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 마티스 작품에 ‘후더베어’가 뛰어든 이유는?

김슬기 기자(sblake@mk.co.kr) 2023. 4. 10. 15:2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국 작가 사이먼 후지와라
5월까지 갤러리현대 개인전
피카소 마티스 워홀 작품 변주
곰 캐릭터 ‘후’의 모험 표현해
아트상품 파는 ‘후티크’도 열어
후더베어 드로잉을 하는 사이먼 후지와라 [갤러리현대]
황금빛 심장을 가진 곰, ‘후(Who)’가 미술관에 뛰어 들어왔다. 미키마우스를 닮았고, 곰돌이 푸도 연상시키는 장난기 넘치는 후는 일본계 영국 미술작가 사이먼 후지와라(41)의 분신 같은 만화 캐릭터. 2021년 밀라노 프라다재단 전시에서 탄생해 로테르담, 베를린, 도쿄 등을 거쳐 서울에 상륙했다.

갤러리현대에서 후지와라의 개인전 ‘Whoseum of Who?’를 5월 21일까지 연다. 후가 뛰노는 회화, 영상, 설치 등 ‘후더베어(Who the Bær)’ 연작 40여점을 전시한다. 한국에서는 특별히 20세기 미술사의 걸작들을 후가 재구성·재창조하는 재기발랄한 작업을 선보인다.

케임브리지대 건축과와 프랑크푸르트 슈테델슐레 예술대를 졸업하고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2010년 아트바젤 발루아즈상을 받은 차세대 예술가다. 개막일에 방한한 작가는 “2020년대 코로나19로 집에 갇혀 지내면서 시작한 작업이다. 혼란하고 어두운 고립의 시기가 작가인 저에겐 평화로운 시기였다. 자본주의와 브랜딩으로 넘쳐나는 시대를 모순덩어리 캐릭터로 대응하고자 했다. 일종의 세계관이자 테마파크 같은 존재로 받아들여 달라”고 말했다.

1층 안락한 소파에 앉아 후의 탄생기를 담은 10분의 영상부터 만날 수 있다. 후는 인종, 젠더, 계급 등 정체성에서 자유로운 2차원 캐릭터. 마티스, 피카소 등을 재창조한 이미지의 세계가 후가 실존하는 세계다. 작가는 “동화 속 피노키오와 인어공주는 ‘진짜’가 되고 싶어 한다. 후의 욕망은 다르다. 진짜 대신 궁극의 이미지가 되는 게 후의 꿈이다. 이것이 소셜미디어의 시대의 동화가 아닐까”라고 했다. 동시대인에게 진정한 자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셈이다.

앙리 마티스를 재해석한 ‘Who’s Big Identity Deep Dive (Soul Searcher)‘ [갤러리현대]
1층에는 데이비드 호크니의 ‘더 큰 첨벙’ , 앙리 마티스의 ‘앵무새와 사이렌’을 연상시키는 대작이 걸려있다. 호크니와 마티스의 물 속으로 다이빙하는 후를 찾게 되면 웃음부터 나온다. 지하 1층에는 피카소, 마티스, 세잔의 회화에 들어간 후의 모습을 다채롭게 만난다.
지하 1층 전시 전경. 피카소를 재해석한 작품이 걸려 있다. [갤러리현대]
2층에서는 데미안 허스트가 수조에 박제한 상어, 바스키아의 그래피티가 변주되고 뒤샹의 변기 위의 후도 만난다. 인종, 젠더, 성, 계급 등이 적힌 앤디 워홀의 토마토수프에 뛰어드는 후도 있다. 작가는 “워홀은 미술작가가 어떻게 브랜드가 될지 보여준 영웅이었다. 후더베어는 워홀의 손자다”라고 말했다.
앤디 워홀을 재해석한 ‘Who’s Identity Soup?(Four Options)‘ [갤러리현대]
모네의 대작 ‘수련’ 3점이 걸린 방까지 만들었다. 연못에 후가 보이지 않는 이유를 묻자 작가는 “아마 물에 들어갔을 것”이라면서 “우리는 이미지로 포위된 납작해진 시대에 살고 일다. 그런 의미에서 경험 안에 관람객을 끌어들이려 했던 최초의 가상현실(VR) 작가였던 모네를 기리고 싶었다”라고 했다.
2층에 모네 ‘수련’을 재해석한 작품이 걸려있다. [갤러리현대]
미술사의 걸작들이 거침없이 등장하지만 희화화를 위한 ‘패러디’가 아닌 ‘패스티쉬’(혼성모방)와 ‘콜라주’ 작업이라 작가는 선을 그었다. 후지와라는 “작가로서 불안이 반영됐다. 예술의 미래는 어디로 갈까. 돈과 놀이와 셀러브리티, 패션이 합쳐진 어떤 것이 될지 모른다”고 말했다.

미술관 자체가 아이콘이 된 구겐하임 빌바오를 후의 얼굴처럼 만든 건축 모형도 걸렸다. “오늘날 미술관은 점점 더 오락을 위한 장소가 됐다. 고급예술과 대중예술의 경계도 흐려졌다. 유럽의 고급예술이 스마트폰으로 공유되는 대중들의 시대가 된 건 멋진 일이다. 이 곳은 성인들을 위한 디즈니랜드 같은 곳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는 뒤샹, 워홀 다음의 지형에 놓이면 좋겠다. 일종의 대량생산시대에 대한 시(詩)인 셈이다”라고 덧붙였다.

대중친화적 전시의 방점은 팝업스토어 ‘후티크’에서 파는 아트 상품이다. 셔츠, 모자, 가방, 노트 등을 파는 이유를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조차 ‘후니버스’의 일부다. 걱정은 후가 너무 유명해지면, 내가 신처럼 예수인 후를 지상에 보낸 셈인데 십자가에 달리면 어쩌나 하는 거다. 후니크는 미래 관객들이 2023년에 인류가 이런 짓을 했구나, 알게 되는 일종의 아카이브로도 남길 바란다.”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