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코노미스트] 위태로운 한국의 제조업 기반
7천5백불의 세액 공제 혜택
미국서 실감한 인플레감축법
EU도 산업 경쟁력 제고 사활
한국은 재정마련 계획서 답보
지난 2주간 미국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려고 한다. 도착하자마자 자동차를 수리해야 했다. 비교적 큰 도시인데 차 점검 예약이 3주 뒤로 잡혔다. 3주를 기다리기 어려워 다음 목적지 근처로 차를 견인했다. 그로부터 10일이 지나 4000달러가 넘는 견적서를 받아 들었다. 다양한 소모품 교체였지만 수리된 차를 받기까지 다시 일주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 차를 견인해 올 때부터 일정이 꽉 차 있으니 가능하면 다른 곳을 알아보라던 서비스센터와의 흥정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오래된 차를 저 비용을 들여 고쳐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 미국은 새 차를 받기까지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며 중고차 가격도 천정부지로 오른 상태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업무 후엔 차 이야기가 자주 등장했다. 마침 새 차를 구입하려는 분이 테슬라를 고려 중이라고 한다. 새 차가 대체하는 것은 이 가정의 세컨드 카(second car)다. 현재 보유 중인 하이브리드 차종에 만족하면서도 동료가 비 오는 날 자꾸 서버린다고 불평했다는 전기차를 구입하려는 이유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의해 제공하는 세액공제 때문이다. 전기차 구매 가격을 보조하는 것이 인플레이션을 어떻게 낮춘다는 것인지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지만 판매가가 대략 4만2000달러인 테슬라 기본 모델에 7500달러의 세액공제는 중산층을 훌쩍 넘어서는 게 분명한 이 가구에도 매우 매력적이라는 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세액공제 대상이 아닌 한국산 전기자동차는 아예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자연스럽게 국내 완성차 업체, 관련 부품 업체, 그 부품 업체가 형성하고 있는 우리 제조업 공급망이 받게 될 타격 등의 단어가 두서없이 떠올랐다.
고작 2주간의 제한된 경험을 일반화해서는 안된다. 외국인이 겪은 특수한 경험일 수도 있고 한국 전기차를 특별히 선호하지 않는 사람을 만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 경제가 제공하는 비교적 탄탄한 제조업 공급망에 기반한 생활의 편리함과 업무 효율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제조업 기반이 약한 경제 성장이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인식했다. 기후변화의 위협과 팬데믹을 겪으며 제조업 기반, 특히 전기차를 포함한 미래 산업의 제조업 경쟁력과 역내 공급망 구축이 중요하다는 인식은 더욱 확산된 듯하다. 먼저 움직인 것은 유럽연합(EU)이었다. EU 정부는 '시장주의'를 잠시 보류하고 산업 경쟁력 제고에 직접 나섰다. 잘 알려진 탄소국경조정조치 이외에 EU 정부는 다양한 지원 정책을 통해 역내 소재 산업의 탈탄소화와 이를 기반으로 한 제조업 부문의 경쟁력 제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번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은 청정에너지와 전기차 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역내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의지는 EU보다 약해 보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정부도 제조업 기반과 탄탄한 공급망의 중요성을 인지한 듯하다. 제조업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한 민관협력이나 산업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도 형성되고 있다. 다만 이러한 정책을 실행할 대규모 추가 재원을 어느 규모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집행 계획은 무엇인가는 아직 불분명해 보인다. EU는 제조업 경쟁력 제고가 미래의 재정건전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라며 재정투자를 늘리는 한편 탄소배출권 판매 수익을 활용해 산업정책에 사용될 추가 재원의 일부를 마련했다. 조 바이든 정부는 법인세 인상을 통해 세액공제를 위한 추가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는 제조업 기반을 지키기 위해 어떤 재원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오형나 경희대 국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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