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희소한데 희귀질환 아니다?…'미지정' 740건, 환자는 고통

이창섭 기자 2023. 4. 10.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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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 지정 사업, 2018년부터 시작
지난해까지 미지정 건수 740건… '전문가 의견 보완' 사유 급증
"심의전문위원 전문성·투명성 높여야" 목소리

2018년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 지정 사업이 시작된 이후 5년간 희귀질환 '미지정' 심의가 740건에 달했다. 국가관리 희귀질환으로 지정되면 병을 앓는 환자는 국가로부터 의료비·간병비 등 재정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전신농포건선, 단장증후군 등 희귀한 질환임에도 국가관리 지정을 받지 못해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가 적지 않다. 특히 질환 정보가 부족해 전문가 의견 보충이 필요하다는 미지정 사유는 2019년과 2020년 0건에서 지난해 20건으로 급격히 늘었다. 이에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 지정을 심의하는 전문위원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선우 국회의원(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질병관리청에 요청해 제출받은 '연도별 희귀질환 미지정 심의 결과'에 따르면, 2018년 9월 국가관리대상 희귀질환 지정 사업 첫 공고 이후 5년간 미지정 심의 결과 건수는 총 740건이다. 연도별 미지정 건수는 △2019년 133건 △2020년 118건 △2021년 246건 △2022년 243건이다.

정부는 국가관리 희귀질환을 지정해 해당 병을 앓는 환자에게 진료비 본인부담금 10%와 같은 산정특례를 지원한다. 2018년 926개 지정을 시작으로 매해 적게는 30개에서 많게는 80개의 새로운 희귀질환이 국가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의료진 혹은 병을 앓는 환자가 직접 희귀질환 지정을 신청할 수 있으며 2019년 325건을 시작으로 해마다 100~300건의 신청이 접수됐다. 그러나 심사에서 떨어져 국가관리 희귀질환에 지정되지 못하는 병도 매해 100~200개씩 나오는 실정이다.

이로 인해 매우 희소한 질환을 앓고 있음에도 국가관리 희귀질환이 아니라 의료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생겨난다. 전신농포건선이 대표적이다. 국내 약 3000명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신농포건선은 온몸에 고름과 물집이 생기는 질환이다. 전염성은 없지만 주변의 시선 때문에 환자는 자존감 저하와 대인기피 등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는다. 2018년부터 국가관리 희귀질환 지정을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질환 진단 및 치료의 사회경제적 비용이 낮다'는 이유로 미지정 통보를 받았다.

소아 '단장증후군'도 대표적인 사각지대다. 선천적 또는 절제 수술 등 후천적 이유로 소장의 50% 이상을 소실하면 단장증후군이다. 매년 약 100여명 환자가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5~6년 사망률이 최대 35%에 달하며 수술 비용도 6500만원에 달해 질병 부담이 크다.

선천성 단장 증후군은 국가관리 희귀질환으로 지정돼 환자가 산정특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절제 수술 등 후천적 이유로 단장증후군에 걸린 환자들이다. 이들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같은 질환임에도 선천성·후천성에 따라 희귀질환 지정이 갈리는 것이다.

질병관리청은 7가지 기준을 적용해 국가관리 희귀질환을 지정한다. 가령, 유병인구가 2만명을 초과하면 희귀질환으로 지정되지 못한다. 수술로 완치가 가능하거나 중증도가 낮은 것도 미지정 사유가 된다.

그러나 7가지 세부 기준 중에서 '국내 학계 등에 보고 사례가 부재하거나, 해당 학회·전문의 의견 보충·보완이 필요한 경우 등 정보 부족'으로 희귀질환 지정에 실패한 사례가 최근 급격히 늘었다. 해당 기준으로 인한 희귀질환 '미지정' 건수는 2019년과 2020년 각각 0건이었다. 2021년에도 3건에 불과했으나 지난해에는 20건으로 급증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최근 유전자 분석 기법 등 진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새로운 질환들이 발견돼 정보가 없는 케이스가 여기에 속한다"고 설명했다.

희귀질환 지정 심사를 담당하는 전문가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는 이런 지적을 수용해 지난달 시행령을 개정하고 희귀질환 전문위원회 구성을 기존 10명에서 20명으로 확대했다. 그럼에도 전문위원의 구성과 이들이 내린 심사 결과, 특히 '미지정' 사유를 공개해 희귀질환 지정에서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김현영 서울대병원 소아외과 교수(서울대병원 희귀질환센터)는 "후천성 단장증후군까지 희귀질환에 포함하려고 학회·개인 차원에서 노력했지만 전문위원 심사에서 매번 탈락해 안 되고 있다"며 "전문위원들이 대체 누구로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이들이 심사할 수 있는 전문성은 있는지 그리고 '미지정' 판단을 내렸다면 그 사유는 무엇인지 등을 공개해 더 투명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선우 의원은 "삶의 질을 위협하는 희귀질환임에도 불구하고 애매한 기준으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인 질환 환자가 많다"며 "희귀질환 지정 시 전문가 자문을 확대하고 질환별 특성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창섭 기자 thrivingfire21@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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