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층 디지털 활용 화상교육, 중앙도서관 사서들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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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한국에서 온 기자분이 수업을 참관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환영해 주세요."
지난 2월1일 오전 찾은 에스토니아 탈린중앙도서관 1층 강의실에서 마가레트 프루스 사서가 기자를 소개하자, 화상통화 플랫폼 '스카이프'에 접속한 할머니 7명과 할아버지 1명이 '하트', '좋아요', '미소' 등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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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토니아 탈린중앙도서관 등
컴퓨터·스마트폰 사용법 강습
전국 참여 사서만 2천명 넘어
정부, 대학과도 디지털 전환 협업
“오늘은 한국에서 온 기자분이 수업을 참관하기로 했습니다. 모두 환영해 주세요.”
지난 2월1일 오전 찾은 에스토니아 탈린중앙도서관 1층 강의실에서 마가레트 프루스 사서가 기자를 소개하자, 화상통화 플랫폼 ‘스카이프’에 접속한 할머니 7명과 할아버지 1명이 ‘하트’, ‘좋아요’, ‘미소’ 등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이름이 뭔가요?” “한국 어느 도시에서 왔나요?” “얼굴도 보여 주세요” 등 질문도 잇달았다.
프루스 사서가 온라인 동영상 편집기 ‘클립챔프’를 열어 자신의 컴퓨터 화면을 공유하자 웃음소리는 잦아들었다. 순식간에 ‘공부 모드’에 들어간 할머니·할아버지 여덟명은 프루스 사서를 따라 오픈소스 플랫폼에서 무료 영상 클립 세 개를 내려받았다. 이를 클립챔프로 불러온 뒤 원하는 길이로 잘라내 이어붙이는 법부터 밝기 조절, 페이드인·아웃, 줌인·아웃 등 특수효과 넣는 법까지 하나하나 따라했다. “궁금한 것 없으신가요?” 프루스 사서가 묻자, 어르신들은 기다렸다는 듯 “빨리감기 효과는 어떻게 넣나요?”, “움직이는 사람 얼굴에 모자이크를 넣으려면요?”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현장에서 통역을 도와준 교민이 “대체 할아버지·할머니들이 이걸 이렇게까지 배워서 어디에 쓰려는 걸까요?”라고 속삭일 정도로 질문 수준이 간단하지 않았다. 물론 어르신들의 디지털 리터러시(활용 능력)가 처음부터 수준급이었던 건 아니다. 2021년부터 2년 넘게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마다 열리는 ‘시니어 스카이프 클럽’에 참여한 덕에, 온라인에서 관공서 업무를 처리하는 법부터 이렇게 자신만의 동영상을 만드는 법까지 익힐 수 있었다고 했다.
이날 둘러본 탈린중앙도서관 곳곳에는 ‘행복한 노년’ (õnnelik seenior)이라는 문구가 붙은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 홍보물이 내걸려 있었다. 마음 맞는 장년층들이 모여 신청하면, 전문 교육을 거친 도서관 사서들로부터 비대면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에만 누적 1천여명이 탈린중앙도서관을 비롯한 탈린 시내 공공도서관에서 진행되는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에 참여했다. 시니어 스카이프 클럽과 같은 그룹 수업에 참여하기 어려울 정도로 디지털 도구 이해도가 낮은 경우엔, 일대일 대면 지도도 받을 수 있다.
이혼을 제외한 99%의 공공 서비스가 디지털로 이뤄지는 에스토니아에서 디지털 리터러시는 시민으로서 생활하기 위한 필수 능력에 해당한다. 이에 에스토니아 경제소통부는 2018년 전국 공공 도서관 500여곳 소속 사서 6천여명을 디지털 리터러시 전문 강사로 육성하는 사업에 처음으로 50만유로(6억7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했다. 지난해 6월 기준 에스토니아 전역에서 사서 2천여명이 디지털 리터러시 강사 역할을 병행하고 있다. 크리스틴 비버 탈린중앙도서관 개발 매니저는 “사회의 많은 부분이 디지털로 옮겨 가는 과정에서 노인·장애인·난민 등이 고립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공공 도서관들에 새로이 요구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시민들의 디지털 리터러시를 높이기 위해 대학들과도 적극 협업한다. 예를 들어, 탈린공과대학은 디지털 정부, 데이터, 인공지능, 디지털 서비스 디자인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온라인 강좌 ‘디지털 국가 아카데미’를 개설해 시민들에게 무료 개방하고 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디지털 경제 및 사회 지표’(DESI)가 이같은 노력의 성과를 보여준다. 이 조사에서 에스토니아 인터넷 이용자의 디지털 정부 서비스 이용 비율은 유럽연합 평균(65%)을 훌쩍 뛰어넘는 89%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카이레 칸니스투 탈린중앙도서관 홍보담당관은 “디지털 전환률이 높은 에스토니아에서도 모든 걸 종이 없이 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그는 “어르신들은 여전히 손에 잡히는 인쇄물로 된 홍보물을 나눠줘야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이 정말로 열린다는 걸 믿고 찾아온다. 이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익숙한 매체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탈린/글·사진 정인선 기자 re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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