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여기서 행패”…기업 앞은 ‘무법천지’, 번지수 잘못찾은 ‘민폐시위’

최기성 매경닷컴 기자(gistar@mk.co.kr) 2023. 4. 10.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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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폐시위 자료 사진 [사진출처=매경DB, 독자제공]
시위장소의 대명사인 광화문이 아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오가고 직장인들이 일하는 기업 앞이다. 고성방가는 기본, 폭행까지 발생한다. 불법 행위도 판치고 비방도 난무한다.

법원 판결도 무시한다. 무엇보다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심한 곳은 10년째 막무가내 시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사옥(서울 서초구 양재동) 앞에서는 출퇴근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고성능 스피커를 통해 고막을 자극하는 고음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진다.

도로변에는 기업에 대한 명예 훼손 소지가 높고 모욕적 표현으로 도배된 현수막 수십개가 걸려 있다.

캠핑장도 아닌데 불법으로 들어선 천막은 보행도로를 가로 막고 있다. 천막 안에는 화재를 일으킬 수 있는 휴대용 가스버너까지 있다.

이곳에서 시위를 벌이는 A씨는 자신을 고용했던 판매 대리점 대표와의 불화와 판매부진 등으로 판매용역계약이 해지됐다.

그는 기아에 ‘원직복직’을 요구하며 10여년간 시위를 벌이고 있다. A씨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판매 대리점은 개인 사업자가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A씨는 해당 대리점의 개인 사업자일 뿐 고용에 있어 기아와 관계가 없어서다.

하지만 그는 “기아차는 내부고발자 A씨를 즉각 복직시켜라” 등의 현수막을 게시했다. 기아로 인해 해고당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기아는 A씨를 상대로 과대소음·명예훼손 문구 금지 등 가처분 소송과 민사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형사소송 1심에서도 A씨에게 유죄 판결을 선고했다.

A씨는 법원 판결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위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A씨는 시민들에게도 불편을 주고 있다. 시민들이 이용할 보행공간을 캠핑장처럼 사용해서다. 보행로를 가로막은 채 대형천막을 설치하고 거주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천막에는 취사도구와 난방도구 등도 갖췄다.

지방자치단체 허가 없이 인도나 차도에 설치한 천막이어서 불법이다. 하지만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불법 천막 단속은 거의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해 7월 서초구청이 불법 설치된 A씨의 텐트를 철거하기도 했다. A씨는 서초구청 1층 로비를 무단 점거하고 고성을 동반한 시위를 벌여 민원인들을 불편하게 하는 등 서초구청의 업무 방해했다.

A씨는 행정기관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다시 길 위에 불법적으로 천막을 설치했다. 서초구청이 A씨의 천막과 천막에 내건 현수막 등에 대해 무단적치물, 불법광고물을 정비할 것을 수 차례 계고통지하고 있다. 단, A씨의 막무가내식 행동이 반복될 것을 우려해 강제철거에는 나서지 못하고 있다.

도를 벗어난 천막시위, 폭행에 흉기까지
현수막과 천막이 설치된 현대차그룹 사옥 주변 [사진출처=독자제공]
현대차그룹 앞만 난장판이 된 것은 아니다. 하이트진로 서초사옥 앞에서도 10여년간 트럭을 이용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하이트진로음료로부터 부당영업행위를 당했다고 주장하는 생수업체 대표 B씨는 1.5톤 포터 트럭을 주차하고 숙식을 해결하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B씨는 확성기를 사용해 하이트진로를 비난한다. ‘하이트진로의 범죄 행위’라며 사실로 확인되지 않은 내용들을 적은 현수막을 곳곳에 설치했다.

B씨는 하이트진로가 제기한 형사소송에서 명예훼손으로 유죄가 인정되기도 했다. B씨가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이 이뤄져 하이트진로측은 손해 배상금 지급 의사를 밝혔다. B씨는 이를 거부하고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KT 종로사옥 앞에서는 C씨가 수년간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는 2010년 쇠사슬을 들고 상급자를 폭행해 회사에서 해고됐다.

C씨는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10여차례 소송을 제기했지만, 대법원과 각급 법원에서 모두 패소했다. 법 판결로 시위 명분은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C씨는 이에 상관하지 않고 있다.

가입자 유치를 위해 과다 채권을 매입하다 2009년 거액의 빚을 지고 폐업한 전 대리점주 D씨는 KT에 피해액 보상을 요구하며 천막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종로구청에서 천막의 철거를 요구하자 D씨는 종로구청 관계자를 폭행하고 칼을 든 채 80m를 쫓아가며 위협해 경찰이 출동하기까지 했다.

D씨는 여전히 KT 앞에 천막을 치고 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장기간 천막 시위를 벌이고 있는 SPC 노조도 관할 지자체에서 자진철거를 계고하고 수차례 행정집행을 시도했다. 최종 노사 합의가 이뤄지고 나서야 천막을 철거할 수 있었다.

집회 자유 못지않게 시민 기본권도 보장
KT 사옥 앞 시위 [사진출처=독자제공]
전문가들은 “헌법 제21조 1항에 있듯이 집회·결사 자유는 보장받아야 한다”면서도 “선량한 시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릴 기본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아울러 “불법적인 방식의 시위 행태로 일반 시민과 기업의 불편을 초래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데 대해서는 단호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실제 지속적 소음, 반복적 모욕, 악의적 표현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다수 일반 시민의 사생활 평온권, 건강권, 학습권, 인격권 등에 대한 보호 장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현재 무분별하게 발생하는 민폐 집회 상당수는 북과 꽹과리 등 시끄러운 악기를 동원하거나 대형 확성기를 통해 고성을 지르고 장송곡을 재생하는 등 악의적 소음을 유발한다.

한 대기업 사옥 앞에서 시위대가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내뱉는 욕설과 장송곡이 사옥 1층에 위치한 어린이집까지 울려 퍼져 논란이 일어난 적도 있다.

집시법에 따르면 ‘사람에 모욕을 줄 수 있는 구호나 낙서 등으로 사생활의 평온을 뚜렷하게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규제가 가능하지만 기준이 애매하고 자의적 해석 우려가 있어 실제로는 거의 적용되지 않고 있다.

시민들도 정도를 벗어난 과격시위를 싫어한다. 다른 사람들의 호응을 이끌어내야 하는 시위의 목적에 맞지 않은 셈이다.

지난 2021년 여론조사기관인 리서치앤리서치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과격시위에 대해 10명 중 7명 이상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다.

이 조사는 전국 만19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1대1 전화면접조사(유선 21%, 무선 79%)로 진행됐다.

응답자 중 73.4%가 ‘목적달성을 위해 과격한 방식이 필요하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답했다.

한편 해외 선진국들은 개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집회에 대해 강하게 규제하고 있다.

프랑스는 집회 소음이 주변 배경소음보다 주간 5데시벨, 야간 3데시벨을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미국은 소음 유발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장기적으로 소음을 발생시킬 경우 수수료를 부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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