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에 꼬인 한·미…비판 커지는 ‘저자세 외교’

유정인·유설희 기자 2023. 4. 10. 21:2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실, 미 도청 파문에 왜곡 거론하며 “사실 파악 후 조치” 대응 신중
‘미온적 대처’ 비판에도 각 세우기 쉽지 않아…방미 앞 파장 최소화 집중

미국 정보기관의 도청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대통령실이 난감한 상황에 놓였다. 미국의 불법행위 정황에 신속하고 엄정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저자세’ 외교 비판이 높아질 수 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과 한·미 동맹 최우선 기조를 고려하면 선제적으로 비판하기도 녹록지 않다. 대통령실은 ‘선 진상파악, 후 조치’라는 신중론 기조하에 공식 대응은 미룬 채 파장을 최소화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0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양국의 상황파악이 끝나면 우리는 필요할 경우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대통령실 도청 내용이 미국 정부 조사를 통해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도청 의혹이 불거진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의 우크라이나 무기 ‘우회지원’ 논의도 왜곡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는 분위기다. ‘제3국’ 등 특정 세력이 의도적으로 유출 보고서를 수정·조작했을 가능성도 거론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정치적 의도로 왜곡된 부분이) 있어 보여 조사 중인 것으로 안다”면서 “언론 보도에 난 것을 가지고 공식 대응하는 것은 소문을 듣고 싸우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미국 정부는 보고서 유출 수사를 의뢰하면서 동맹국에 대한 도청 행위가 ‘불가능’하다거나 ‘사실무근’이라고 전면 부인하지 않고 있다. 대신 제3국 등 특정 세력이 일부를 수정·조작했을 가능성은 열어뒀다. 이 같은 상황에서 대통령실도 실제 도청이 이뤄졌을 가능성보다는 보고서 왜곡 가능성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다만 논란 확산은 경계했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사건을 과장하거나 혹은 왜곡해 동맹관계를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많은 국민들로부터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야당의 공세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풀이된다. 더불어민주당이 용산 대통령실 ‘졸속 이전’이 문제라고 주장하는 데는 “청와대보다 용산 안전이 더 탄탄하다”고 반박했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현 대통령실은 전임 정부 때 국방부와 합참 건물이었는데) 그러면 문재인 정부 때 군이 다 틀렸다는 것인가”라고 했다.

대통령실이 신중론을 펴는 데는 적절한 대응 수위를 찾기 어려운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적극적 대응을 하면 외교적 부담이, 소극적 대응을 하면 국내 정치적 부담이 높아진다. 당장 안팎의 난제는 표면화했다. 정부가 신속하고 엄정한 대응에 나서지 않는 것을 두고 야당을 중심으로 미온적 대처라는 비판이 분출되고 있다. ‘선제적 양보’ 기조의 대일외교가 국민적 비판을 받은 데 이어 이번에는 굴욕적 대미외교 비판이 커질 수 있다.

이달 말로 예정된 미국 국빈방문에서 실질적 성과를 끌어내는 일은 더 중요해졌다. 미국 측 조사 결과가 방미 전에 나올지는 미지수다. 조사가 길어질 경우 한·미 정상은 의혹을 ‘의혹’으로 남겨둔 상황에서 만나게 된다. 확장억제 방안이 실효적으로 진전되거나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얻지 못할 경우 ‘도청 파문’이라는 악재와 맞물려 저자세 대미외교 기조를 두고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은 국빈방문 협의를 위해 11일부터 3박5일 일정으로 미국 워싱턴을 찾는다. 미국 측과의 논의 테이블에 이 문제도 오를 가능성이 높다. 윤 대통령의 외교력과 정치력이 또다시 시험대에 섰다.

유정인·유설희 기자 jeong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