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넓은 의견 수렴’ 립서비스일 뿐?…탄소중립계획 원안대로 의결
산업계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을 완화해 논란이 일었던 ‘2050 제1차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이 10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에서 원안에서 큰 수정없이 최종 의결됐다. 기후·환경 단체 등 시민사회가 반발하는 가운데 기본계획은 11일 국무회의에서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탄녹위는 10일 “지난 3월 발표한 정부안을 보완한 기본계획이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탄녹위 제3차 전체회의에서 심의·의결됐다”고 밝혔다. 탄녹위는 △기후테크 육성 종합 전략 마련 △목조 건축 활성화를 위한 법·제도 마련 △이퓨얼 등 저탄소 연료 개발 등을 기본계획에 포함하고, 온실가스 감축 이행 점검 과정에 청년과 미래세대 등 이해관계자를 참여하도록 추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8년 대비 2030년 산업 부문 온실가스 감축률을 14.5%에서 11.4%로 하향 조정한 원안은 그대로 유지됐다. 또한 2027년 이후 연간 감축 목표를 급격히 늘려 ‘차기 정부 떠넘기기’로 비판받았던 연도별 감축 목표도 원안 그대로 통과됐다. 탄녹위는 “이번 탄소중립 기본계획의 이행 경로를 따르면 2030년까지 국내총생산(GDP)은 연평균 0.01%, 고용은 연평균 0.22%가 증가할 것으로 한국환경연구원이 예상했다”고 소개했다.
기후·환경·노동 단체는 일제히 반발했다. 기후위기비상행동과 기후정의동맹,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등은 이날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폐기하고 재수립하라고 촉구했다.
김보림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는 “지금 계획은 온실가스 감축 책임을 가까운 미래로 최대한 미뤘다는 걸 의미한다”며 “위기를 읽지 못하는 무책임한 정부가 어떻게 이익을 사유화하는지, 개인에게 책임을 떠넘기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류기섭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지난해 출범한 2기 탄녹위는 노동계를 아예 배제한 채 시작됐다”며 “경제 단체 및 기업 대표와 전문가 위주로 구성된 위원들이 논의한 기본계획안이 산업계 편향적인 것은 전혀 놀랍지 않다”고 지적했다.
정의당 녹색정의위와 환경운동연합, 녹색교통 등도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혜영 의원(정의당)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 감축분의 75%가량을 윤석열 정부 이후로 돌린 점, 매년 같은 양을 줄이는 시나리오에 비해 5억톤의 온실가스를 더 배출하게 한 점 등을 문제점으로 지적하며 “상식적인 정부라면 초안에 대한 폭넓은 의견수렴을 통해 대폭 수정된 안을 다시 내놓았어야 한다”고 말했다.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한 국가 최상위 계획인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은 각 부문별, 연도별 온실가스 감축계획과 감축수단을 담고 있다. 사회 각 부문의 고통 분담 비중과 방식을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련 법에서도 아동·청년·여성·노동자·농어민·중소상공인·시민사회단체 등 대표성 있는 인사들로 탄녹위원을 선임해 기본계획을 마련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탄녹위원 선임 과정에서 이런 절차가 생략된 데다 최종적으로 나온 계획안에 대해서도 이들이 반대하고 있어, 탄소중립 기본계획이 실행력 있게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한편, 이날 탄녹위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정부출연연구원 8곳과 기업 5곳이 함께 마련한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산업·기술 혁신 추진안’도 발표했다. 추진안을 보면, 2030년까지 포집 비용을 현재보다 30% 절감할 수 있는 혁신 기술을 개발하고, 국내에 10억톤 규모의 이산화탄소 저장소를 확보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탄소 포집·활용·저장 기술은 탄소를 대기에 배출하기 전 분리·포집한 뒤 기술을 활용해 탄산칼슘, 메탄올 등으로 전환해 산업 용도로 쓰거나 활용이 어려운 이산화탄소는 파이프라인이나 선박 등으로 옮겨 깊은 지하나 해저에 안전하게 저장하는 기술을 말한다. 현재 포집·활용·저장 기술은 시장에 나와 있지만, 탄소 포집량에 견줘 에너지와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포집한 탄소가 대기 중에 새지 않도록 격리해야 하는데, 국내에는 동해 가스전의 천연가스를 추출하고 남은 빈 공간에 연간 40만톤을 저장하는 계획이 유일하다.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기민도 기자 ke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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