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K] T1, 그리고 'LPL식 밴픽?'
(MHN스포츠 이솔 기자) '고점의 T1'
늘 일정한 경기력을 선보이던 T1에게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지난 9일 결승에서는 아쉽게도 '고점의 T1'을 볼 수는 없었다.
모든 대중들, 심지어 젠지 이스포츠의 고동빈 감독까지 'LPL식 밴픽'이 승리 요인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LPL을 주로 시청하는 한 명의 팬으로써, 이는 '반'만 맞는 이야기다.
- 핵심은 그라가스
거두절미하고 이야기할 오늘의 핵심은 '그라가스'다.
올 시즌 '그라가스'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페이커다. 페이커는 플레이오프 맨 첫 경기였던 KT전부터 미드 그라가스를 활용, '굳이 밴 할 것인가? 그렇다고 풀 것인가?'라는 지옥의 난제를 던지며 KT의 밴픽 패턴을 꼬아버렸다.
특히 올 시즌 LCK에서 최고의 명경기로 꼽힌 T1-KT의 5세트에서는 페이커의 그라가스의 분전에 힘입어 살아난 '빛을 가른 어둠' 케리아와 그의 단짝 구마유시(라칸-자야)가 적들을 난도질하며 팀에 승자조행을 선사했다.
해당 경기에서 페이커는 2연속 데스를 기록했으나 13분 바텀 2차타워 다이브로 탈리야(비디디)에게 첫 데스를 안겼으며, 21분 바론 싸움, 24분 아군 전령 교전에서 단신으로 적진 한가운데로 뛰어드는 등 1분 1초를 '페이커의 시간'으로 만들며 T1의 역전을 이끌었다. 다소 부진하던 제우스, 그리고 오너 또한 페이커 덕에 살아날 수 있었다.
여타 경기에서는 그 그라가스로 심리전을 펼치던 T1, 그러나 결승전에서는 그라가스 심리전을 선택하지 않았다. 다소 의외였다. 정황 상 이는 지난 승자조 경기에서 젠지가 1-2-3세트 모두 그라가스를 밴 한 데 따른 이유로 추측할 수 있었다.
- 고점의 T1
누구나 알겠지만, 페이커는 단순히 'CS 먹고, 뒤에서 적을 요격하는' 빅토르-신드라 등의 일반적인 챔피언보다는 '5연갈', '페블랑' 등 적극적으로 상대를 기습, 상대의 스킬을 소모시키고 슈퍼플레이를 만들어내는 챔피언으로 긍정적인 성적을 거뒀다.
시즌 3의 '니달리'때도 그랬고, 전 세계에 페블랑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킨 시즌 5의 르블랑/아지르 때도 마찬가지였다. SKT K(2팀), SKT T1, 그리고 T1과 함께 숨쉬어 온 팬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이야기다.
그러나 1-2세트에서 밴픽 구도가 망가졌다. '페라가스'를 선보였어야 할 T1은 도란에게 그라가스를 내줘야만 했으며, 도란 또한 페이커 못지않은 슈퍼플레이로 결국 팀에게 승리를 선사했다. KT전에서 페이커가 선보였던 그라가스가 겹쳐 보이는 경기였다.
특히 2세트에서는 초반 화력이 강력한 케이틀린-럭스 조합을 뒷받침해 줄, 경기 초반 충분한 CC기를 가진 그 누군가가 없었던 것이 패인이라고 볼 수 있었다. 젠지의 5번째 리산드라 밴이 뼈아팠던 이유다.
그래서 본지는 4세트에서 리신-르블랑의 등장 가능성을 점쳤다. 오너와 페이커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그리고 '치고 빠지기'라는 교전 컬러에 어울리는 챔피언들이었다.
그러나 르블랑에 비해 '6레벨'이라는 전제조건이 달린 아리는 다소 느렸고, 상대의 뒷라인을 기습하기에는 '빠지기'가 아쉬웠다. 앞으로 전진할 수 밖에 없는, 초반이 (리신에 비해) 연약한 정글러 마오카이를 상대로 징크스를 말리기에는 한 끗이 모자랐다.
결과적으로는 T1이 '고점의 T1'을 보여 주지 못한 것 뿐이다.
- LPL식 밴픽, T1이 더 가까웠다
특히 LPL을 많이 본 입장으로써, 고동빈 감독이 전한 'LPL식 밴픽'에 대한 소감은 남다를 수 밖에 없었다.
오히려 T1의 밴이 LPL 식 '밴'(첫 2밴 제리-바이 자르기)에 가까웠고, T1의 픽(2세트 케넨-3세트 사이온 탑)이 LPL식 '픽'에 가까웠다.
LPL에서는 많은 경우 선픽 케넨을 내 주는 것이 '필패'에 가까운 결과를 초래했던 만큼, T1이 2세트에서 선보였던 케넨 선픽(2세트) 또한 지극히 합당한 결과였다.
다만 LPL에서는 케넨을 선픽하는 경우 그라가스는 반드시, 필요하다면 말파이트까지 닫는다는 점이 유일하게 달랐던 점이었다.
이외에도 젠지가 선보였던 '트리스타나 미드' 또한 이미 한화생명이 지난 3월 말부터 시도하던 변칙(LCK PO 1R, 디플러스 기아전)에 가까웠다. LPL에서는 사실상 OMG의 시그니쳐 전략일 뿐, 아리-애니 및 르블랑과 같이 범용적으로 사용된 LPL의 주류 챔피언은 아니었다.
- 미래
일개 팬으로서 섣불리 T1의 미래를 점치는 것은 주제넘는 일일 수 있다.
다만 T1은 (그 어떤 플레이에도 능하지만, 특히) 슈퍼플레이에 특화된 미드라이너라는 자신만의 무기가 있다. 페이커가 균열을 만들고, 케리아가 그 다음을, 그리고 오너와 제우스가 그 케리아를 뒷받침해준다면 지난 9일의 아픔을 되풀이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
특히 T1에게는 아직 남은 무기들이 많다. 패치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은 야스오-그라가스 조합을 시작으로 탑 브루저 중심의 조합, 앨리스의 속도전, 카사딘을 중심으로 한 '눕기' 등이 예시가 될 수 있다.
T1은 단지, 이 많은 갈림길에서 잠시 길을 잃은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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