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은퇴 후 노동에 대한 단상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2023. 4. 11.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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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지훈 변호사

최근 프랑스에서는 정부의 연금개혁에 반대하는 수백만 명 규모의 전국적인 시위가 연이어 벌어졌다. 지난해 시작된 시위에는 철도, 전력, 교사노조 등이 파업으로 동조하는데 프랑스노동총연맹은 4월에도 시위와 파업을 이어나가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법안에서 문제가 된 내용은 노동자의 법정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64세로 2년 연장하겠다는 부분이다. 지난 3월 프랑스 상원을 통과한 법률에 따르면 프랑스 노동자들은 연금수령 시기가 연장된 정년만큼 늦춰지고 동시에 연금을 받기 위한 수령 기여기간은 43년으로 늘어난다고 한다.

프랑스는 이미 국내총생산의 13.8%를 연금으로 지급하는 만큼 연금고갈에 대한 현실적 압박을 받고 있는데 오히려 법정 정년은 독일(67세) 이탈리아(67세) 영국(66세)과 비교하면 빠른 편이다. 이러한 사정과 무관하게 프랑스 시민들의 반발은 즉각적이고 선명하다. 이들의 요구는 한마디로 "억지로 더 일하기 싫다"는 것이다. 실제 연초에 공개된 프랑스여론연구소 조사에서는 프랑스인의 68%가 연금개혁에 반대한다고 했다.

정년에 대한 한국의 여론은 프랑스와 정반대다. 법정 정년을 현재의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사안에 66%의 시민이 찬성했다(리얼미터 2019년). 찬성여론은 일부 계층에 국한되지 않았고 모든 연령과 지역, 이념, 정당 지지층에서 절반을 넘었다. 다른 조사에서는 정년연장에 찬성하는 시민의 비율이 10명 중 8명에 해당한다는 결과도 나왔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22년)

물론 프랑스와 한국 시민들의 정년연장에 대한 태도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두 국가의 조건과 환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정년퇴직과 동시에 연금이 지급되지만 우리는 정년과 연금수급 연령 사이에 5년의 간격이 있으며 프랑스는 은퇴 전 소득의 74% 정도를 연금으로 지급하지만 우리 국민연금은 40% 정도에 불과하다. 한편 한국의 노인빈곤율 37.6%(통계청 2021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이며 이런 복합적 이유 아래 한국인들이 실질적으로 은퇴하는 연령은 남녀 모두 72.3세로 이 역시 1위라는 '불명예'를 얻고 있다.(OECD 2018년)

이 조사들을 거칠게 요약하면 한국 시민들은 회사에서 근로자로 은퇴하고도 낮은 연금과 소득으로 인해 비자발적인 노동을 계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은퇴 후 '노동선호' 현상에 대한 설명은 경제적 해석만으론 부족하다. 인구 5000만명 이상에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인 조건을 충족하는 '3050클럽'에 일본(1992년) 미국(1996년) 영국(2004년) 독일(2004년) 프랑스(2004년) 이탈리아(2005년)에 이어 세계 일곱 번째로 한국(2019년)이 가입한 사실을 떠올려보면 더욱 그러하다.

여기 우리의 노동선호 현상에 대한 문화적 설명과 관련된 중요한 자료가 있다. 통계청이 조사한 '한국의 사회 동향 2022'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행복지수는 평균 5.94점으로 세계 59위 수준에 불과하다. 그중 '일상적인 쉼 활동'의 조사내용은 남녀 성인 모두 50% 이상이 특별한 취미활동 없이 시간을 보내는데 성인 남성의 경우 수면이나 낮잠(27%) 아무것도 안하기(16%) TV 및 동영상 시청(15%)으로 여가를 보낸다.(Littor 2023년 2·3월호 '아동의 취미와 행복한 어른' 재인용)

말하자면 우리 한국인들은 일하는 것 외엔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모른다. 정신과 육체가 여전히 노동에 적합하다면 은퇴 후에도 여가보다 노동을 쉽게 선택하는 것이다. 게다가 연금수급이 몇 년 남아 있고 모아놓은 자산이 없다면 은퇴는 두려움과 공포가 지배하는 피해야 할 무엇이 돼버린다. 우리 자신을 멀리 떨어져서 보면 노동이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모습이지 않을까. 그만큼 우리는 너무 메마르고 딱딱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아닐까.

양지훈 변호사(위벤처스 준법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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