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을 깨니 길이 보였다···데뷔전 나서는 LPGA 장효준

양준호 기자 사진=이호재 기자 2023. 4. 11.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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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

지난해 10월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2부 무대인 엡손 투어에서는 새 시즌 1부 투어에 나설 10명의 새 얼굴이 탄생했다. 한국 선수도 한 명 있었다. 당시 열아홉 살 장효준이다.

장효준은 엡손 투어 첫 시즌에 바로 상금 랭킹 톱 10에 들어 LPGA 투어 입성의 꿈을 이뤘다. 덕분에 8라운드 일정의 마라톤 레이스 같은 퀄리파잉 시리즈를 치를 필요 없이 직행 티켓을 들고 아주 따뜻한 겨울을 보냈다. 미국 플로리다와 한국에서 2023년 데뷔 시즌을 설레는 마음으로 준비했고 13일(한국 시간) 하와이에서 시작되는 롯데 챔피언십을 통해 드디어 LPGA 투어에 데뷔한다.

장효준은 “지난 시즌 독한 선수, 꾸준한 선수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는데 LPGA 정규 투어에 가서는 골프에 집중하면서도 투어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라며 “가는 대회장마다 주변 맛집을 방문하거나 유명한 산을 찾아 등산도 할 것”이라고 말했다.

美 생활서 발견한 새로운 나

장효준은 우승 없이도 상금 10위(약 7만 8000 달러)에 오를 만큼 꾸준하게 상위권 성적을 냈다. 준우승 두 번을 포함해 다섯 번의 톱 10 진입으로 상금 11위 선수를 1765 달러 차이로 제치고 1부 직행 티켓을 따냈다.

장효준은 “직행한 10명은 플로리다의 LPGA 본사에 초청 받아 풀시드 자격이 적힌 큰 패널을 들고 기념 사진도 찍고 LPGA의 높은 분한테 덕담도 들었다”며 “합격증인 패널을 한국에 가져와 부모님께 보여드렸고 집에 잘 보관 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 국가대표 상비군까지 지낸 장효준은 열여섯 살 때 홀로 미국으로 건너갔다. 골프에만 얽매이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서 공부도 하면서 크고 넓게 보는 게 좋겠다는 아빠의 권유를 장효준은 큰 고민 없이 받아들였다. 그 시기에 힘든 일이 많았던 것도 있고 어릴 때부터 프로 턴을 일찍 하는 게 목표이기도 했다.

아침 일찍 등교해 공부하고 오후에 골프 연습, 저녁엔 학교 숙제 하는 생활을 장효준은 오히려 즐겼다. 학교에서는 체육 시간에 골프 연습을 하도록 배려해주는 것 말고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이 교과를 따르게 했다. 낯선 미국에서 학교생활을 하면서 그는 “생각의 폭이 넓어졌고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골프 선수로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돌아보며 성숙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도 있다”고 돌아봤다.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차를 빌려 직접 운전을 해가며 투어를 뛰기도 했다. 대회를 마치고는 집까지 한 번에 30시간을 쉬지 않고 운전한 적도 있다.

한땐 로봇처럼 골프만

골프는 초등학교 4학년에서 5학년 올라가던 무렵에 처음 배웠다. 그러고는 5학년 여름에 처음 대회에 나갔다. 볼을 홀에 넣을 때 느낌이 마냥 좋고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듣는 것도 좋았다고 한다. 배울수록 적성에 맞는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었다. 장효준은 “골프는 생활이랑 깊이 연관돼있고 어떤 한 가지 때문에 잘 되는 스포츠가 아니라서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복잡하기에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커졌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대회에서 받은 트로피를 모두 모으면 70개쯤 된다. 좋아하는 걸 더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서 얻은 결과물들이다. 서울 잠실 집에서 연습장이 있는 경기 용인까지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도 있었다. 그렇게 국내에서 골프를 배울 땐 5년 간 반나절도 제대로 쉰 적이 없을 정도로 일요일에도 쳇바퀴를 돌렸다. 장효준은 “정말이지 로봇처럼 보낸 시간들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랬던 그에게 낯선 타지에서의 생활은 딱히 외로움도 느끼지 않을 만큼 큰 에너지로 작용했다. “너무 다른 문화를 배워가는 과정이 힘들면서도 재밌었어요. 비자라든가 회계 문제 같은 건 그전까지 아예 몰랐던 부분들인데 변호사를 직접 알아보고 하나씩 숙제처럼 해결해나가면서 어른이 돼가는 느낌을 받았어요. 통장 만드는 것처럼 아주 기초적인 것도 그 전엔 할 생각이 없었는데 미국에선 다 스스로 해야만 하는 것들이니까 시행착오도 겪으면서 배운 게 참 많아요.”

학교에서 장효준은 거시경제학에 흥미를 발견했다. ‘아, 이렇게 사회가 돌아가는 거구나’하고 느꼈다고. 이후 한국에서 아빠가 보내준 경제 관련 책들도 많이 읽었다. 미국의 정부 운영에 관심이 생겨 그쪽 공부도 재밌게 했다. 요즘엔 심리학 분야 책을 관심 있게 보고 있다.

줄넘기 2000개, 자전거 50㎞

집안에 운동 쪽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도 장효준은 유독 몸 움직이는 걸 좋아했다. 정적인 운동으로 알려져 있는 골프를 하면서도 동적인 운동에 대한 관심은 놓을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스트레칭하고 퍼트 연습을 하고는 운동장을 달렸다. 아빠와 같이 집 근처 한국체대 운동장에 나가 5㎞씩 달렸다. 스톱워치를 든 아빠는 기록 단축을 확인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회가 있을 땐 러닝보다 줄넘기에 집중했다. 한 번 시작하면 2000개씩 넘었다. 지난 시즌엔 1분 동안 ‘최대한 많이 넘고 30초 쉬고 다시 1분을 넘는’ 줄넘기를 15분 간 계속하는 식으로 운동했다. 50㎞씩 자전거 타기도 꾸준히 했다고. 장효준은 “골프를 미국에서 하다 보니까 대회가 워낙 많아서 체력 운동의 필요성을 더 절실하게 느꼈다”고 했다. 2023시즌에 “방문하는 대회장마다 주변의 유명한 산을 찾아 올라갈 것”이라고 한 것도 등산으로 여가 활동과 체력 관리를 다잡겠다는 의지다. 수영도 워낙 좋아해서 대회장에서 가까운 호수나 바다를 찾는 일도 투어 생활의 루틴으로 삼을 것이라고 했다.

LPGA 투어 직행 티켓을 따낸 10명 중 지난 시즌 엡손 투어 우승이 없는 선수는 장효준뿐이다. 상금 랭킹 21위에 머물다가 마지막 4개 대회에서 극적인 스퍼트로 상금 10위까지 올라간 뒤 시즌을 마쳤다. 우승 없이도 상금 상위에 오를 만큼 꾸준한 성적을 낸 것도, 다른 선수들이 지쳐갈 때 오히려 힘을 내 막판 뒤집기에 성공한 것도 평소 부지런히 길러 놓은 체력 덕분이다. 지난 시즌 엡손 투어는 21개 대회로 운영됐다.

박성현의 퍼포먼스와 리디아 고의 꾸준함

장효준의 강점 중 하나는 퍼트 라인을 잘 본다는 것이다. 그린에서 전문성을 뽐내는 캐디들도 장효준의 의견에 귀 기울이는 경우가 많다. 어릴 때부터 레슨 프로들한테 일관되게 들었던 칭찬이 ‘라인 잘 본다’였다. 2022시즌 엡손 투어에서 그린 적중 때 퍼트 수 1.75개로 이 부문 전체 5위에 올랐다.

장효준은 퍼트 라인을 잘 읽는 비결에 대해 “특별한 방법 같은 건 없다. 그린 위에서 사방을 돌아다니면서 퍼트 라인을 보고 감을 높이는 스타일”이라며 “같은 종의 잔디라 해도 결에 따라서 차이가 크기 때문에 최대한 여러 조건들을 참고하려고 하는 편”이라고 했다. 낯선 그린에 금방 적응하는 능력은 LPGA 투어라는 새로운 무대에 나서는 신인에게 엄청난 무기일 수 있다.

장효준은 “퍼트에 대한 칭찬을 꽤 받긴 했지만 사실 저는 샷에 투자한 시간이 많고 샷 연습을 더 좋아한다”고 했다. 지난 시즌 그는 평균 258야드의 드라이버를 77.4%(10위)의 정확도로 구사했다. 그린 적중률 73%대로 아이언 샷도 빼어났다. 그 결과 총 236개의 버디로 버디 수 전체 2위에 이름을 올렸다.

장효준은 ‘장타 여왕’ 박성현의 퍼포먼스와 세계 랭킹 1위 리디아 고(뉴질랜드)의 꾸준함을 닮고 싶다고 했다. “박성현 프로님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와 특유의 느낌을 좋아해요. 스윙적인 쪽으로 생각하면 좋은 스윙을 가진 선수가 워낙 많아서 닮고 싶은 선수가 너무 많고요. 오랜 기간 투어를 뛰고 있는데도 지금까지도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리디아 고 프로님 또한 닮아가려고 노력할 생각입니다.”

롤모델을 딱 한 명만 꼽으라면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스타인 미국의 저스틴 토머스다. 더 CJ컵 제주 대회를 갤러리로 따라 돌았다는 장효준은 “정말 강렬했다. 몸이 막 크거나 하지도 않은데 장타자인 데다 임팩트 강한 플레이를 펼치더라. 캐디한테 너무 의지하지 않고 코스에서 필요한 것들을 스스로 찾아서 하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며 “결국 우승까지 하더라. 그 이후로 플레이를 더 눈여겨보고 있다”고 했다.

루키 장효준한테서 골프 팬들은 어떤 플레이를 기대하면 좋을까. “생각이 많지 않고 공격적으로, 최대한 심플하게 코스를 공략하는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4번 아이언 같은 롱 아이언 치는 것도 좋아하고 가장 좋아하는 클럽 중 하나도 우드라서 그런 부분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장효준은 “샷은 물론 멘탈에 있어서도 일관성 있는 골프를 보여드리고 싶다”며 “골프장 밖 생활부터 중심을 잘 잡아야 골프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크고 넓은 시각을 갖고 새로운 무대에 뛰어들겠다”고 다짐했다.

PROFILE

출생: 2003년 | 프로 데뷔: 2022년

주요 경력(2022시즌 엡손 투어):

도요타 클래식·IOA 클래식 2위

가디언 챔피언십·서클링 레이븐 챔피언십 4위

버디 수 2위(236개), 그린 적중 때 퍼트 수 5위(1.75개)

양준호 기자 사진=이호재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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