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 ‘설명하지 않는’ 윤석열 정권, ‘미국 도청’도 뭉갤 텐가
블랙핑크를 좋아한다. 유튜브에서 ‘뚜두뚜두’ 뮤직비디오가 기록한 20억뷰, ‘킬 디스 러브’의 17억뷰에 기여했다. 최근 팬으로서 의아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을 경질했는데, 블랙핑크·레이디가가 미국 합동공연 문제가 경질 배경으로 거론돼서다. 다수 언론에 따르면, 질 바이든 미 대통령 부인이 제안한 블랙핑크·레이디가가 행사 보고가 수차례 누락됐다고 한다. 대통령실은 비슷한 보도가 이어지며 기정사실화하자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공연은 대통령의 방미 행사 일정에 없음을 알려드린다”는 한 줄짜리 공지를 냈다. 당초 추진됐다가 무산된 건지, 아예 추진되지 않은 건지, 무산됐다면 왜 무산된 건지 설명이 없다. 결론적으로, 공연이 김성한 전 실장 경질과 관계가 있는지 없는지도 알 길이 없다. 시민은 외교안보 사령탑이자 대통령의 50년 지기(知己)가 하루아침에 잘린 까닭을 여전히 모른다.
윤석열 정권의 핵심적 특징은 ‘설명하지 않는 권력’이라는 데 있다. 이슈가 발생했을 때 시민이 요구하는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 혹은, 뜬금없는 해명을 내놓곤 충분히 설명했다고 주장한다. ‘바이든·날리면’ 발언, ‘학폭 개입’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임명, 주 69시간 노동, 강제동원 해법, 후쿠시마 수산물 수입 논란 등이 그 사례다. 진솔한 사과는 언감생심, 사실관계조차 명확히 드러난 사안이 없다. 내각도 따라간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권리를 “돌덩이”에 비유한 한덕수 국무총리는 의원들의 지적에 “오해한 거다. 똑바로 듣는 게 중요하다”고 외려 훈계한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의원 질의에 답하는 대신 질문을 거꾸로 던지는 ‘반문 화법’을 구사한다.
검찰권력의 핵심은 누군가를 재판에 넘길 수 있는 권한보다, 재판에 넘기지 않을 수 있는 권한(기소편의주의)에 있다고들 한다. 잘못된 기소의 경우 무죄가 선고되고,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 ‘보복 기소’에서처럼 ‘공소권 남용’ 판결이 날 수도 있다. 검찰의 자의적 불기소를 견제하는 수단도 있기는 하다. 검사가 고소·고발 사건을 불기소했을 때, 결정이 타당한지 고등법원에 묻는 ‘재정신청’이다. 그러나 2013년부터 2022년 6월까지 전국 고법에 접수된 재정신청의 인용률은 0.63%에 불과했다(지난해 10월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자료).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설명하지 않는 권력’이 된 것은 검찰권력의 특성과 일맥상통한다. 검사에게 기소하지 않을 권한이 있듯, 권력자에겐 설명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듯싶다. 굳건히 버텨주는 30% 콘크리트 지지층도 ‘빽’으로 여길 터다. 무엇보다, 설명하지 않으면 반박당할 일도 없다. 윤석열 정권은 공론장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The Buck Stops Here(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를 즐겨 인용한다. 그렇다면 잊어선 안 된다. 민주국가 지도자의 책임에는 ‘설명할 책임(accountability)’이 포함된다는 것을. 대통령실은 지난해 6월 취임 한 달 치적을 홍보하며 “출근길 (문답을 통해) 국민의 궁금증에 수시로 답하는 최초의 대통령”이라 자찬했다. 지금의 윤 대통령은 형식 면에서나 내용 면에서나 ‘국민의 궁금증은 한사코 외면하는’ 대통령이 됐다. 출근길 문답은 중단하고, 새해 기자회견과 순방 중 기내간담회는 건너뛰었다. 대신 국무회의나 비상경제민생회의 석상에 앉아 하고 싶은 말만 생중계로 내보낸다.
윤석열 정권이 또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미국 정보기관이 한국 국가안보실 논의 내용을 도청한 정황이 드러났다. 소셜미디어에 유출된 기밀문서에는 당시 김성한 안보실장과 이문희 외교비서관이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정책을 두고 나눈 대화가 생생히 묘사돼 있다. 공교롭게도 이 대화 이후 두 사람은 경질됐다. 윤 대통령 방미를 2주 앞둔 대통령실은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필요시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사건을 과장·왜곡해 동맹관계를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들로부터 저항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야당에서 대통령실 용산 이전과 연계해 공세를 펴는 데 대한 반응으로 보인다. 동맹 간 신뢰는 중요하다. 그러나 주권과 국익, 시민의 안전을 앞설 수는 없다. 2021년 미국이 유럽 정치인들을 도청했다는 의혹이 불거지자,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해명을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고 국민에게도 충분히 설명할 텐가. 아니면 이번에도 뭉갤 텐가.
김민아 칼럼니스트 ma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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