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설] 일하는 실업자의 비애

기자 2023. 4. 1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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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는 어렵고 일자리는 없다고 하는데 실업자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통계청이 발표한 2월 고용동향을 보면 실업률은 3.1%로 전년 동월 대비 0.3% 하락했다. 실업자가 100명 중 3명에 불과하다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주목해야 할 통계가 또 하나 있다. 2022년 단순노무종사자가 404만5000명으로 2013년 통계작성 이후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무려 51만1000명이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취업자 수는 96만6000명 증가했는데, 늘어난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음식배달, 택배, 가사, 경비 노동자 등으로 구성된 단순노무종사자다. 대부분 플랫폼 노동자이거나 구인·구직 플랫폼에서 일자리를 찾는 비정규직, 초단시간 노동자들이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외환위기 직후 실업자들은 양복을 입고 공원 벤치를 서성이거나 조끼를 입고 쓰레기를 줍는 공공근로를 했는데, 2023년 실업자들은 휴대폰을 들고 온라인 플랫폼 역사에 모여 흩뿌려진 일감을 줍고 있다. 음식배달, 퀵, 대리기사들은 최근 일감이 없어 길바닥을 서성이며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다. 이들은 일감을 잡는 순간 실업자에서 취업자로 변신한다. 일감을 기다리는 실업의 시간이 일하는 시간보다 긴, 노동하는 실업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한눈이라도 팔면 일감경쟁에서 패배해 장기실업자가 되므로, 계속해서 휴대폰을 뚫어져라 쳐다봐야 한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시간은 줄고 긴장된 상태로 일감을 찾는 노동시간은 하염없이 늘어난다. 이쯤 되면 인간이 플랫폼을 이용해 일을 하는지, 플랫폼이 인간을 이용해 휴대폰 충전과 데이터 수집을 하는 건지 헷갈린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채용됐는지 해고됐는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디지털공장을 돌리는 원료로 활용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가 실시간으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한다면, 단시간 노동자들은 주 단위, 하루 단위로 취업과 실업을 반복한다. 2월 고용동향통계에 따르면 주 17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노동자는 무려 225만명이다.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는 주 15시간 미만 노동자는 특별히 초단시간 노동자라 부르는데 2022년 9월 179만명을 기록했다. 일하는 시간이 실업시간보다 짧으므로, 초단시간 노동자보다는 단시간 실업자라고 부르는 게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노동시간을 쪼개면 소득과 휴식시간도 쪼개진다. 쪼개진 노동시간에 맞춰 출퇴근 시간 역시 분산되므로, 일하는 시간과 소득은 감소하는데, 휴식과 여가 시간도 줄어버리는 역설이 발생한다. 주말 14시간 근무나 3.5시간씩 주 4일 근무나 노동시간은 같지만, 주 4일 출근할 경우 통근 시간은 늘고 사용할 수 있는 휴일은 줄어드는 것이다.

일하는 실업자 내지 단시간 실업자는 눈에 보이지 않아 정책에서 배제되고, 전통적 사회보장제도로 보호하기도 힘들다. 정부가 구직급여 반복수급자를 잡는 데 혈안이 돼있는 동안 변화된 산업구조에서 생산된 새로운 실업자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노동개혁을 한다며 MZ나 69시간 노동을 논할 때가 아니다. 부분실업급여 등 새로운 사회보장제도를 설계하고, 건당으로 일하는 도급노동자에게 최저임금을 적용하는 등 달라진 실업 문제를 해결할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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