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영국 정찰기 격추할 뻔”[美 기밀 유출로 드러난 것들]

미국 유럽사령부가 지난 3월16일(현지시간) 공개한 영상에 나타난 미 공군 MQ-9 드론. AFP연합뉴스

지난해 우크라이나 인근에서 러시아 전투기가 영국 정찰기를 격추할 뻔했던 사실이 최근 유출된 미국 국방부 기밀문건을 통해 밝혀졌다.

9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를 보면, 이 사건은 지난해 9월29일 크름반도 해안 상공에서 발생했다. 최근 유출된 미 국방부 기밀문건은 이를 “영국 RJ가 거의 격추당할 뻔한 사건”(near-shoot down of UK RJ)으로 표현했다. RJ는 RC-135 정찰기 ‘리벳 조인트’를 뜻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러시아 전투기가 영국 정찰기와 대치했다는 사실 자체는 지난해 10월 영국 하원에서도 언급된 적 있다. 당시 벤 월러스 영국 국방장관은 비무장한 영국 RC-135 정찰기가 일상적 정찰 업무를 수행하던 중 러시아 Su-27 전투기 2대에 추적 비행을 당했고, 그 와중에 Su-27 한 대가 미사일 한 발을 발사했다고 밝혔다.

이때 월러스 장관은 ‘격추할 뻔했다’가 아닌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표현을 썼다. 아울러 러시아 국방 관계자와 논의한 결과 “기술적 오작동”에 따른 발사였다고 전했다. 그러다 이번에 미 국방부 기밀문건이 유출되며 격추에 가까웠던 정황이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이 사건은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를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접 끌어들일 수도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태였다고 WP는 전했다. 나토 헌장 5조는 한 회원국에 대한 공격을 나토 전체에 대한 공격으로 간주하는 ‘집단방위’를 규정한다.

WP는 영국이 표현 수위를 낮춘 것을 두고 “서방이 러시아와 직접 충돌하지 않으면서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정보를 수집하고, 균형을 유지해오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밖에도 이 문건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지난 2월26일까지 흑해 상공에서 벌어진 정찰비행과 이에 대한 러시아 측의 대응이 상세하게 수록됐다. 지난해 12월30일엔 또 다른 영국 RC-135 정찰기와 타이푼 전투기 2대가 러시아 전투기에 가로막혔으며, 지난 2월22일엔 미국의 MQ-9 정찰 드론이 러시아에 적발됐다.

문건에 수록된 지도에는 흑해 상공에 정찰기가 비행할 수 있는 경계 또한 그려져 있었다고 WP는 전했다. 해안으로부터 약 80㎞ 떨어진 2차 구분선도 있었는데, 이는 “국방장관이 떨어져 있으라고 지시했다”(SECDEF Directed Standoff)로 표기됐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이 자국 조종사들에게 크름반도로부터 거리를 두라고 명령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문건은 ‘기밀/외국국적자 열람 금지’(SECRET/NOFORN)로 분류됐다. 미국 시민이 아닌 사람과 공유할 수 없음을 뜻한다.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