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뒤 ‘불법’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으로…난관에 부딪힌 비대면 진료 합법화, 왜
다음 달 코로나19 위기경보단계가 하향 조정되도 비대면 진료는 계속된다. 비대면 진료를 시행할 법적 근거가 사라져도 정부와 여당은 시범사업 형태로 이를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당장 시범사업으로 비대면 진료 추진의 동력은 유지하기로 했지만 합법화가 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국정과제로 추진하면서 관련 법 개정에 난항을 겪고 있다. 진료 범위, 약 배송 문제 등을 둘러싸고 의약계와 산업계의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는다. 건강보험 수가(진료비) 조정도 큰 문제다.
10일 보건당국에 따르면 다음 달 초 코로나19 위기경보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조정되면 비대면 진료를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사라진다. 앞서 지난달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소안심사에서 비대면 진료의 합법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이 심사대에 올랐는데 여야 다수 의원이 약 배송, 진찰료, 의료민영화 등 제도화에 우려를 표명해 보류됐다.
정부의 ‘속도전’이 될까, 우려와 기대가 교차하던 시점에 국회는 ‘일단정지’를 선언했다. 이어 지난 5일 당정 협의에서 (코로나19 위기경보가 조정되더라도) 보건의료기본법에 근거해 시범사업 형태로 비대면 진료를 계속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가 국회 상임위에 보고한 방안을 보면 비대면 대상 의료기관은 의원급을 원칙으로 하되, 수술 후 사후관리가 필요한 환자는 병원급도 허용할 수 있다. 대상 환자는 섬·벽지, 국외거주자, 장애인, 교정시설 수용자, 감염병자, 재진 등이다. 비대면 진료 전담의료 기관은 금지한다.
앞서 지난 2월 복지부와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러한 정부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플랫폼업체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비대면 진료 대상이 사실상 ‘재진 환자’로 제한됐기 때문이다. 플랫폼 업체 18개사를 회원사로 둔 원격의료산업협의회는 지난달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비대면 진료 환자 99%가 경증 초진 환자”라며 재진만 허용되면, 플랫폼 업체 80%가 도산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정부 조사에서 코로나19 시국에 비대면 진료의 81.5%는 재진이었다.
복지부와 의협이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으로 제한한 이유는 오진 가능성, 의료사고 책임 소재 불분명 등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반면 플랫폼 업계는 초진 자체를 막을 게 아니라 위험한 진료를 규제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달 초 국회 스타트업 연구모임 ‘유니콘팜’에서 활동 중인 김성원 국민의힘 의원이 초진부터 가능한 비대면 진료 제도화 법안을 발의하면서 양측의 갈등은 격화했다. 의협 등이 속한 올바른플랫폼정책연대는 “플랫폼 업체 입장만 대변한 정의롭지 못한 법”이라고 비판했다.
비대면 진료 허용 시 약 배송 문제, 허용 기관이 병원급까지 확장되는 문제, 비대면 진료만 치중하는 의원의 문제 등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복지부는 법 개정안 통과 후 시행되기 전에 시범사업을 통해 제도를 만들어간다는 계획인데 법 개정안 통과 전에 개별 사안에 대해 정부가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비대면 진료 수가 결정도 어려운 문제다.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비대면 진료 수가는 기존 외래의 130%로 책정됐다. 의료계는 감염병 유행이 끝난 뒤에도 높은 수가가 유지되기를 희망하고 복지위 의원들은 이를 더 낮춰야 한다고 본다. 플랫폼 업체 이용 시 수수료를 의료기관, 환자, 건강보험 중 누가 부담할 것인지도 향후 논쟁거리다.
복지부가 그간 제시한 비대면 진료의 성과는 코로나19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전화상담 처방 진료를 받은 환자 또는 가족 500명 대상으로 벌인 만족도 조사(2020년) 결과, 응답자의 77.8%가 ‘비대면 진료 이용에 만족한다’라고 답변했는데 ‘감염병으로부터의 안전(53.5%)’이 가장 큰 이유였다. 시범사업에서는 감염병 비유행 상황에서의 환자들의 실질적 수요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정부가 어떤 시범사업을 할 것인지 궁금하다. 지역적으로 도서벽지에 살거나, 거동이 어려운 환자나 장애인들은 비대면 진료가 절실하다. 정부·국회가 업계나 의료계의 눈치를 보고 있을 게 아니라, 환자 입장에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한 수준(재진, 필수 환자군 등)에 한해서 비대면 진료 합법화를 추진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김향미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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