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함께 울 공간
유가족끼리의 위로 중요한데, 최소한의 공간도 없어
2023년 4월 5일은 이태원 참사로 159명이 숨진 지 159일째 되는 날이다. 2022년10월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해밀톤호텔 옆 골목길에서 158명의 삶이 스러졌고 어렵게 살아남은 1명도 사회가 지키지 못해 허망하게 떠났다. 그 사이 몇 번의 경찰 압수수색과 국회 국정조사 질의응답이 있었지만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밝히는 진상규명은 더디기만 하다. 참사 159일을 앞두고 유가족들이 독립 조사 기구 설립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자며 ‘진실버스’에 오른 이유다.
<한겨레21>은 159일째를 맞이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연재 인터뷰 기사 <미안해, 기억할게>에 실린 참사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종합해 싣는다. <미안해, 기억할게>는 2022년12월부터 희생자 각 가정을 기자가 찾아가 인터뷰한 시리즈로 현재 36명의 희생자 가정이 참여했다. 재난 피해자이자 증언자인 유가족들의 시선으로 재난을 다시 바라본다._편집자
“그냥 AI(인공지능)와 대화하는 느낌이었어요. 무엇무엇 때문에 힘들다고 하면 ‘그러셨구나' 이게 다예요.”(유채화 동생 채린씨)
3회 이상 연락 안 되면 지원 종결
<한겨레21>이 ‘미안해 기억할게'를 연재하며 만난 36명의 희생자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가 정부의 심리지원이었다. 2022년 10월29일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이후 정부는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희생자 유가족들과 부상자, 부상자 가족 등에 대한 심리지원을 해왔다. 지원 과정은 먼저 지원단을 운영하는 국가트라우마센터가 대상자 정보를 파악하고 심리지원 안내 문자를 발송한다. 대상자가 동의하면 대면 혹은 비대면으로 상담을 진행한다. 이후 연결되지 않으면 1~2일 간격으로 추가로 연락을 시도하지만, 3회 이상 연결되지 않으면 안내 문자를 발송한 뒤 종결한다.
<한겨레21>이 국가트라우마센터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참사 이후 유가족을 대상으로 한 심리지원은 모두 1526건(2023년 3월31일 기준)이 이뤄졌다. 이 중 비대면 상담은 1305건, 대면 상담은 221건이었다. 참사 50여 일이 지난 시점(2022년 12월16일 기준)의 유가족들의 전체 상담 건수가 953건이었다. 참사 직후 50여 일 동안 집중적으로 1천 건가량의 상담이 이뤄졌지만, 이후 100일이 넘는 동안은 절반 수준으로 떨어진 셈이다.
희생자 이지한의 어머니 조미은씨와 아버지 이종철씨는 아직 상담을 받지 않았다. 지한의 누나가 먼저 상담받고 돌아와 해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오더니 ‘다시는 안 가겠다'고 하더라고요. 공감하는 말을 원했는데, 상담 내내 앵무새처럼 있었던 일만 이야기하면서 진술서를 쓰는 것 같았다는 거예요. (이후) 다른 유가족들도 그랬다고 이야기하시더라고요.”(조미은씨)
유채화의 어머니 안태경씨도 “형식상” 하는 것처럼 느껴져서 상담을 더 받지 않았다. 안씨는 “처음에는 이야기를 들어줬는데, 나중에 갈수록 (상담이) 많아졌는지 시간에 쫓기는 것 같았다. 의무감으로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현정 충북대 심리학과 교수(한국심리학회 재난심리위원장)는 “국가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매뉴얼화되어 있는 단기 서비스이기 때문에, 유가족이 느끼는 개별의 다양한 어려움과 감정을 대응하기엔 상담가로서도 어렵고 낙담과 자책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심리상담가의 훈련 시스템과 자격인증에 관한 법 제도가 없다”며 “국가 기관에서 장기 심리지원을 제공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조서 같았던 상담, 상담 내용 경찰에게 알려져
먼저 연락했지만 실망하고 돌아선 유가족도 있었다. 최유진의 어머니 서미정씨는 참사 이후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처음으로 영남권트라우마센터(국립부곡병원)에 전화했다. 경찰에게서 전달받은 심리상담 담당자 이름을 말하고 도움을 요청했지만 “그런 담당자가 없고, 찾아본 뒤 다시 연락을 주겠다”는 답을 받았다. 그러나 만 하루가 지날 때까지 답은 오지 않았다. 서씨가 다시 전화를 걸어 담당자를 물어봤다. “다 외부에 출장 나가 있어서 명단을 확인할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런 내용이 보도되자 영남권트라우마센터에서 먼저 서씨에게 연락이 왔다. 서씨는 “도움이 필요할 때 받지 못했으니 더 이상 필요 없다”고 말한 뒤 끊었다.
박가영의 어머니 최선미씨는 2023년 1월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공청회에서 “실질적인 상담이 이뤄졌다기보다 조서를 꾸미는 정도였다”며 “상담 내용이 경찰에게 알려졌다”고 말했다. 최씨의 이야기를 듣고 정부 지원 상담을 받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유가족도 있었다. 다만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최씨의 발언과 관련해 “충청트라우마센터에 확인해봤지만 경찰과 통화하거나 진료 정보를 제공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제공하는 지원에 실망한 이들은 각자의 노력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경로를 찾았다. 오근영의 누나 오선영씨는 보건소를 찾아 상담치료를 소개받았다. 안태경씨는 참사 이후부터 연락하고 지낸 경찰을 통해 상담받을 곳을 추천받았다. 서미정씨는 한국심리학회의 도움을 받아 상담을 진행했다. 시민사회도 움직였다. 이태원 참사 피해자권리위원회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여러 단체와 의료심리지원단을 꾸렸다.
어떤 상담보다도 참사 이후 유가족에게 가장 큰 위로와 지지가 돼준 건 같은 슬픔을 겪는 다른 유가족이었다. 조미은씨는 “다른 유가족을 만나면서 붙들고 엉엉 울었을 때 진정한 트라우마 치료구나라는 생각을 했다”며 “(분향소) 텐트에서 만나 ‘나는 이랬다’ ‘지금 마음은 어떻다’ ‘무슨 약을 먹고 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공감대를 이어가게 됐다”고 말했다. 양희준 누나 양현아씨도 처음 본 한 희생자 유가족에게 위로를 받았다. 희생자 어머니가 “괜찮다”며 함께 울어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가족 간 관계를 만들어주고 최소한의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한국트라우마스트레스학회 회장)는 “(같은 슬픔을) 겪어본 유가족들을 연결해서 서로 만날 수 있게 돕는 것은 치유에 도움이 되고 가이드라인에도 나온 내용”이라며 “최소한의 공간이라도 제공하고 그 공간에서 관은 관대로, 트라우마센터도 꾸준히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상하지 않아도 슬픔을 아는 사람들과 함께
참사 이후 지금까지 유가족들에게 제공된 공간은 없다. 정부가 나서서 연결해주거나 연락처를 제공해주지 않아 유가족들이 직접 나서서 찾아야 했다.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직접 녹사평역 인근에 시민 분향소를 차린 뒤에야 처음 공간이 생겼다.
“진정한 트라우마(치료)는 가족들끼리 모여서 이야기할 때 (이뤄진다고) 다들 동감해요. 엄청 추울 때, 지금은 쪄 죽을 것 같은 낮에 그 텐트 안에서 이야기할 때요. 서로 공감하고 껴안고 울어주고, 똑같이 느끼는 슬픔이잖아요. 가족이 아니면 상상해야 하잖아요. 상상하지 않아도 되는 슬픔, 그런 게 있더라고요.” 조미은씨의 말이다.
유가족들은 서울광장으로 분향소를 옮겨 운영하고 있다. 분향소 옆 작은 텐트가 유가족들이 가진 공간 전부다. 이마저도 설치 이후 서울시에서 자진철거하라는 계고장을 여러 차례 보내며 갈등을 빚었다. 서울시는 여전히 서울광장의 분향소를 ‘불법 시설물’로 보고 있다. 대치는 현재진행형이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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