적이며 객관적인 방식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있다. 한마디로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버린다고 하는데, 정말 그래도 될지를 과학적인 잣대로 검증하겠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오염수에 섞인 방사성 물질이 기준치 이하여서 안전하다고 확인되면 방류를 막을 수 없는 것 아니냐’는 논리가 녹아 있다.
정부의 또 다른 태도는 결이 완전히 다르다. 오염수가 방류돼도 현재 시행 중인 후쿠시마 주변 8개현에 대한 수산물 수입금지를 유지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밝히고 있다. 대통령실과 총리, 여당이 한목소리다.
이상한 일이다. 오염에서 자유로운 ‘안전한 바다’에서 ‘안전한 수산물’이 사는 건 과학적이며 논리적인 결론이다. 일본 정부가 오염수 방류에 나선다면 거기에는 어떤 식으로든 “방류를 과학적으로 받아들일 만하다”는 한국 정부의 양해 또는 이해가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그곳은 안전한 바다로 인정돼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른다. 그런데 그런 바다에서 잡힌 수산물은 정작 수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건 윤석열 정부가 스스로 강조하는 ‘과학’과 부합하지 않는 태도다. 차라리 “과학적으로 살펴봤더니 기준치 이하의 오염수는 방류돼도 큰 문제가 없다. 수산물 수입 재개를 검토하겠다”면서 대국민 설득에 나서는 편이 솔직하고 담백하다. 이런 태도는 대일 관계를 풀겠다는 생각에 오염수 방류에는 ‘과학’을 거론하며 유연한 태도를 보였지만, 수산물 수입 재개까지 추진하기에는 국내 여론이 부담스럽기 때문일 공산이 크다. 먹거리 안전은 국민에게 매우 예민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런 속사정을 이해해 줄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히려 이 같은 자가당착을 집중적으로 파고들 것이다. 한국의 수산물 수입 재개는 원전 오염수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에 보여줄 만한 확실한 홍보 소재이기 때문이다.
아직 해결 방법은 있다. 아예 오염수가 바다로 안 나오게 하면 된다. 그럼 오염수의 유해성을 두고 설왕설래할 일 자체가 사라진다. 일본이 후쿠시마 원전 주변에 더 많은 오염수 저장탱크를 짓도록 압박해야 한다. 일본은 오염수 처리 방법 중 가장 비용이 낮은 해양 투기를 선택했지만, 그건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다. 이를 위해 한국 정부는 국제해양법재판소에 가처분 신청을 해 오염수의 바다 방류를 일단 지연시키는 일을,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해야 한다. 오염수 방류 대응을 두고 모순적인 상황을 스스로 만드는 것보다 쉽고 간명한 방법이다. 깔끔하고 명료한 것, 그게 과학이다.
이정호 산업부 차장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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