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자교’ 수사에 이천 화재 준용…성남시, 교량·육교 정기점검에 개당 27만원
지난 5일 2명의 사상자가 난 경기 성남시 ‘분당 정자교 붕괴 사고’를 수사 중인 경찰이 4차 방정식과 같은 복잡한 실타래를 풀기 위해 지난해 8월 이천시 관고동에서 일어난 병원건물 화재사건의 사례를 준용할 것으로 파악됐다.
1993년 준공된 정자교는 설계·시공을 맡은 업체들이 도산하거나, 폐업을 거쳐 사명을 바꾸면서 경찰이 자료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졌다. 첫 적용 가능성이 제기된 중대재해처벌법상 ‘중대시민재해’ 역시 전·현직 성남시장들의 책임 소재를 구분하기 힘들고, 법 시행 전인 지난해 1월 이전의 관리 부실에 대해선 소급 적용이 어려워 무위에 그칠 가능성이 커졌다.
◆ 4차 방정식 된 ‘정자교’ 수사…설계·시공사 사실상 폐업
10일 수사당국에 따르면 이 사건을 수사하는 경기남부경찰청 수사 전담팀은 최근 압수수색을 거쳐 성남시와 분당구의 안전점검 관련 문서들을 포괄적으로 확보했다. 관리주체인 분당구청 공무원과 점검업체 관계자들도 잇달아 소환하고 있다.
반면 설계·시공 문건을 확보하고 관계자를 소환하는 데는 더딘 행보를 보인다. 정자교를 비롯해 ‘이상 징후’를 보이는 불정·수내교를 설계했던 삼우기술단이 자금난으로 1995년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방만한 경영과 자회사의 경영 악화, 중국 투자를 비롯한 무리한 사업 확장 등으로 부도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교인 올림픽대교와 서해대교, 현수교인 광안대교를 국내 처음으로 설계하는 등 특수교량 설계에서 독보적 기술을 지닌 곳이었다. 국가 주요 사업에도 다수 참여했던 이 업체가 문을 닫으면서 정자교 등의 관련 자료를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아울러 시공을 맡았던 광주고속은 건설 부문이 ○○산업, ○○건설 등 세 차례나 사명을 바꾸었는데, 이 과정에서 일부 폐업을 거친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책임 소재가 흐려진 셈이다.
수사팀은 시행사인 한국토지공사가 주택공사와 합병해 만든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관련 기록이 남아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별도의 조직을 꾸려 정자교와 관련된 설계·시공 문건을 추적 중이다. 하지만 LH가 분당 정자동에서 경남 진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일부 서류를 분실했을 가능성이 있고, 정자교도 완공된 지 30년이 지나 난항이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정확한 설계·시공 서류를 확보해야 시뮬레이션을 거쳐 설계·시공 과정의 문제점을 가릴 수 있다고 조언한다.
경찰은 해법으로 지난해 8월 투석 환자와 간호사 등 5명의 목숨을 앗아간 이천시 병원건물 화재 사건의 사례를 적용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당시 경찰은 부실시공과 작업자들의 무책임한 대응을 화재 원인으로 꼽으면서, 업체가 아닌 개별 현장 관계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현장 철거 작업자들이 차단 없이 에어컨 등 냉방기기를 작동했는데, 에어컨 전원코드 쪽에서 불이 붙은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다. 이후 작업자들은 방화문을 내리지 않고 도망간 것으로 파악됐다.
당시 수사 경찰은 건물 부실시공도 사고를 키웠다고 판단했다. 방화구획을 설정하기 위해선 3층과 4층 사이가 벽돌과 몰타르 등으로 완전히 막혀야 하지만, 2003년 건물 신축 당시 이 같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결국 3층에서 발생한 화재 연기는 층과 층 사이의 빈틈을 통해서도 4층으로 올라갔고 신장 투석을 받던 환자 4명과 화재 현장을 지키던 간호사가 목숨을 잃었다.
이를 정자교 보행로 붕괴 사고에 그대로 적용하면 설계·시공상 허점과 관리 부실이 밝혀질 경우 개별 관계자들이 처벌을 받게 된다.
이런 수사 과정은 여러 실타래가 엉키면서 결론을 내리기까지 적잖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고의 원인이 지자체의 관리 소홀이나 시공 등의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점이 먼저 입증돼야 한다.
경찰이 혐의 적용 가능성을 열어둔 첫 중대시민재해 적용 역시 쉽지 않아 보인다. 불특정 다수의 시민이 피해를 본 사고가 시설물 부실 관리 등이 원인으로 밝혀지면, 총괄 권한과 책임이 있는 지자체장 등이 처벌받도록 했지만 이 법은 지난해 1월 시행돼 이전부터 쌓여온 부실 관리에 대해선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아울러 정자교 등 탄천교량의 관리주체는 성남시장이 아닌 분당구청장이며, 안전점검 예산 삭감 등의 책임은 지난해 7월 취임한 신상진 시장이 아닌 전임 시장들에게 지워질 수 있다.
안전점검 결과가 어느 선까지 보고됐는지도 책임을 가릴 대목이다. 신 시장은 최근 사고 현장을 돌아보며 “보고를 전혀 듣지 못했다. 그랬다면 먼저 조치에 나섰을 것”이라며 선을 그은 바 있다. 지난해 7월 취임한 신 시장 재임 중에는 지난해 하반기 한 차례 형식적인 정기안전점검이 이뤄졌다.
성남시의회 등에 따르면 2021년 성남시 관내 20개 다리의 정밀점검에는 교량마다 800만원 남짓 비용이 지출됐고, 지난해 정기점검에선 170개 교량·육교에 개당 27만원이 쓰였다. 올해 성남시 본예산은 3조원이 넘는다.
업계 관계자는 “경쟁입찰로 싼 업체를 선정하다 보니 일선 점검이 부실화하고 있다”며 “교량마다 수십만원, 수백만원의 점검비만 소요됐다면 서류 위주의 용역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 5일 오전 9시45분쯤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의 탄천을 가로지르는 교량인 정자교의 양쪽에 있는 보행로 중 한쪽 보행로가 무너져 당시 이곳을 지나던 40대 여성이 숨지고 30대 남성 1명이 중상을 입었다. 희생된 여성의 유가족들은 관리 부실을 지적하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성남=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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