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따라왔는데…여기가 어디?
일행과 동반하고 휴대전화·보조배터리 식수 등 챙겨야
지난 4일 제주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에서 길을 잃었다는 60대와 70대 여성의 신고가 119에 접수됐다. 이들은 표선매립장 인근에 차량을 주차한 후 고사리를 꺾기 시작했는데 채취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자신들이 어디까지 이동했는지,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제주에서는 유독 봄만 되면 길을 잃었다는 신고가 폭증한다. 한 해 길 잃음 사고 절반이 4~5월에 몰릴 정도다. 원인은 야외활동이 증가한 영향이 있지만 무엇보다 질 좋기로 유명한 ‘고사리’ 때문이다.
10일 제주소방안전본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제주에서 발생한 길 잃음 안전사고는 모두 288건으로, 이 중 142건(49%)이 봄철인 4~5월에 집중됐다.
봄을 맞아 등산과 오름 탐방, 올레길·둘레길 걷기와 같은 야외활동이 많아진 영향이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4~5월이 고사리 꺾기 제철이라는 데 있다. 4~5월 길 잃음 사고 142건 중 107건이 고사리 채취 중 일어난 사고였다.
최근 3년간 길 잃음 사고 원인을 유형별로 봐도 고사리 채취가 113건(39%)으로 가장 많다. 이어 등산·오름 탐방 중 사고 109건(38%), 올레길·둘레길 탐방 중 사고 66건(23%) 순이었다.
고사리는 ‘산에서 나는 소고기’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맛과 영양이 좋다. 그중에서도 제주 고사리는 크고 굵으면서도 연하고 부드러워 품질 좋기로 유명하다. 제주에서 고사리를 채취하기 가장 좋은 시기가 4월에서 5월 중순이다. 비 온 뒤 더욱 잘 자라는 고사리 특성 때문에 제주에서는 ‘고사리 장마’라는 말이 있고, 고사리 채취 때 입는 고사리 앞치마도 별도로 판매한다.
제주도민들은 이 시기 고사리를 채취해 잘 말린 후 명절이나 제사 때 사용한다. 돼지고기와 함께 구워 먹거나 제주 전통음식인 고사리육개장의 주재료로 쓴다. 거래 가격이 높아 용돈벌이로 고사리 채취작업을 하는 이들도 많다. 제주도민뿐만 아니라 관광객 중에서도 ‘제주 좀 안다’는 이들은 일부러 이 시기 고사리 채취를 위해 제주를 찾는다. 고사리 채취 체험 관광상품도 있다.
고사리는 주로 오름과 곶자왈, 들판 등 중산간지역(해발 200~600m)에 분포한다. 매해 봄철만 되면 관광지도 아닌 인적이 드문 중산간도로 갓길에 차가 빼곡히 주차된 것을 볼 수 있는데 대부분 고사리를 채취하러 온 사람들이다. 채취객들은 고사리를 찾느라 바닥만 보며 들판과 숲을 누비는데, 특정 건물과 같은 기준점이나 이정표가 없다 보니 자기도 모르게 길을 잃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이다.
제주소방안전본부는 매해 반복되는 길 잃음 안전사고 발생을 줄이기 위해 지난달 29일부터 ‘봄철 길 잃음 안전사고 주의보’를 발령하기도 했다.
제주소방안전본부 관계자는 “조난사고에 대비해 일행과 항상 동반하고, 휴대전화와 보조배터리, 호각, 여벌옷, 물 등을 반드시 챙겨야 한다”면서 “길을 잃었을 때는 119 신고 후 이동하지 말고 구조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밝혔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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