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주머니` 화관법… 美도 "영업비밀 샌다" 항의
국내 기업들 "핵심 기술 유출 부담돼"
美도 '韓 화평·화관법' 무역장벽 지목
영업비밀 승인·법 개정 등 한목소리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산업계의 혁신을 가로막는 대표적인 '모래주머니'로 꼽히는 '화학물질관리법'(이하 화관법)을 '무역장벽'으로 규정했다. 2015년부터 시행된 이 법은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 유출 사고를 내면 해당 사업장 매출의 최대 5%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재계에서는 해당 법안의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과 중복 규제인 데다, 모호한 규정에 비해 처벌은 과도하고, 여기에 핵심 제조 노하우도 유출될 수 있는 우려가 있어서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센터 실장은 "국별 무역장벽보고서는 미국의 화학업체, 협회들이 문제제기를 하면 USTR이 무역장벽으로 반영해주는 방식으로 제작된다"며 "국내 기업들한테도 부담이 되는 내용이라면 한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환경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하고 오는 8월까지 관련 법안에 대한 개정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10일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USTR은 지난달 31일 미국 기업의 시장 진출을 제한하는 세계 각국의 무역 장벽을 수록한 '2023년도 국별 무역장벽보고서'에서 한국 화학물질 관리 체계를 구성하는 4개의 법인 화관법과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생활화학제품 및 살생물제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을 무역장벽으로 꼽았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화관법에 대해 '기업의 영업 비밀 보호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또 규정 이행 방법에 대한 지침 부족과 화학물질 검사를 위한 대상 물질과 검사 방법의 불투명성도 문제 삼았다.
국내 기업들 역시 화평법과 화관법이 과도한 규제라고 입을 모았다. 화평법 시행규칙 35조(화학물질 정보제공)에 따라 화학물질을 제조·생산하는 기업들은 화학물질의 명칭, 함량, 용도, 사용 조건, 취급 방법, 유해성 정보 등을 환경부에 의무 등록해야 한다.
일반기업들이 통상 쓰는 화학물질이면 관계가 없지만, 고부가가치 제품에 들어가는 핵심 물질의 경우 공개되는 순간 경쟁사 전문가들이 제조 노하우를 알아챌 수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나마 반도체 등은 산업부가 국가 핵심 기술로 인정해주면서 영업비밀 보호를 받지만, 대다수 기업들은 품질의 차이를 만드는 화학물질임에도 환경부에 등록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화학물질을 영업비밀로 승인해달라고 환경부에 신청을 할 수는 있지만, 실효성은 거의 없다. 화평법 제35조의2(화학물질안전정보의 제공범위에 대한 승인)에 따라 환경부장관은 승인신청을 받은 경우 정보제공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해당 화학물질의 구성성분, 함유량 등에 대한 정보가 화학물질안전정보에서 제외되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심의위에서 이를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환경부가 화학물질을 비공개 처리로 승인해주는 사례가 거의 없다"며 "정보공개법을 기준으로 경제성 등을 따져 심사를 하는데 환경부는 '이 물질이 심각한 영업비밀이냐'는 입장이고, 기업들이 낸 자료를 보고 비공개 처리 여부를 결정하는데 결국은 정량적인 부분보다는 정석적인 판단이 더 들어간다"고 했다. 여기에 중소중견기업들은 화관법에서 정한 안전관리 전문인력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 비용부담도 가중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전문인력을 반드시 둬야 하는데, 영세한 중소기업에서 일하고 싶어 하지 않아 인력 구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라며 "지금까지는 교육 등으로 유예가 가능했는데 이마저도 올해 끝나기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공장 시설에 대한 허가, 물질 사용에 대한 허가를 환경부가 하고 있다"며 "환경부가 영업비밀 승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대 주장을 하기가 어려운 게 당연한 거 아니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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