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된 조국서 편히 잠드소서... 돌아온 ‘미스터 션샤인’ 황기환 지사
10일 오전 9시 인천공항 제2 터미널. 뉴욕에서 출발한 KE086편의 문이 열리면서 리프트를 타고 태극기로 덮은 관이 내려왔다. 양쪽 20명씩 도열한 국방부 의장대는 “받들어 총”으로 예를 갖췄다.
2018년 방송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주인공의 실제 모델로, 일제강점기 미국·유럽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미국 땅에 묻힌 고(故) 황기환(1886~1923) 애국지사의 유해가 100년 만에 고국 땅을 밟는 순간이었다. 100년 만에 돌아온 황 지사의 유해는 독립한 조국을 느껴보려는 듯 의장대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고, 드라마에서 조국 광복 소망을 담은 삽입곡으로 쓴 ‘좋은 날’이 트럼펫으로 연주됐다.
이날 인천공항 현장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이회영 선생 후손인 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 김구 선생 후손인 김미 백범김구재단 이사장, 윤봉길 의사 후손인 윤주경 국민의힘 의원, 김좌진 장군 후손인 김을동 전 의원 등이 영접을 나왔다.
황 지사의 유해는 이날 오후 국립대전현충원으로 봉송돼 독립 유공자 제7 묘역에 안장됐다. 박 처장은 “100년이 넘어가면 대한민국 국격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반드시 봉환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며 “만시지탄이지만 100년 만에 고국 품으로 모실 수 있게 돼 정말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이날 봉환식 주제는 드라마 명대사 중 하나인 ‘독립된 조국에서 씨 유 어게인(see you again, 다시 봅시다)’으로 정해졌다. 보훈처는 순국 100년 만에 황 지사가 완전한 한국 국민이 됐다는 점을 강조한다는 의미에서 그의 영현 앞에 가족관계등록부도 헌정했다. 황 지사가 결혼하지 않아 후손이 없고, 조선민사령이 제정된 1912년 이전 해외로 이주해 한국에서 무적(無籍)이라는 점을 고려해 등록 기준지를 임시정부 기념관이 있는 ‘서울 서대문구 통일로 279-24′로 부여하고 가족관계 등록 절차를 마무리했다.
황 지사는 1886년 4월 4일 평남 순천에서 태어나 19세가 되던 1904년 증기선을 타고 미국 하와이 호놀룰루에 입항했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 후인 1918년 5월 18일 미군에 자원 입대해 참전했다. 종전 후 유럽에 남은 황 지사는 1919년 6월 프랑스 파리 강화회의에 파견된 김규식 선생 등 한국 대표단 사무를 도왔다. 이를 계기로 임시정부 파리위원부 서기장으로 임명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독립 선전 활동을 벌였다.
황 지사는 1921년부터는 미국으로 장소를 옮겨 전 세계에 식민지 현실을 알리는 독립운동을 이어갔다. 임시정부 구미위원회 외교위원으로 조국 독립과 해외 거주 한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한 활동을 이어가다 1923년 4월 17일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순국했다. 1995년 황 지사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한 정부는 2013년부터 유해 봉환을 추진했다. 사업이 한동안 지지부진했지만 2018년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방영으로 황 지사의 파란만장한 삶이 국내외에 널리 알려지면서 속도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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