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일기 쓰며 내면 수련... 돌부처 된 람보, 그린재킷 입다
스페인 장타자 욘 람(29) 별명은 ‘람보’다. 320야드를 가볍게 날리는 거구(188㎝·100㎏)에 다혈질 성격이 겹쳐서다. 압권은 2017년 US오픈 2라운드. 샷 실수 이후 욕설을 내뱉고 클럽을 패대기친 뒤 발로 걷어차며, 사인 보드를 쾅쾅 내리치는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람은 그 대회에서 컷도 통과하지 못했다. 재능은 뛰어나지만 감정을 조절하지 못해 기대만큼 성적을 올리지 못하던 그는 애리조나주립대 유학 시절부터 교제하던 지금 아내 켈리와 2019년 말 결혼하면서 달라졌다. 켈리는 같은 대학 창던지기 선수였다. 아내와 퍼즐을 맞추고 일기를 적으면서 매일 내면을 다스렸다. 두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아이들이 우리 행동을 지켜보고 있다”면서 평정심을 찾으려 애썼다.
10일 막을 내린 87회 마스터스골프는 이제 람이 과거 나타났던 ‘분노조절장애’로부터 벗어났음을 보여주는 고해성사 같았다. 그는 4라운드에서 버디 4개 보기 1개로 3타를 줄이며 최종 합계 12언더파 276타를 기록하면서 3라운드까지 선두를 달렸던 브룩스 켑카(33·미국)에 역전 우승했다. 켑카는 마지막 날 버디 3개 보기 6개로 3타를 잃고 8언더파 280타로 마감했다. PGA(람)와 LIV(켑카) 대결에서 PGA(미국 프로골프)에 승전보를 날렸다. LIV는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후원하는 새로운 골프투어 대회. 람은 PGA, 켑카는 LIV 소속이다.
람은 첫날인 7일 1라운드 1번홀(파4)에서 4퍼트로 더블보기를 기록했다. 전 같으면 울화가 끓어 스스로 무너졌을 법한 상황.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람은 2·3번홀 연속 버디로 만회하고 그 뒤로 7타를 더 줄여 7언더파 65타로 켑카, 빅토르 호블란(26·노르웨이)과 공동 선두로 1라운드를 마쳤다. 그는 “마스터스에서 1980년과 1983년 우승한 스페인 선배 골퍼 세베 바예스테로스를 떠올리며 경기했다”며 “세베라면 지나간 일보다는 앞으로 남은 홀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예스테로스는 11년 전 5월 7일 뇌종양으로 54세에 세상을 떠났다.
이번 마스터스를 덮친 악천후는 모든 출전 선수를 괴롭혔다. 람은 2라운드 도중 비바람 때문에 중단된 경기를 다음 날 한꺼번에 치르기도 했다. 3라운드 6번홀까지 켑카가 4타자 단독 선두. 람과 켑카는 마지막 날 3라운드 잔여 12개홀과 4라운드 18개홀까지 30개 홀 마라톤 혈투를 벌였다. PGA 시절 8승 중 4승을 메이저 대회(US오픈과 PGA챔피언십 각각 2승)에서 거둬 ‘메이저 사냥꾼’으로 통하는 켑카는 ‘람보(람)’가 전과 달리 ‘돌부처’처럼 흔들리지 않자 되레 당황하면서 승기(勝機)를 내줬다.
첫 마스터스 제패로 람은 2021년 US오픈 이후 2년 만에 메이저 2승째를 올렸다. PGA투어 통산 11승. 세계 랭킹은 지난주 3위에서 1위로 올라섰고, 우승 상금 324만달러(약 43억원)를 챙겼다. 켑카는 이날 7타를 줄이면서 올라온 필 미켈슨(53·미국)과 4타 차 공동 2위 자리를 나눠 가졌다. 람은 스페인 출신으로 바예스테로스(1980·1983), 호세 마리아 올라사발(1994·1999), 세르히오 가르시아(2017)에 이어 4번째 ‘그린 재킷’을 입었다. 한국 선수는 임성재와 김주형이 나란히 공동 16위(2언더파 286타), 이경훈이 공동 23위(1언더파), 김시우가 공동 29위(1오버파)로 대회를 마쳤다.
람은 올 들어 4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지난 1월 센트리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에서 마지막 날 10타를 줄이며 7타 차 역전승을 거둔 이후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을 석권했다. 선천적으로 오른다리가 1㎝ 이상 짧고 발목이 기형이라 골반 회전이 잘 안 되는 약점을 짧은 백스윙과 빠른 다운스윙으로 극복하고 있다. 여기에 마스터스를 거치며 “15번째 클럽이라 불리는 멘털 능력까지 갖췄다”는 지적이다. “(람이) 경쟁자들에게 악몽이 될 것”이란 분석이다. ‘람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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