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돌아오셨습니다, 황기환 지사님" 순국 100년 만에 고국 품에(종합)
"독립된 조국에서 편히 쉬십시오"… 대전현충원 영면
(인천공항·대전·서울=뉴스1) 허고운 기자 국방부 공동취재단 = 10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착륙장에 대한항공 KE086편이 도착했다. 이 비행기엔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주인공 '유진 초이'(이병헌 분)의 실존 인물로 알려진 황기환 애국지사의 유해가 실려 있었다.
오전 9시1분 황 지사 유해가 리프트를 통해 하기(下機)되며 마침내 대한민국 땅에 내렸다. "독립된 조국에서 다시 봅시다"는 드라마 속 명대사가 황 지사 순국 100년 만에 실현된 것이다. 박민식 국가보훈처장과 독립유공자 후손, 국방부 의장대 등이 레드카펫 앞에 서서 황 지사의 유해를 맞이했다.
1886년 평안남도 순천 출신의 황 지사는 1904년 미국으로 건너간 뒤 제1차 세계대전 땐 미군에 자원입대해 유럽 전선에서 참전하기도 하는 등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황 지사는 1차 대전 종전 뒤 1919년부턴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관으로서 프랑스와 영국, 미국 등을 오가며 국제사회에 조국 독립의 당위성을 알리는 활동을 했다.
그러나 그는 조국 광복을 보지 못한 채 1923년 4월17일 미 뉴욕에서 심장병으로 숨을 거뒀다. 그리고 그는 지난 100년간 뉴욕 마운트 올리벳 공동묘지에 묻혀 있었다.
황 지사 묘소는 2008년 당시 뉴욕한인교회의 장철우 목사가 발견하면서 세간에 알려졌다. 이후 보훈처와 주뉴욕총영사관 등의 노력 끝에 순국 100년이 된 올해 유해 봉환이 이뤄지게 됐다.
황 지사 유해의 국내 봉환에 앞서 전날 뉴욕 현지에선 황 지사에 대한 추모식 등 행사가 엄수됐다.
하기된 황 지사 유해가 분향 제단까지 옮겨지는 순간엔 '미스터 션샤인' 삽입곡 중 조국 광복에 대한 그리움과 소망의 의미를 담은 '좋은 날' 트럼펫 연주곡이 울렸다. 분향 제단 앞에선 태극기와 대한민국 임시의정원(대한민국임시정부의 입법부)의 깃발이 나부꼈다. 임정에서 활약했던 황 지사의 공적을 기리기 위한 것이었다.
제단에선 박 처장과 이종찬 우당교육문화재단 이사장(이회영 선생 손자)이 각각 정부와 독립유공자 후손을 대표해 분향했고, 현장에 았던 다른 인사들은 함께 묵념하며 황 지사의 뜻을 기렸다. 박 처장은 분향 뒤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분향 뒤엔 정부가 1995년 황 지사에게 추서한 건국훈장 애국장이 헌정됐다. 건국훈장은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공로가 뚜렷하거나 국가의 기초를 공고히 하는 데 이바지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황 지사 유해는 이날 공항 영접 행사 뒤 운구 차량에 실려 경찰차 선도 아래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했다.
대전현충원에서 엄수된 황 지사 유해 봉환식은 황 지사의 공적 소개 영상 상영을 시작으로 국방부 의장대의 유해 운구 및 제단 안치, 그리고 박 처장과 각계 대표, 정부 초청 인사 및 학생 대표들의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박 처장은 이 자리에서 "황 지사는 우리 독립운동의 별과 같은 존재였지만 이역만리 타국 공동묘지에 쓸쓸히 묻혀 계셨다"며 "만시지탄이지만 100년 만에 황 지사를 고국 품으로 모실 수 있게 돼 감개무량하고 뜻깊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처장은 특히 "(황 지사 유해 봉환을 위해) 미 국내법상 '유족이 없다'는 점을 우리가 입증해야 했다. 그게 상당히 어려웠다"며 "그래서 (봉환 협의에만) 10년의 시간이 흘렀다"고 말했다.
박 처장은 "취임 이후 가장 중요한 과제로 황 지사 순국 100년은 넘기지 말자고 (했다). 100년이 넘어가면 대한민국 국격에 맞지 않다는 각오로 반드시 봉환하겠단 각오를 다졌다"며 "그 결과, 올해 초 미국 측과 아주 큰 틀의 합의를 이뤘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보훈처는 이번 유해 봉환에 앞서 그동안 후손이 없어 무적(無籍)으로 남아 있던 황 지사의 가족관계등록도 창설했다.
박 처장은 이날 봉환식에서 주소지가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으로 돼 있는 가족관계등록부를 직접 헌정하기도 했다.
박 처장은 "100년의 긴 여정 끝에 고국으로 돌아오신 황 지사님, 잘 돌아오셨습니다. 지금부터 대한민국이 정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며 "자나 깨나 그리던 독립된 조국, 자유로운 대한민국의 품에서 부디 편히 쉬십시오"라고 말했다.
황 지사 묘소를 처음 발견한 장철우 전 뉴욕한인교회 담임목사는 "2005년 교회에 부임했을 때 주소록을 보니 70~80년 전 (미국에) 온 교인들이 많이 돌아가신 상태였다. 이분들 무덤을 찾다가 '대한인 황기환'이라고 쓰인 묘지를 찾았다"며 "오늘 이분을 모시고 조국 땅을 밟아 가슴이 벅차다. 훌륭한 애국선열들의 얼이 잠든 곳이 모시게 돼 고인이 얼마나 기뻐하실지 감격스럽다"는 소회를 전했다.
이날 황 지사 유해 봉환식엔 영접 행사 참석자들 외에도 대덕대 군사학과 및 중일고등학교 학생 등 200여명이 나와 '영웅'의 귀환을 환영했다.
hg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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