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홀 더블보기에 최종일 4타나 뒤졌지만···람은 흔들리지 않았다

양준호 기자 2023. 4. 1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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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회 마스터스 최종
12언더로 역전승···첫 그린재킷
켑카 등 꺾고 PGA 자존심 지켜
"우상 세베 생일에 우승 더 의미"
한국 선수들은 4명 모두 톱 30
욘 람(오른쪽)이 10일 마스터스 우승 뒤 전년도 챔피언인 스코티 셰플러가 입혀주는 그린 재킷을 걸치고 있다. 람은 셰플러로부터 세계 랭킹 1위 타이틀도 빼앗았다. AP연합뉴스
[서울경제]

그린 재킷을 입고 마이크 앞에 선 욘 람(29·스페인)은 5분여의 우승 기념 연설을 이 말로 마무리했다. “편히 잠드소서, 세베.” 세베는 람의 우상인 스페인 골프 영웅 고(故) 세베 바예스테로스를 가리킨다.

10일(한국 시간) 끝난 남자 골프 ‘메이저 중의 메이저’ 제87회 마스터스는 골프와 스포츠에서 실수를 어떻게 극복하는 것인지, 롤모델이란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준 교과서와도 같았다.

람은 이날 미국 조지아주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파72)에서 막 내린 시즌 첫 메이저 마스터스에서 나흘 합계 12언더파 276타로 우승했다. 8언더파 공동 2위 브룩스 켑카와 필 미컬슨(이상 미국)을 4타 차로 따돌리고 마스터스 사상 가장 큰 우승 상금인 324만 달러(약 42억 7000만 원)를 거머쥐었다. 2021년 US 오픈에 이어 메이저 2승째. 마스터스와 US 오픈을 모두 제패한 최초의 유럽 선수로 기록됐다. 미국프로골프(PGA) 투어에서 올해만 4승째를 거둔 람은 ‘2023년의 남자’를 일찌감치 예약했고 세계 랭킹 3위에서 1위로도 올라섰다. PGA 투어 통산 승수는 11승.

비로 경기가 중단된 3라운드 6번 홀까지만 해도 켑카가 람에게 4타 앞선 선두를 달렸다. 하지만 잔여 12홀을 더해 하루에 30홀을 도는 마지막 날 마라톤에서 람은 거침없이 경기를 뒤집었다. 3라운드 잔여 경기에서 격차를 2타로 좁혔고 4라운드에 버디 4개와 보기 1개로 3타를 줄여 3타를 잃은 켑카를 제압했다.

4라운드 네 번째 홀에서 공동 선두로 올라선 람은 8번 홀(파5)에서 정교한 어프로치 샷을 앞세운 탭 인 버디로 2타 차로 달아났다. 13번 홀(파5) 버디에 이은 14번 홀(파4) 버디가 결정적이었다. 람은 티샷을 오른쪽 나무들이 있는 방향으로 보냈지만 두 번째 샷으로 하이라이트를 만들었다. 핀 왼쪽에 떨어진 볼이 그린 경사를 타고 절묘하게 홀 쪽으로 굴러 90㎝에 멈췄다. 가볍게 버디를 잡아 4타 차로 도망갔다.

마스터스의 관중은 미국인이 대부분이지만 미국인 켑카보다 스페인 선수인 람을 응원하는 소리가 훨씬 크게 들렸다. 켑카는 지난해 6월 출범한 사우디아라비아 자본의 LIV 골프 소속이고 람은 미국 투어를 떠나지 않은 ‘PGA 투어 수호자’다. 메이저 4승의 켑카가 3라운드 선두를 우승으로 연결하지 못한 것은 이번이 처음. 동시에 LIV 선수의 메이저 첫 우승도 물거품이 됐다.

람은 1라운드 첫 홀에서 4퍼트로 더블 보기를 범하고도 넉넉하게 우승하는 저력을 과시했다. PGA 투어는 첫 홀 더블 보기 뒤 우승이 마스터스 사상 처음이라고 했지만 1952년 샘 스니드(미국)의 사례가 있다.

람은 첫 홀에서 2타를 잃었으나 이후 17개 홀에서 9타를 줄여 1라운드를 공동 선두로 마쳤다. 첫 홀 뒤 그는 바예스테로스를 떠올렸다고 한다. 바예스테로스도 마스터스에서 4퍼트 실수를 했었다. “놓치고 놓치고 또 놓쳤고 넣었다”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우상의 태도를 새기면서 ‘71홀이 남았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생애 첫 마스터스 우승 확정 뒤 감격해 하는 욘 람. AP연합뉴스

‘명인’들만 모인 무대에서 2타를 잃고 시작하는 것은 엄청난 핸디캡이다. 하지만 첫날에 이를 극복하고도 남는 결과를 낸 람에게는 그때부터 더블 보기가 핸디캡이 아니라 어드밴티지였다. 다가올 위기에 내성으로 작용할 터였다. 그래서 최종 라운드를 앞두고 2타 차 열세쯤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람은 최종 라운드를 돌아보며 “바예스테로스가 하늘에서 보고 있다는 생각으로 경기했다. 그저 편안했다”고 했다. 마스터스 2승과 디 오픈 3승을 거둔 바예스테로스는 1980년대 최고 스타였다. 특유의 카리스마로 필드를 지배했고 신기의 웨지 플레이로 위기에 강한 골프를 했다. 2007년 은퇴한 뒤 이듬해 뇌종양 진단을 받고 2011년 54세로 세상을 떠났다.

마침 10일은 바예스테로스의 66번째 생일이다. 람은 “그의 마스터스 2승 40주년인 해에, 그것도 그의 생일이자 부활 주일에 마스터스 생애 첫 승을 해냈다. 의미들로 가득한 우승”이라고 했다.

한편 출전한 4명 전원이 컷을 통과하는 기록을 쓴 한국 선수들은 모두 톱 30에 들었다. 임성재와 김주형이 2언더파 공동 16위에 올랐고 이경훈은 공동 23위(1언더파), 김시우는 공동 29위(1오버파)로 마감했다. 디펜딩 챔피언 스코티 셰플러(미국)는 4언더파 공동 10위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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