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춘 칼럼] 103세 철학교수의 참 이상한 철학
[미디어오늘 손석춘 칼럼니스트·철학자]
100세 넘게 살며 글 쓰고 강연 다니면 축하할 일이다. 다만 그 글과 말이 편향되거나 사실과 다른 억지를 편다면 그 반대다. 김형석 명예교수가 대선 정국에서 낡은 색깔론을 펴며 선거에 개입할 때 우려를 전했다('101세 철학자'의 끝 모를 흑백논리, 21년 9월20일).
충정으로 권해도 소용없기에 그 뒤 침묵했다. 그런데 최근 일주일새 두 편을 기고한 칼럼은 충격적이다. 중앙일보 칼럼(20대 일본 유학서 깨달은 것 “왜 열심히 일해야 하나” 3월31일)과 동아일보 칼럼(과거의 연장으로는 국가적 후진성 극복 못 한다, 4월7일)이 그것이다.
중앙일보 칼럼에서 그는 일본 유학에서 뼈저리게 느낀 것은 “저렇게 열심히 일하는 국민이기에 게으른 우리 민족을 지배하고 살았구나, 하는 죄책감이었다”고 썼다. 그는 “당시 우리 민족은 너무 나태했다”고 단언한다. 대체 그는 물론 중앙일보도 역사의식이 마비된 걸까. 그가 일본 유학할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독립운동을 벌였다. 우리 민족이 너무 나태했다? 일제에 강제동원 된 동포들이 고통스레 일할 때 조선인은 일하지 않는다고 깨닫는 '철학'을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옳은가. 당시 민중들은 착취와 수탈에 맞서 일제에 항거했다.
예서 그치지 않는다. 노동조합에 색깔을 칠한다. 박정희가 “공산국가의 노동조합은 정권을 쟁취할 때까지는 파업과 반정부 투쟁을 한다는 사실과 정권을 쟁취한 후에는 절대로 파업이나 정치비판은 못 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동조합을 허락하지 않았”단다. 야만적 노조 탄압의 정당화다. 칼럼마다 문재인이 “친북좌파”라는 그는 “국민의힘 정부와 국민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겁”다고 강조한다. 결론은 “적게 일하고 많이 놀기 위한 인생이 아니”란다. 눈여겨 볼 것은 윤석열이 노동시간과 대일 굴복외교로 지탄받는 상황에서 이 글을 썼다는 점이다.
동아일보에 기고한 칼럼은 문재인이 '친북적 과오'를 범했다면서 “그 결과로 나타난 사건 중의 하나가 일본 미쓰비시회사와 징용 문제 배상 사건”이라고 부르댄다. 그의 논리적 비약은 그 사건이 “자연 발생보다는 정부가 의도적으로 조작한 느낌”이라는 데서 극에 달한다. 나름의 근거를 제시한다. “지금 이재명을 대표로 하는 더불어민주당의 발언과 주장이 바로 그 사실을 뒷받침”한다나. 정치모리배들보다 더한 색깔론이자 음모론이다. 그는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은 “윤석열 정부가 일본과의 공존 정책을 찬성하는 이유와 명분을 높이 평가한다”고 결론 짓는다. 지금 윤석열을 비판하는 사람은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이 아니란 말인가. 문재인 정부가 언제 “일본과의 공존”을 반대했단 말인가. 곳곳이 '허수아비 오류'다.
그가 유학가서 일본에 감탄할 때 도쿄의 뜻있는 유학생들은 항일비밀결사를 조직했다. 메이지대학의 김종백은 국내로 들어와 조선민족해방협동당을 결성하고 경기 북부의 국망산에서 무장항쟁을 준비했다. 혹시라도 그들을 좌파로 몰 생각은 아예 말기 바란다. 그럴까싶어 일부러 좌파 아닌 독립운동을 예로 들었다. 해방을 앞두고 체포된 김종백은 끝내 일제의 고문으로 옥사했다. 김형석 교수가 군부독재의 인권 유린에 모르쇠 놓을 때 수많은 젊은이들이 민주화운동에 나서 죽고 다치고 감옥에 갔다. 혹시 그는 내심 그 모두에 색깔을 칠하고 있는 걸까.
일부 언론은 그가 4월혁명에 교수시위를 주도한 듯 보도했고 그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직한 자세가 아니다. 4월혁명의 교수시위를 주동한 이는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맞지만 김형석이 아니라 정석해다. 조중동 신방복합체가 내내 밀어주어서일까. 이제 일제 강점기에 생게망게한 죄책감까지 버젓이 공언한다. 도무지 부끄럼이 없다. 외교와 민생에 실정을 거듭하는 권력을 비호하는 모습도 남세스럽다. 더 큰 문제는 역사에 대한 호도, 동시대인들에 대한 오도다. 일본의 지배세력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는 주장을 한층 노골화하고 있어 더 그렇다.
70년째 '철학교수' 이름 아래 활동하는 그의 철학은 참 이상하다. 색깔론, 음모론, 식민사관은 철학이 아니다. 철학이 비판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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