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백의 사연史淵] 진실 마주하기서 역사화해까지 먼 길 돌아가기
정권에 따라 골대를 옮기지 않고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거사와 경제·안보, 곧 역사문제와 한·미·일 협력을 분리하고 한·미·일 협력과 한·일관계를 구분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역사갈등을 관리하고 선택적 안보전략에 따른 경제부담을 줄일 수 있고, 국제현실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 사죄하고 용서하기란?
지난 3월31일 MZ세대인 1996년생 한 젊은이 때문에 한국 사회의 시선이 광주에 쏠렸다. 전직 대통령 전두환씨의 손자 전우원씨가 광주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는 5·18광주민주화운동의 피해자와 유족을 만나 “할아버지 전두환씨는 5·18 앞에 너무나 큰 죄를 지은 죄인이고, 학살자임을 가족 구성원으로서 인정하고 사과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립5·18민주묘지의 방명록에 “저라는 어둠을 빛으로 밝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여기에 묻혀계신 모든 분들이십니다”라고 작성하여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의미를 밝히고, 할머니 이순자씨의 발언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열사들의 묘비를 자신의 외투로 닦고, 오월어머니들을 만나서는 무릎사과도 했다.
피해자와 유족은 마치 용서에 목말랐던 사람처럼 그를 포용했다. 법적 처벌 대상도 아닌 데다 도의적 책임에 눈감아도 되는 사람, 달리 말하면 5·18학살이 자신과 무관하다고 강변할 수도 있는 ‘손자’에게서 사과하려는 진정성을 직접 확인했기 때문이다. 피해자와 유족은 기쁜 마음보다 격려와 따뜻한 마음으로 그의 고통을 헤아리며 용기를 칭찬하고 고마워했다.
이 과정은 피해자와 유족이 전우원씨와 만나 서로 교감하며 공감대를 확보하는 과정이었다. 유족 가운데 마음이 풀렸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 서로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더 나아가 아직 해명되지 않은 진실을 규명하는 나비효과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세상은 뜨거운 반응과 동시에 ‘왜’라는 질문을 그에게 던졌다. 한국 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데다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가 언론에 밝힌 바에 따르면, 성인이 되고 나서야 광주에서 폭동이 있었다거나 북한의 영향을 받았다라고 세뇌된 지식과는 전혀 다른 사실을 자신의 룸메이트나 재미한인들로부터 듣고 진실과 마주했다.
이렇듯 과거사 치유와 당사자 간의 화합과 용서는 진실을 알아야 시작할 수 있다. 진상규명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국가 간 절차를 거친 화해나 이에 동반하는 물질적 화해보다 도의적 화해에서 그렇다. 가해와 피해의 진실을 알았더라도 역사와 직접 대면하고 고백하며 반성하고 사과해야 용서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
물론 사과한다고 모두 용서받지는 않는다. 잘못된 사실을 부정하고 진실을 인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주주의의 진정한 아버지는 국립5·18민주묘지의 열사들이다’처럼 도덕적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말과 행동을 이어가려고 할 때 사과의 진정성은 성립한다. 진정성은 가해와 피해 양측이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확대되며 관계 복원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집단이나 사회 차원의 관계 복원은 공개적인 정치적 공식 사과를 거쳐야 피해자의 명예가 회복되고 공동체망을 튼튼하게 형성하는 방향으로 이어진다. 처벌과 보상, 재발 방지, 기념 공간, 역사교육과 같은 사후대책은 그 방향을 구체화한다. 정치적 사과는 그만큼 강력한 상징성을 지닌 행동인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사과를 둘러싼 갈등은 역사인식과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며 격렬할 수밖에 없다. 5·18학살을 국가가 공식 사과하고 폭동에서 민주화운동으로 역사적 의미를 자리매김하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이 이를 말해준다.
또 여기에 여전히 동의하지 않는 사람과 집단이 다른 역사인식을 들이밀며 민주화운동으로서 5·18을 부인하고 훼손하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5·18을 둘러싼 갈등이 일어나는 원인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 과거를 불러와 미래를 놓고 다투는 데 있다. 비슷한 양상은 현재진행형인 한·일 간 역사 갈등에서도 확인된다.
■ 역사장벽, 투트랙으로 넘어서기
얼마 전까지 겉으로 드러난 한·일관계의 최대 현안은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움직임이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이에 대해 정부는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을 통한 3자 변제’라는 방식으로 현안을 마무리하려 한다. 그러면서 한·일관계의 최대 장애물을 제거하고 외교를 복원했다고 자평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에 단 한 마디 사죄와 피고 기업의 배상을 요구하는 피해자도 있었고, 외교부에서 운영한 민관협의회에 참여하여 일본 정부의 사과가 아니라 피고 기업의 사과와 기금 참여를 기대하는 쪽도 있었다. 경직된 한·일관계를 어떻게든 풀어보는 데 작은 보탬이 되자는 의도에서였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현실화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가 모든 요구와 기대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또 골대를 옮긴 모양새다.
이와 달리 일본 정부는 여전히 골대를 옮기지 않았다. 일본은 조선을 합법적으로 지배했다는 역사인식을 철회한 적이 없다. 그래서 피고 기업이 강제징용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위로금’이란 말을 쓰며 돈을 지불하려던 계획조차 실행하지 못하게 했다. 강제동원, 일본식 표현을 빌리면 징용공 문제가 불법이 아닌데 위로금을 지불하면 불법성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는 식민지 조선의 지배와 관련한 모든 역사 쟁점을 결국 한국 병합의 합법·불법 문제와 연결짓는 인식과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의 일관된 태도는 한국(인)에 대한 역사 부담 때문에만 그런 것이 아니다. 식민지 조선을 합법적으로 지배했다는 논리가 훼손되거나 무너지면 일왕의 식민지 책임, 침략 책임을 묻는 역사인식이 일본 안팎에서 확실하게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동아전쟁’의 ‘종전’을 ‘성단(聖斷)’한 평화주의자 쇼와 일왕이란 존재로 포장된 이미지에 대한 비판은 일본 우익에게 견딜 수 없는 모욕감을 느끼게 하고 위기의식을 갖게 할 것이다.
이를 둘러싼 논란은 일왕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정치인에게 용납될 수 없다. 자민당 내 우익 성향 의원의 결집체인 ‘일본의 존엄과 권익을 지키는 모임’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모임은 부계(父系)의 남성 일왕이 왕위를 계승해야 하며 “중한(中韓)에 의한 국토 침식을 저지하고 회복한다”를 첫째와 둘째 주장으로 내세우고 있다. 모임의 리더 아오야마 시게하루 참의원은 평소 한국에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그는 ‘종군위안부가 존재하지 않았다’며 2015년 12월28일 박근혜 정부와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합의한 사실을 들어 아베 신조 총리를 물고 늘어졌을 정도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한국병합의 합법성을 스스로 포기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일본에서 식민지 역사인식 문제는 국내 정치 문제기도 하다. 그래서 설령 책임자로서 사과할 수는 있겠지만 결코 일본 국회의 비준을 받아 그 책임을 보여주지는 못할 것이다. 결국 한국과 일본은 역사 화해로 가는 출발점인 진실에 대한 인식과 공유에서부터 거대하고 두꺼운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다.
한국은 이 장벽이 근본적인 허들임을 받아들이고 긴 시간이 필요함을 인지하며 집요하게 새로운 대응 자세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번처럼 서두르다 굴욕외교를 자초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논리도 다듬을 필요가 있다. 완패 외교를 비판하자 일본의 역사인식과 반복된 망언을 간과한 채 그들이 20여차례 사과했다고 옹호하는 거짓을 말해서도 안 된다. 대법원 판결이 일본의 지배를 불법으로 간주하며 세계 최초로 피식민자로서의 주체적 자기 정체성을 드러낸 새로운 가치규범인데도 국제법 위반이라며 자기 정체성을 부정해서도 안 된다. 이러한 방어논리는 일본 정부와 극우의 주장을 그대로 차용해 자신의 역사관을 부끄러움 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일본 극우의 주장을 외교정책화한 최초의 집권세력이 등장한 것이다.
정권에 따라 골대를 옮기지 않고 우리의 역사적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대법원 판결에 대해 수출규제와 화이트리스트 배제로 보복했다. 과거사와 경제·안보를 한 덩어리로 놓고 외교질을 하는 원트랙 전략은 일본이 한국에만 적용하는 프레임이다. 한국 정부도 1965년부터 같은 프레임으로 맞대응하며 과거사와 경제·안보를 베팅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냉전시대가 끝났다. 과거사와 경제·안보, 곧 역사문제와 한·미·일 협력을 분리하고 한·미·일 협력과 한·일관계를 구분하는 투트랙 접근이 필요하다. 이리하면 역사갈등을 관리하고 선택적 안보전략에 따른 경제부담을 줄일 수 있다. 특히 이념에 따라 편 가르던 시대가 끝난 데다, 중국이란 존재로 인해 쿼드4 이외에도 브릭스 그리고 아세안이 우리를 직접 규정하고 있는 국제현실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신주백
역사학자. 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한국근현대사를 동아시아사에 접목하여 연구하며 현재를 고민하고 있다. 독립운동사 연구에서 출발하여 최근에는 <한국역사학의 전환>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운영> 등을 간행했다. 저서 <역사화해와 동아시아형 미래만들기>, 이외에 공저로 <용산기지의 역사> <분단의 두 얼굴> <한중일이 함께 쓴 동아시아 근현대사> 등이 있다.
신주백 역사학자·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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