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우키시마호’ 희생자 집단매장지 첫 확인…“발굴·송환 시급”
[앵커]
1945년 8월 일제가 패망한 그 달 일본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던 배 한 척이 있었습니다.
강제 동원 노동자를 비롯해 조선인 수천 명을 태운 귀국 1호선 '우키시마'호 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고향 땅을 밟지 못합니다.
의문의 폭발로 배가 침몰했기 때문인데요.
이후 행방을 찾을 수 없었던 우키시마호 희생자들이 집단으로 묻힌 장소가 78년 만에 처음 확인됐습니다.
윤진 기자의 단독 보돕니다.
[리포트]
일본 교토 북쪽의 항구도시 마이즈루.
1945년 8월24일, 해방을 맞아 귀국길에 오른 한국인 수천 명을 태운 '우키시마호'가 침몰한 곳입니다.
이 사고로 숨진 한국인은 일본 정부가 524명으로 발표했지만, 생존자들은 5천에서 8천 명에 이른다고 증언했습니다.
엄청난 참사였는데도, 당시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고현장 인근 거주 주민 : "(폭발 소리에) 놀랐고 무서웠다고 말하면서 교실로 뛰어들어왔습니다. 신문에는 아무 것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78년, 유족들에게 놀라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마이즈루 주민들로 구성된 '추도회'에서 희생자들의 집단 매장지로 추정되는 곳을 찾은 겁니다.
[시나다 시게루/마이즈루 순난자 추도회 회장 : "해군이 (매장) 작업하는 걸 주민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꽤 시간이 지났지만 (당시) 여기에 묻었다고 (주민들이) 말했습니다."]
해상자위대 영내, 해안가 공원, 초등학교 앞 공터 등 3곳으로, "해군이 엄청난 양의 유해를 묻었다", "바다에서 시신 여러 구를 묶어 끌어올린 뒤 한꺼번에 묻었다" 등의 목격담도 있었습니다.
당시 떠내려온 시신 수백 구를 모아 해변에서 한번에 화장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이렇게 상당수의 유해는 소실됐을 거로 추정됩니다.
일부 유해는 어민들에게 발견돼 지역 사찰에 안치됐습니다.
[김문길/한일문화연구소 소장 : "돌아가신 분 유해, 머리 4기만 여기 들어있답니다."]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헤맸던 아들은 혹시라도 아버지 유해가 아닐까, 간절히 절을 올립니다.
["몰랐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한영룡/우키시마호 희생자 유족 : "내가 3살 때 아버지가 여기 오셨거든요. 지금 아버지는 산소도 없는…."]
이곳은 그동안 찾는 이도 없었습니다.
[구스노키 분항/주지승 : "내가 주지가 된 게 11년 전인데, 지금까지 (참배객은) 없었습니다. 유골함이 세월이 지나면서 부서졌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뼈들과 합쳐졌습니다."]
유해가 더 훼손되기 전에 정밀 발굴 조사와 유전자 검사가 시급해 보입니다.
유족들은 유해라도 고국 땅에 돌아올 수 있도록,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줄 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KBS 뉴스 윤진입니다.
촬영기자:정현석 최석규/그래픽:서수민
윤진 기자 (jin@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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