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 얼리러 유럽 가요"…해외 원정 가는 여성들, 휴가는 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 적지 않은 여성들이 생식 가능 기간을 늘리려 난자 냉동을 시도하고 있지만, 난자 냉동은 익숙한 환경에서 해도 쉽지만은 않은 일로 꼽힌다. 난포를 자극하는 호르몬 주사를 맞으면서 난자 성장 과정을 체크하고, 시술을 거쳐 성숙한 난자를 채취하고, 미래 사용 가능성을 대비해 채취한 난자를 액체 질소에 넣기까지의 약 2주에 걸친 지난한 과정을 밟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 난자 냉동을 위해 기꺼이 낯설고 물설은 해외로 원정을 가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에서보다 비용이 월등히 저렴한데다 관광지로서의 매력까지 갖춘 스페인, 체코 등이 난자 냉동 '성지'로 이름이 나며 많은 이들이 난자 냉동과 관광을 겸해 이 나라들로 몰려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여성들의 난자 냉동 여행을 주관하는 신생 회사 밀비아(Milvia)에 따르면, 미국에서 호르몬 주사, 의사 진찰·시술, 냉동된 난자의 보관에 이르기까지 난자 냉동 전 과정에 들어가는 돈은 약 1만8천달러(약 2천400만원)에 달한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이 과정에서 건강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머서 헬스뉴스에 따르면, 2020년 기준으로 직원이 2만명 이상인 미국 기업 중 난자 냉동에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회사는 20%에 못미치는 실정이다.
반면 스페인과 체코의 경우 1차례 난자 냉동 전 과정에 소요되는 비용이 미국의 3분의 1도 안되는 5천400 달러(약 710만원) 정도라고 전 세계 난자 냉동과 관련한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인 프리즈 헬스는 소개했다.
밀비아의 창업자 겸 대표인 아브히 가발카르는 난자를 얼리고 싶어하는 여성이 미국 내에서만 수백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이들 중 극히 일부만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터라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 나라는 평소 많은 사람들이 일생에 한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이기도 해 시술 중간 중간에 도시 곳곳을 둘러보고, 근사한 곳에서 식사를 하면서 관광객으로서의 즐거움까지 누릴 수 있다.
영어를 써서 언어 장벽이 없는데다 의료 수준도 높은 영국 런던의 경우에도 난자 냉동 과정에 드는 비용이 7천 달러로 미국보다 훨씬 저렴한 편이라 가발카르 대표는 자신의 회사 첫 고객의 난자 냉동 장소로 런던을 낙점해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털어놨다.
가발카르 대표는 난자 냉동에 필요한 병원 섭외와 진찰, 시술, 숙박뿐 아니라 고객이 원할 경우 관광 일정을 짜주는 것은 물론, 호르몬 변화로 자칫 불안정해지기 쉬운 시술 과정에서 심리적 안정을 줄 수 있는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성들까지 소개해준다고 설명했다.
프리즈 헬스의 제니퍼 래넌 창업자는 미국과 지리적으로 가까운데다 비용까지 저렴한 멕시코, 유럽에서 신기술 연구 수준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히는 스페인이 난자 냉동에 적합한 국가로 가장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령 푸에르토리코의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길리언 모리스(36) 씨의 경우 2019년 6월 친구 2명과 함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다 같이 난자를 얼렸다. 모리스 씨는 "스페인에서의 난자 냉동비용이 미국의 5분의 1이라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듣기 전까지는 스페인에 갈 생각을 못했다"며 시술 중간중간에 유행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박물관이나 인근 도시를 방문하는 등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이 갔던 병원의 의료진은 모두 영어를 구사했고, 미국 병원에 비해 좀 더 편안한 분위기였다며 자칫 힘들 수 있는 신체적인 경험을 친구들과 함께 축하하고, 재미를 찾을 수 있는 휴가로 변모시키는 즐거운 기억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인 그랜드뷰서치는 난자 냉동 등 전 세계 생식 관광 시장은 향후 7년 동안 30% 이상씩 급성장해 2030년까지는 시장 규모가 62억 달러(약 8조2천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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