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가 준 선물' 양의지 진가 깨달았다…24세 151km 파이어볼러, 에이스로 가는 길

2023. 4. 10.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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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무조건 (양)의지 선배가 던지라는 걸 던진다. WBC서 (양)의지 선배에게 고개를 젓고 내가 던지고 싶은 걸 던졌다가 안타 맞았다.”

두산 토종 에이스 곽빈(24)이 9일 광주 KIA전 직후 털어놓은 얘기다. 투수가 관성적으로 포수의 볼배합에 고개를 끄덕이는 건 위험하다. 게임플랜을 착실하게 세우고, 자신이 주도하는 볼배합을 통해 느끼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그러나 포수가 양의지라면, 그리고 곽빈이라면 얘기가 좀 달라진다. 양의지는 KBO리그 NO.1 포수다. 경기에 대한 리드&리액트 능력이 탁월하다. 투수와 타자의 상태, 핵심적 데이터, 경기 상황과 주변 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경기를 조립하는 역량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반면 곽빈은 여전히 경험이 부족한 투수다. 단, 150km 패스트볼이라는 엄청난 무기를 보유했다. 대형 선발투수로 성장할 잠재력은 엄청나다. 그래서 두 사람의 만남은 특별하다. 양의지가 곽빈에게 부족한 경험을 보충해주고, 곽빈은 양의지의 도움을 바탕으로 포텐셜을 터트릴 확률을 좀 더 높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날 곽빈의 투구내용을 보면, 4일 잠실 NC전과 확연히 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NC전서는 7이닝을 2피안타 10탈삼진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힘으로 윽박지른, 완벽히 긁힌 날이었다. 반면 KIA를 상대로는 5⅓이닝 4피안타 7탈삼진 4볼넷 2실점(비자책)했다.


패스트볼 최고 151km을 찍었지만, 철저히 변화구 위주의 투구를 했다. KIA 타자들이 곽빈의 커브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강속구 투수에게 느린 커브는 타이밍을 빼앗는 매우 좋은 재료다. 슬라이더 등으로 가면서, 잘 버틴 경기. 대신 힘이 다소 떨어졌다.

94구를 소화하고 닷새만에 나선 경기라서 그랬을까. 곽빈은 “그건 아니다. 솔직히 컨디션이 안 좋았다. 힘들었다. 아직 투구수를 올리는 단계라서 그렇다. 공을 못 때리겠더라. 오히려 5회를 지나면서 밸런스가 괜찮아졌다”라고 했다.

선발투수가 풀타임을 치르면서, 베스트 컨디션으로 투구하는 경기는 많지 않다. WBC를 다녀온 곽빈은 아직 체력이 다 올라오지 않았다. 중요한 건 포수 양의지가 곽빈의 그런 상태를 정확히 간파한 뒤 맞춤형 경기리드를 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곽빈은 두 경기 연속 단 1자책도 허락하지 않았다. 전적으로 양의지 덕이라고 보면 무리가 있지만, ‘양의지 버프’를 받은 건 사실이다. 본인도 인정했다.

곽빈은 “의지 선배는 어떤 타자가 못 치는 구종이 있으면, 칠 때까지 계속 던지게 한다”라고 했다. 한 마디로 약점을 보인 구종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의미. 이날 커브가 그랬다. 곽빈은 양의지의 리드대로 던지니, 어떤 결과와 효과가 있는지 체감하면서 전적으로 양의지를 신뢰하게 됐다. 지나친 의지는 금물이지만, 선발투수로 좀 더 확실히 자리잡을 때까지 많은 도움을 받는 건 성장의 촉매제가 된다.


곽빈은 그러면서 WBC서 양의지에게 고개를 저었다가 안타를 맞았다는 얘기를 꺼냈다. 3월11일 체코와의 1라운드 B조 예선 3차전을 의미한다. 그날 곽빈은 두 번째 투수로 등판, 1⅓이닝 2피안타 3탈삼진 2실점했다. 5회 2사에서 올라와 6회까지 잘 막았으나 7회 선두타자 에릭 소가드, 마렉 슐럽에게 연속안타를 맞고 정철원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소가드에겐 풀카운트서 체인지업을 던지다 우전안타를 맞았다. 보더라인에 걸쳤으나 소가드의 대처가 좋았다. 포심 3개가 잇따라 볼이 되면서 변화구 승부가 예상된 순간이었다. 슐럽에겐 역시 풀카운트서 8구 체인지업을 선택했으나 우전안타를 내줬다. 완전히 낮게 들어간 공이었으나 역시 슐럽이 잘 쳤다. 두 타자 중 한 명은 양의지의 계산대로 안 됐다는 의미다.

2023 WBC는 한국야구에 영원히 아픈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곽빈이라고 유쾌할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그러나 곽빈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피칭 디자인의 중요성, 포수와의 호흡 등 야구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체코전을 계기로 양의지의 볼배합을 믿기로 한 것만으로도 곽빈 야구의 소득이었다.

단 2경기지만, 강렬한 출발이다. 12⅓이닝 동안 6피안타 5사사구 17탈삼진. 1승 평균자책점 제로. WBC에 다녀온 투수들 중에선 단연 가장 좋다. 올해 알껍질을 벗고 두산의 진정한 에이스로 거듭날 가능성이 있다.

[곽빈.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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