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 지키겠다” 새내기 의사들 다짐에 환자 엄마 답장… 이어진 쪽지 릴레이

박선민 기자 2023. 4. 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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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어린이병원 입구에 세운 다짐의 배너
환자 엄마가 감사 글 적어 붙이자 의사들 다시 화답
올해 전문의 자격을 딴 14명의 '새내기'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작성한 배너(왼쪽)와 그 위에 붙은 환자 엄마의 쪽지(오른쪽). /서울대 어린이병원

“늘 어린이들의 곁을 지키고 돌보겠습니다.”

의사들의 소아청소년과 기피 현상 속에서, 새내기 소아과 의사들이 병원 입구에 이런 글이 적힌 배너를 세웠다. 그러자 환자 엄마 한 사람이 거기에 감사의 쪽지를 붙여 화답했다. 여기에 다시 의사들이 답글을 붙였다. 최근 서울대 어린이병원에서 일어난 일이다.

10일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지난 2월 28일, 서울 중구 서울대 어린이병원 입구에 이 병원 새내기 의사 14명 명의로 ‘환자와 보호자, 직원들께 드리는 감사의 글’이라는 제목의 배너 하나가 세워졌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서울대 어린이병원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갓 전문의가 된 14명의 젊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입니다”로 시작한 글에는 소아청소년과 위기 속에서도 어린이를 돌보고, 후배 양성에 힘쓸 것임을 다짐하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들은 “어린이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보호자들과 한마음 한뜻으로 고민하고 노력하는 동안, 기쁨과 슬픔의 의미를 깊게 배웠다”며 “돌이켜보면 우리 어린이들이 저희의 가장 큰 선생님이었기에, 이 자리를 빌려 깊은 감사를 표한다”고 했다. 이어 “저희를 직접 가르쳐주신 교수님들과 전임의 선생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또 늘 가깝게 챙겨주신 간호사, AN(간호조무사), 이송원, 미화원 선생님들께도 평소에 하지 못했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저희가 잘 알지 못하는 곳에서도 노력해주시는 많은 분이 계셨다는 것을 늘 잊지 않겠다”고 했다.

새내기 의사들은 “근래 소아청소년과의 위기라는 말이 쏟아지고 있다”며 “그러나 저희는 늘 어린이들의 곁을 지키고 돌보며, 저희와 같은 길을 걷는 후배들에게 그동안 배운 것을 나누는 일에 힘쓸 것을 약속한다. 어린이들, 보호자들, 서울대병원의 모든 구성원, 그리고 저희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모든 곳의 아픈 어린이들이 하루빨리 완쾌되길, 늘 댁내에 평안이 가득하시길 기원한다”고도 했다.

서울대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쓴 배너에 붙은 보호자 답장 쪽지와 최은화 어린이병원장, 소아청소년과 교수진 등의 반응. /서울대 어린이병원

배너가 세워진 뒤, 여기에는 자신을 ‘서울대에서 치료받는 아기의 엄마’라고 소개한 한 보호자의 ‘답장 쪽지’가 붙었다. 보호자는 “위기 속에서도 기꺼이 ‘소아청소년과’를 선택해주시고 아이들을 성심껏 봐주시는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보통의 사명감으로는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다. 보호자로서 선생님들 노고를 이해하며 치료할 때 성심껏 돕도록 하겠다”고 했다.

보호자의 글에 교수진이 또 답장을 남겼다. 신충호 소아청소년과 과장은 67명 교수진을 대표해 “최선을 다해 우리 아이들을 건강하게 가정으로 돌려보내 드리겠다”며 “정성을 다해 우리 전공의와 전임의들을 정말 좋은 소아청소년과의사로 잘 육성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의 쾌유와 가정 내 평안이 가득하길 기원한다”고 했다.

병원장도 반응했다. 최은화 어린이병원장은 “모든 의료진을 대신해 진심을 남긴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항상 연구하고 노력해 ‘최고의 진료’를 제공하도록 많이 응원해달라”고 적은 메모를 보호자 쪽지 바로 왼편에 붙였다. 최 병원장은 “자칫 작위적이라는 오해를 받을까 싶어서 망설여졌다. 하지만, 우리 병원 아이들 상당수는 다른 병원에서 치료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오는 중증의 환자다. 절박한 심정으로 찾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손글씨로 격려와 감사를 보내고 싶었다”고 했다.

새내기 의사들의 배너는 10일 현재까지 세워져있다. 이 배너는 1층 출입구 안쪽에 세워져 있어, 지하로 들어오지 않는 한 대부분 방문객이 볼 수 있다고 한다. 서울대 어린이병원 직원들은 “기운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배너 글 작성에 참여한 신백섭 전임의(임상강사)는 “반응을 바라고 쓴 배너는 아니었지만, 보호자의 답장 쪽지를 받고 새내기 의사 모두가 ‘감사하고 뿌듯하다’고 했다”며 “적어도 아이들에게 만큼은 경제 논리보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 권리가 앞섰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이 한 명을 살리는 건 아이에게 80년을 선물해주는 것과 같다.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아이들의 권리를 위할 수 있는 가시적이고 현실적인 지원을 해 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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