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 판소리 찰떡 호흡' 인간문화재 부부
심청役 맡았던 김 명창
남편 아쟁 반주에 반해 인연
남편 '적벽가' 아내 '심청가'로
노년에 예능 보유자 지정
전주서 20년 넘게 제자 양성
아들·며느리도 부부 국악인
국립창극단의 1976년 심청전 지방 순회 공연. 심청 역을 맡은 김영자 명창(72·사진 오른쪽)은 아쟁 반주를 하는 '만능 국악인' 김일구 명인(83)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극의 흐름을 '찰떡'같이 따르는 김 명인의 즉흥 반주가 절로 감정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김 명창은 "아쟁 반주를 그렇게 잘하는 사람은 처음 봐 자연스레 호기심을 갖게 됐다"고 회고했다.
김 명인 역시 김 명창에게 끌렸다. 반주를 해주며 장차 소리꾼으로 대성할 김 명창의 재능을 발견해서다. 김 명인은 "예술가들은 예술적 재능이 있는 사람에게 끌리기 마련"이라며 "당시엔 (김 명창이) 아직 나이가 어려 소리가 완성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전통 판소리를 이어갈 재질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3년 뒤인 1979년 결혼한 두 사람은 44년째 함께 국악인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2020년 9월에는 김 명창이 무형문화재 판소리 심청가 예능 보유자, 같은 해 12월에는 김 명인이 적벽가 예능 보유자로 지정됐다. 부부가 모두 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인 사례는 현재 두 사람이 유일하다. 이들 부부는 2001년부터 전주 한옥마을에 위치한 판소리 교육기관 '온고을소리청'에서 20년 넘게 제자들을 양성하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 분야에서 서로 배우고 의지해왔다고 밝혔다. 김 명창은 "처음엔 선생님(김 명인)이 (소리에 대해) 지적하면 기분이 나빠 듣지 않았는데 나중에 생각하면 다 맞는 말이었다"며 "나는 판소리와 창극만 하지만 선생님은 가야금, 아쟁 등 기악에도 대가라 배울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김 명인은 "부부는 눈빛만 봐도 통하기 때문에 '뺑파전'(김 명인이 창안안 마당놀이) 등 함께 선 무대에서 대본에 없는 애드리브를 할 수 있고 작품 연구도 함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부부가 모두 국악계에 있어 안 좋은 점도 있었다. 한 사람이 좋은 기회를 얻으면 부부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은 배제를 당했고, 함께 다니면 구설에 올라 국악인들 앞에서는 내외해야 했다. 김 명창은 "같이 다니면 '쟤네 여행 다닌다' '손잡고 다닌다'라는 말이 나오니 우리는 국립극장에서 밥 한번 같이 앉아 먹어본 적이 없다"며 "뺑파전을 만들기 전에 함께 국립창극단을 나온 것도 이런 시달림 때문이었다"고 토로했다.
부모의 뒤를 이어 판소리를 하는 아들 김도현 씨가 소리꾼 며느리 서진희 씨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두 사람이 반대했던 것도 부부 국악인으로서 받은 상처가 컸기 때문이다. 결혼을 극구 만류하던 두 사람이 마음을 연 것은 서씨의 공연을 보고 나서다. 김 명창은 "국립(극장)에서 심청 역을 하는 애를 보고 '저 애가 앞으로 참 대성하겠다'고 우리끼리 평가했는데 공연이 끝나고 아들이 심청 역을 한 애가 '그 애'라고 알려줬다"며 "우리가 서로의 재질을 보고 끌렸던 것처럼 아들도 며느리를 만난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의 벽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두 사람의 목표는 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 최선을 다해 제자들에게 판소리를 전수하는 것이다. 김 명인은 "국가가 중대한 책임을 맡겼으니 건강 관리를 잘하며 많은 제자를 남기고 싶다"며 "조금 더 젊었을 때 보유자로 지정돼 더 많은 기력을 제자 양성에 쏟지 못하는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전주 김형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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