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수 늘었지만 학부중심 한계···'권역규제' 풀어 맞춤인재 육성
학과수도 2개서 600여개로 급증
기업 석박사급 우수인력 필요한데
학부위주 운영에 인재양성 어려움
주요대 합격자 등록포기율 155%
전임교수도 부족···재정 지원 절실
교육부가 재교육형 계약학과 규제까지 완화하기로 한 배경에는 계약학과가 마주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다. 산업체 수요에 따른 맞춤형 인재를 양성한다는 취지로 계약학과 제도가 만들어진 지 20년 만에 학과 수는 2개에서 600여 개로, 학생 수(입학생 기준)는 40여 명에서 7000여 명으로 급증했다. 그러나 재교육형 계약학과 규제 여파 등으로 인한 학부 위주 운영과 의대 선호 현상에 발목 잡혀 고급 인재 양성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10일 서울경제신문이 한국교육개발원에 의뢰해 받은 2007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 대학(전문대 포함)·대학원·대학원대학교에 설치된 계약학과 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계약학과는 총 644곳, 학생 수는 7349명으로 집계됐다. 계약학과가 처음 도입된 2004년과 비교하면 20년 만에 학과 수는 322배, 학생 수는 180여 배나 늘어난 셈이다.
국내 대학 중 계약학과를 가장 먼저 도입한 학교는 영남대다. 2003년 5월 신설된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산학협력법)’ 8조에 근거해 2개(영어영문·일어일문) 학과를 신설했다. 학생 수는 40여 명이었다. 삼성전자 직원들의 재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신설된 재교육형 계약학과였다.
계약학과가 첨단산업 분야 인재 양성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다. 성균관대는 삼성전자와 협약을 맺고 2006년 국내 대학으로는 처음으로 채용 조건형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설립했다. 이후 뜸하던 첨단산업 관련 계약학과는 2021년부터 올해까지 급격히 늘었다. 반도체 인력난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실제 종로학원에 따르면 국내 첨단 분야 계약학과 11곳 중 9곳이 2021년부터 2023년 사이에 개설됐다.
그러나 계약학과 학생들의 졸업을 기다리는 기업들의 속내는 그리 편치만은 않다. 미래의 최고경영자(CEO) 자질을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 등록금부터 일부 생활비까지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지만 막상 써보니 기대만큼 경쟁력이 높지 않다고 느낄 때가 적지 않다는 게 산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는 입사하면 상당 기간 교육과 적응이 필요하지만 계약학과 학생들은 ‘즉시 전력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됐다”면서도 “다만 기업이 차별화된 기술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 확보가 절실한데 계약학과가 그런 역할을 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계약학과가 학부 중심으로 운영돼 ‘고급 인재’ 양성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국내에서 학사·석사나 석·박사과정으로 반도체 채용 조건형 계약학과를 운영 중인 대학은 고려대·연세대·한국과학기술원(KASIT) 정도에 불과하다.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A 교수도 “최근 국내 대기업 관계자로부터 계약학과 졸업생 퀄리티가 일반 학과를 졸업한 이들보다 우수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석·박사과정 채용 조건형 또는 재교육형 계약학과를 늘리는 것이 유리하지만 청년 일자리 창출 책임론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재교육형 규제도 있어 둘 다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삼성전자가 최근 울산과학기술원(UNIST)·대구과학기술원(DGIST)·광주과학기술원(GIST) 등 3개 과기원과 채용 조건형 반도체 계약학과를 신설하면서 학사·석사 통합형으로 운영하기로 한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의대 쏠림’ 현상도 계약학과의 발목을 잡고 있다. 최근 종로학원이 발표한 올해 서울 주요대 반도체학과 최초 합격자의 등록 포기율은 155.3%로 집계됐다. 취업이 보장되는 계약학과와 의대에 동시에 지원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합격 가능 점수 기준으로 반도체 계약학과가 의학 계열 바로 밑이어서 의대에 합격하는 학생들이 등록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A 교수는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에 1순위로 합격한 학생들이 모두 의대에 간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교육부가 재교육 계약학과 신설 규제를 완화하기로 한 이유다. 규제가 풀리면 삼성전자 화성 공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52㎞ 떨어진 연세대에서 반도체 수업을 들을 수 있게 된다. 채용 조건형을 통해 석사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남학생의 경우 최소 8년(군대 포함)이 걸리지만 재교육형의 경우 빠르면 2년 만에 석사 인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다만 기업들이 수도권 쏠림 우려를 감안해 재교육형 계약학과를 수도권 대학이 아닌 첨단산업 분야에 강점이 있는 지방대학에 신설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규제 완화에도 고급 인재 양성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원 수급난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교수를 한 번 뽑으면 해고가 쉽지 않아 일부 반도체 계약학과에서는 신규 채용 대신 기존 인력을 활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계약학과는 고비용 인력 양성 시스템”이라며 “정부가 지난해부터 학과 정원 규제를 풀어 첨단학과 증원을 쉽게 했지만 가르칠 교수가 없다. 대학들이 자유롭게 교수를 데려올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신중섭 기자 jseop@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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