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 “도청 의혹, 사실관계 우선… 동맹 흔들 땐 국민들 저항”

이현미 2023. 4. 10.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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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정보당국, 동맹국 도청 의혹 파문
대통령실 ‘과장·왜곡’에 경고
“필요 땐 美에 합당조치 할 것”
野 대응 촉구에 ‘수위’ 고민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약 2주 앞두고 미 정보당국의 도청 의혹이 불거지면서 대통령실의 대응을 둘러싼 논란이 증폭되고 있다.

대통령실은 “양국의 상황 파악이 끝나면 필요할 경우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만, 한·미 관계 중요성과 자주 국가로서의 위신 등을 고려하며 대응 수위를 고민하는 분위기다.
‘尹 방미’에 영향 촉각 대통령실은 10일 미국 정보당국의 한국 정부에 대한 도청 의혹 보도가 이달 하순으로 예정된 윤석열 대통령의 국빈 방미에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진은 이날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청사 전경. 최상수 기자
야권에선 “(미 언론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70년 동맹국 사이에 결코 용납될 수 없는 행위로서 양국 신뢰를 정면으로 깨뜨리는 주권 침해이자 외교 반칙”이라며 윤석열정부의 단호한 대응을 촉구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10일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에서 미 정보당국의 도청 의혹 사태와 관련해 “지금 미국 언론에서 보도된 내용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며 “미 국방부와 법무부가 조사를 요청한 만큼 사실관계 파악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이어 “한·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번 사건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 동맹관계를 흔들려는 세력이 있다면 국민들의 많은 저항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유출됐다고 주장하는 (기밀 문서) 자료 대부분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된 내용으로, 특정세력의 의도가 개입돼 수정되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미 언론의) 이번 보도가 나온 상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미국 측에 합당한 조치를 요구하더라도) 이런 과정은 한·미 동맹 간 형성된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가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도 이날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우선 사실확인이 필요하다.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도청이 있었는지 자체에 대한 조사가 선행돼야 한다”며 “제3국이 개입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서 내용을 잘 살펴본 다음에 대응하는 것이 국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태영호 최고위원도 페이스북에서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가 가짜뉴스를 퍼트릴 가능성은 없는지도 고려해야 한다”며 “한·미 사이가 벌어지면 가장 득을 보는 나라는 북한, 중국, 러시아 등으로 진상이 규명되기 전에 먼저 (미 정보당국의 도청 의혹을) 기정사실화해서 정쟁화하는 것은 국익을 저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브리나 싱 미 국방부 부대변인. AP연합뉴스
미국 정부는 온라인에 유포된 기밀 문건에 동맹국에 대한 도청을 포함한 민감한 내용이 다수 포함된 만큼 신중한 대응 속 원론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미 국방부는 9일(현지시간) 한국에 대한 도청 내용과 관련한 입장을 묻는 본지 서면 질의에 사브리나 싱 부대변인 명의의 답변에서 “국방부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검토(actively reviewing)하고 있고, 법무부에 공식적으로 수사를 의뢰했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미 정보당국으로부터 대화를 도청 당한 것으로 보도된 김성한 전 국가안보실장과 이문희 전 외교비서관 등 당사자들에 대한 진상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대통령실은 이에 대한 필요성을 일축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 정부가 조치를 하겠지만, 외교 사안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는 관례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의 대화가 유출 문건에 구체적으로 언급돼 있는 만큼, 당사자 확인을 거쳐 대화 시점과 장소, 상황을 특정한 뒤 보안 강화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내부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뉴스1
대통령실은 용산 대통령실의 철통 보안을 강조하며 논란 차단에 나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청사 보안은 (대통령실을) 이전할 때부터 완벽하게 준비했고, 정기적 점검 과정을 거쳐 아무 문제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며 “청와대 (시절)보다 용산의 보안이 더 탄탄하다”고 말했다.

한·미 당국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의 방미 과정에서 이번 사태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은 이날 “김 차장이 11∼15일 3박 5일간 미국 워싱턴을 방문한다”며 “방미 기간 중 미국 행정부 인사들을 면담하면서 대통령의 성공적인 국빈 방미를 위한 사전 준비 협의와 함께, 북한 문제, 경제안보, 지역·글로벌 이슈 관련 협력을 포함한 다양한 현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미 의회는 비슷한 시기에 기밀 문건 유출 사건과 관련해 국방부 등에 보고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원 정보위 소속 공화당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은 앞서 뉴욕타임스에 “이 서류들이 유출됐다는 사실은 엄청난 방첩 문제”라면서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들이 의회에서 브리핑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당국자들은 이번 정보 유출 사건이 수십 년 만에 가장 피해가 큰 사건 중 하나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면서 “문건 유출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봄 공세를 복잡하게 만들고, 동맹국들이 미국 정부와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는 것을 방해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가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가 안보와 위신, 국민의 자존심이 걸린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윤 대통령과 정부는 즉각 미국 정부에 해당 보도의 진위와 기밀문건에 대한 명백한 정보를 요구한 뒤 국민께 한 점 숨김없이 명명백백히 (진상을)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박 원내대표는 “최근 대통령실 외교·안보 라인의 납득하기 힘든 줄사퇴도 미국의 도청과 관련이 있는지, 도청 정황을 보도 전에는 전혀 파악하지 못했는지 국민 앞에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국회 운영위원회와 외교통일위원회, 정보위원회, 국방위원회의 즉각적인 소집을 요구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 정부를 향해서도 “혈맹국으로서 도리를 지켜, 도청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 국민과 정부에 정중한 사과와 재발 방지를 확실히 약속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현미·유지혜 기자, 워싱턴=박영준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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