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벚꽃의 꽃말은 ‘기후위기’

이민경 2023. 4. 11.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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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음원 순위에 올라 '벚꽃 연금'이라고 불리는 노래가 있다.

따뜻한 봄날이 벚꽃과 함께 조금 일찍 찾아왔다.

4월 시험 기간에 맞춰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하던 우스갯소리가 '벚꽃의 꽃말은 기후위기'라는 우려로 번지고 있다.

'벚꽃 없는 벚꽃 축제'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후위기를 체감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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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울려 퍼질 이 거리를/ 우우 둘이 걸어요’

봄이 되면 음원 순위에 올라 ‘벚꽃 연금’이라고 불리는 노래가 있다. 장범준의 ‘벚꽃엔딩’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매년 4월 초만 되면 등장하는 이 노래는 봄에 대한 설렘을 키운다.
따뜻한 봄날이 벚꽃과 함께 조금 일찍 찾아왔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화면을 가득 채운 벚꽃 사진이 가득하고 나들이를 즐기러 온 가족·연인의 모습을 담은 기사도 끊임없이 쏟아진다.
이민경 사회부 기자
그러나 4월 중순이 된 지금, 벚꽃이 사라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빠르게 지고 있다. 3월 말부터 피기 시작한 벚꽃 잎이 4월의 시계가 절반도 지나지 않은 지금 자취를 감추고 있는 것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올해 서울 벚꽃의 공식 개화일은 3월25일이다. 서울에서 벚꽃 개화를 관측하기 시작한 1922년 이후 두 번째로 일찍 꽃이 폈다. 지난해보다 열흘 빠른 기록이다.

이른 개화의 대표적인 원인은 긴 일조 시간과 높은 기온이다. 기상청은 올해 3월의 일조 시간이 평년보다 34.6시간 많은 237.7시간이었다고 발표했다. 전국 평균 기온은 평년보다 3.3도 정도 높았다. 실제로 3월 전국 평균 기온은 9.4도로 측정됐는데 이는 기상관측망이 전국에 확충된 1973년 이후 3월 평균 기온으로 가장 높은 수치다. 이례적으로 높은 기온이 개화를 앞당겼다는 뜻이다. 4월 시험 기간에 맞춰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라고 하던 우스갯소리가 ‘벚꽃의 꽃말은 기후위기’라는 우려로 번지고 있다.

빨라진 개화와 낙화는 단순히 벚꽃 축제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만으로 그칠 일이 아니다. 먼저 사라진 꽃으로 인해 자연의 섭리가 깨지게 된다. 봄이 되고 꽃이 피면 땅속에 있던 곤충들은 개화 시기에 맞춰 수정한다. 곤충이 꽃가루를 다른 식물에 옮겨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하는 ‘공진화’가 자연스레 이뤄진다.

하지만 기후위기가 계속된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른 개화로 땅속 곤충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꽃은 지고 만다. 땅속 온도는 땅 위보다 느리게 상승하기에 식물과 곤충의 활동 시기가 엇갈리게 되는 것이다. 심각할 경우 식물의 자연스러운 성장 방해, 종 보전 어려움 등 생태계 위협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벚꽃 없는 벚꽃 축제’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기후위기를 체감하게 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투발루의 외무장관이 국토가 물에 잠기고 있다고 외치고 스웨덴의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노르웨이 정부 청사 앞에서 기후 시위를 하다 경찰에 연행돼도 대다수는 환경에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른 벚꽃 개화는 극단적인 날씨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고, 물이 마르고, 식량이 부족해졌음을 조금이나마 피부에 와닿게 했다.

기후위기에 대응할 ‘진짜’ 대책이 필요하다. 아무리 일회용 컵을 다회용 컵으로 바꾸고 비닐봉지를 금지해도 정부 차원의 실질적인 목표와 논의가 없으면 기후위기는 더 앞당겨지고 말 것이다. 환경단체·농어촌계·청년 등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벚꽃의 경고는 가볍게 넘어갈 사안이 아니다.

이민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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