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여자” 외치며 女역도 우승한 남자...PC(정치적 올바름)에 쏟아지는 조롱과 야유 [조선칼럼 어수웅]

어수웅 여론독자부 부장 2023. 4. 1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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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최근 벌어진 두 사례는 특히 그렇다.

지난 3월 28일 이탈리아 피렌체에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앞에서 관광객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근 미국 플로리다의 한 학교에서 미술시간에 학생들에게 다비드상 사진을 보여 줬다가 누드사진을 보여줬다며 항의하는 학부모들 때문에 교장이 사임하는 일이 있었다. 이에 피렌체 시장과 아카데미아 미술관측은 이 학교 학부모와 학생들이 다비드상을 직접 와서 보도록 이들을 초청할 계획이다./AP 연합뉴스.

첫째는 캐나다 여성 역도 대회에 남성이 출전해 우승한 사건이다. 지난달 캐나다 앨버타주에서 열린 ‘히어로즈 클래식’ 여성 84㎏ 이상 체급에서 애비 실버버그(silverberg)라는 선수가 출전해 167㎏을 번쩍 들어 올렸다. 이전 기록을 무려 45㎏이나 능가한 역대 최고 기록. 문제는 실버버그가 남성이라는 점이다. 이 황당한 출전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정치적 올바름(PC. Political Correctness)을 지향하는 캐나다 역도연맹이 규정을 열어놓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믿는 성 정체성으로도 출전할 수 있도록 한 것. 극단적으로 말해 자신이 여자라고 생각한다면 여성부에 출전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실버버그의 출전은 일종의 조롱과 야유였다. 이 부문의 기존 절대 강자는 앤 안드레이스(Andres). 청소년 시절에는 남성이었지만, 성전환 수술을 거쳐 여성이 된 트랜스젠더다. 소수자와 다인종을 차별하지 않기로 한 캐나다 스포츠 윤리 센터가 트랜스젠더의 출전을 일찌감치 허용한 덕이다. 그들에게 기회의 창이 열린 건 축하할 일이지만, 이전에는 생각할 필요 없던 고민거리가 시작됐다. 남성 사춘기를 겪으며 더 많은 근육과 힘을 갖게 된 트랜스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과 같은 바벨로 경쟁하는 건 공정한가. 앤 안드레이스의 우승은 정의고, 실버버그의 우승은 만행인가. 트랜스젠더인 안드레이스가 4년 연속 우승하자, 캐나다 독립 여성 스포츠 위원회(ICONS)는 실버버그의 첫 우승을 지지하고 나섰다. “불합리했던 과거를 원래 자리로 돌려놓는 첫걸음입니다.“ 트랜스젠더 여성이 생물학적 여성의 영토를 빼앗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선언이었다.

우리에게는 해외 토픽처럼 알려졌지만, 생각해 볼 만한 사건이 또 하나 있다. 실버버그가 캐나다에서 여성 역도 대회의 난센스 규정을 비웃었을 무렵, 미국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교장이 사표를 냈다. 미켈란젤로(1475~1564)의 다비드 조각상 사진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보여줬다가 왜 포르노를 미성년자에게 보여주냐는 학부모 항의를 받은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다비드상은 성경에 등장하는 다비드(다윗)가 골리앗과 맞서 싸우는 모습을 대리석에 담은 약 5미터 높이의 조각상. 미켈란젤로를 거장의 자리에 올린 서양미술사의 걸작이다.

얼핏 보면 예술과 포르노를 구분하지 못한 학부모가 빚은 참사다. 예술에 무지한 학부모가 항의했다고 그만한 일로 사표라니. 하지만 이 사표 역시 이면에는 PC우선주의와 이에 맞선 보수의 ‘문화 전쟁’이 숨어 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플로리다주는 학교에서 성 정체성이나 인종차별에 관한 토론을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가르칠 경우 학부모에게 사전 통지하도록 하고 있다. 소위 ‘부모의 교육권리법’이다. 학교장은 이 규정에 걸린 것이다. 물론 다비드상을 포르노라고 공격한 건 학부모의 무리수였지만, 그 과몰입의 커튼 뒤에는 학부모들의 PC 공포증이 존재하고 있었던 것.

인종·성별·출신·장애·종교·성적 지향 등에서 차별과 혐오를 없애자는 PC의 선의에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제는 요즘의 PC가 균형 감각을 잃고 자주 추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넷에 유행하는 밈(meme) 중에 이런 장면이 있다.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한 작품 중 하나인 ‘타이타닉’.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구명보트를 타려는 양복 입은 신사를 승무원이 제지한다. “선생님, 여자와 어린이가 우선입니다.” 바로 옆에 ‘만약 타이타닉이 지금 침몰한다면’이란 제목 아래 이런 패러디 장면이 있다. 승무원의 제지에 신사는 대답한다. “나는 내 정체성을 여성이라 생각합니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양자경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오스카의 선택을 기쁘게 지지했다. 아시아인이 받아서가 아니라, 받을 만한 배우가 최고의 연기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화가 나는 경우도 잦아졌다. 인종과 성 정체성의 기계적 균형에 집착하며 참을 수 없이 진부해진 마블의 어벤저스 영화를 볼 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며 30년 전 세상을 떠난 거장 로알드 달(1916~1990)의 문장을 현재의 출판사가 수백 군데나 뜯어고쳤다는 소식을 들을 때다.

이런 난센스가 반복될수록 PC는 조롱과 야유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캐나다 역도협회는 트랜스젠더가 여성 부문에 출전하도록 허용할 게 아니라 트랜스젠더 부문을 새로 만들어야 했고, 타이타닉의 승무원은 자신이 여성이라 주장하는 남자를 “부끄러운 줄 알라”고 꾸짖어야 했다. 파이를 키우는 게 아니라 남의 떡을 빼앗는 PC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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