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취자 잇단 사망에 ‘14년 전 써먹은’ 시책 꺼내
2년 만에 사라진 ‘주취자 치료·보호제’ 판박이
주취자 사망사고 잇따르자 부산이 전담 의료센터를 운영하기로 했다. 하지만 14년 전 도입했다가 유명무실해진 치안 정책을 이름만 바꿨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은 오는 11일 부산의료원 응급실 별관에 ‘부산주취해소센터’의 문을 연다고 10일 밝혔다. 부산소방재난본부, 부산의료원와 함께 직원 10명 가까이 배치해 주취자를 관리한다.
지자체·경찰·소방·의료기관이 협업하는 전국 첫 사례라는 것이 부산시의 설명이다.
부산지역 주취자 신고는 2021년 6만3575건, 2022년 7만7096건으로 증가했으나 공공구호시설이 없어 각종 사고와 범죄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2022년 8월 12억원을 투입해 부산의료원 내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개소했으나, 응급의료 대상이 되지 않는 일반 주취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다.
이에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은 지난해 시도별로 설치된 주취자응급의료센터를 단순 만취자도 수용·보호 가능한 ‘주취해소센터’로 전환해 운영하기로 했다.
경찰관 6명, 소방관 3명을 배치돼 합동 근무하며 소방관 중에는 간호사 또는 응급구조사 자격이 있는 구급대원이 포함됐다. 이들은 주취자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의료적 개입이 필요한 경우 병원 진료를 요청한다. 의식이 있거나 보호자가 있는 경우 귀가 또는 가족 인계 조치한다. 난동 등 폭력행위자는 경찰서에 보호 또는 사법 조치한다.
외상이 없는 상태에서 의식이 없고 보호자 확인이 안 되며 난동이 없는 주취자만 주취해소센터로 보내는 것이다. 본인이 동의할 경우 부산중독관리통합센터에 통보해 상담과 중독 치료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부산시와 부산시의회는 이번 시범 운영을 통해 ‘주취해소센터 설치·운영에 관한 조례’를 발의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번 부산주취해소센터가 ‘졸속 대안’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11월30일 오전 1시28분쯤 서울에서 경찰이 주취자가 발견했으나 주거지 앞 계단에 앉혀두고 철수했다가 동사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올해 1월19일 오후8시쯤 서울에서 경찰이 주취자 신고를 받고 관찰한 뒤 출동했다가 철수했으나 주취자가 옆 골목으로 이동 후 쓰러진 뒤 달리던 승합차에 깔려 숨진 사고가 일어났다. 올해 1월29일 새벽 경남에서는 119구급대가 경찰지구대에 인계한 주취자가 잠을 자던 중 일어나 넘어져 두개골 골절로 의식 불명 상태에 빠진 일도 발생했다.
주취자 사망사고가 잇따르자 경찰청이 대안 마련에 나서면서 부산시와 부산경찰청이 선제적으로 ‘주취해소센터’ 카드를 꺼냈으나 해묵은 치안 정책을 이름만 바꿨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앞서 부산경찰청은 2009년 부산주취해소센터와 유사한 ‘주취·소란자 치료·보호센터’를 부산의료원에 설치, 운영했다. 경찰관 1명이 상주하는 형태였으나 부산의료원과 먼 지역의 지구대에서는 이송 업무에 동원할 인력이 부족했고, 이송 시간도 많이 소요돼 지구대 소속 경찰관들은 제도 운용에 소극적이었다. 이후 각종 문제점으로 사실상 유명무실해졌다.
당시 주취·소란자 치료·보호센터에 대한 인권 침해 위험성도 비판받았다. 노숙자나 독거인 등 보호자가 없는 경우 본인의 판단 착오로 정신과 입원이 결정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 부산사무소는 “경찰이 합법적으로 시민을 정신병원에 보낼 수 있는 제도가 돼서는 안 된다”라고 경계했다.
이에 경찰관 중 상당수가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해 제도가 돼 결국 시행 2년만인 2011년 센터는 폐지됐다.
권기정 기자 kw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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