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리포트]법적 조치 칼 빼든 양대 N사...모방·유출 강경대응
넥슨, 자사 프로젝트 유출 엄단
이직 개발자 IP 재활용 관행 경종
게임 저작권 인식 재확립 의지
국내 게임 산업의 메카 판교가 법적 분쟁으로 들썩이고 있다. 양대 N사로 손꼽히는 엔씨소프트와 넥슨이 저작권 침해와 영업비밀 유출 관련 강경대응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동안 게임 시장에서는 장르적 유사성에 대해 관대한 해석이 주를 이뤘다. 캐릭터와 스토리 등 직접적인 지식재산(IP) 침해가 아니라면 게임 진행 방식과 주요 시스템을 비슷하게 설계한 '라이크' 게임은 셀 수 없이 많이 등장했다. 게임 개발을 총괄한 책임자나 주요 개발자가 회사를 옮겨 동일 장르의 신작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엔씨소프트와 넥슨의 소송 제기는 이 같은 게임 업계 관행에 경종을 울렸다. 단기간 내 판결을 이끌어내기는 어렵겠지만 더이상 손놓고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해석된다. 두 회사 모두 소송대리를 위해 국내 최대 로펌으로 손꼽히는 김앤장 법률사무소를 선임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리니지 라이크'에 칼 빼든 엔씨소프트
엔씨소프트는 아키에이지 워 출시 2주만에 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웹젠 'R2M'을 상대로는 서비스 수개월 이후에 소송을 제기했던 것과 비교하면 이례적으로 빠른 대응이다. 아키에이지 워가 매출 순위에서 리니지2M을 비롯한 엔씨소프트 주요 게임을 큰 격차로 앞서고, 이용자 관련 각종 지표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자 적극 조치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 국내 모바일 게임 매출 순위는 10위권내 대다수를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가 차지했다. 엔씨소프트 리니지 시리즈가 장기간 선두를 지키면서도 카카오게임즈 '오딘'을 비롯해 이른바 '리니지 라이크'로 분류되는 게임이 수시로 1등 자리를 넘본다.
올해는 아키에이지워 뿐 아니라 넥슨 '프라시아 전기', 위메이드 '나이트 크로우', 컴투스 '제노니아' 등 주요 게임사 대형 MMORPG 신작이 대거 출시되면서 더욱더 치열한 격전이 예고됐다. 엔씨소프트 입장에서는 신작 '리니지 라이크' 등장이 야기할 기존 리니지 시리즈 매출 악화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
엑스엘게임즈가 개발한 아키에이지 워는 기본적인 게임 진행 방식부터 세부적인 성장 요소까지 거의 모든 부분에서 리니지2M 이용자를 겨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엔씨소프트 또한 아키에이지 워가 장르적 유사성을 벗어나 엔씨소프트 IP를 무단 도용했다고 판단했다. 리니지2M의 고유한 시스템과 성장·전투 관련 핵심 콘텐츠 등을 카피 수준으로 표절했다는 지적이다.
카카오게임즈는 이에 대해 동종 장르 게임에 일반적으로 사용돼 온 게임 내 요소 및 배치 방법으로 관련 법률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모바일 코어 MMORPG 이용자층 플레이 환경을 고려해 대중적 방식의 간결한 인터페이스와 조작 방식을 통한 캐릭터 성장 및 다양한 콘텐츠 재미를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는 설명이다. MMORPG로서 장르적 유사성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와 카카오게임즈·엑스엘게임즈 간 소송의 판결이 나오기까지 최소 3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엔씨소프트가 원고소가를 11억원으로 설정했으나, 배상금보다는 리니지 라이크에 대한 문제제기 여론 형성과 경고 성격에 보다 무게중심을 뒀다는 분석이다.
국내 대형 로펌 게임·저작권 전문 변호사는 “과거 매치3 게임 판결(킹닷컴 사건)에서 대법원이 게임의 전체적인 시나리오, 구성에 대하여 저작물성이 인정될 수 있다는 취지의 판단을 한 바 있다”며 “해당 게임은 단순한 구조의 매치3 게임이었던 만큼 MMORPG 게임에 동일한 로직이 적용될 수 있을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넥슨, 프로젝트 유출 엄단
넥슨은 전 직원의 프로젝트 유출이 문제가 됐다. 신생 게임 개발사 아이언메이스에 재직 중인 넥슨 전 직원 A씨를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아이언메이스가 개발한 '다크앤다커'에 대해서도 미국 '디지털 밀레니엄 저작권법(DMCA)' 위반으로 신고, 스팀 플랫폼에서 판매 페이지가 폐쇄되도록 했다.
넥슨은 A씨가 넥슨 신규개발본부에서 진행한 신규 프로젝트 'P3' 관련 소스코드와 빌드 등 주요 개발정보를 외부서버에 무단 반출했다고 지적했다. 외부 투자 유치를 빌미로 프로젝트 구성원 퇴사를 종용해 아이언메이스로 소속을 옮기고 P3 개발정보를 도용해 다크앤다커를 개발했다는 주장이다.
넥슨은 다크앤다커에 프로젝트 P3와 동일한 리소스 파일 2338개가 적용됐다고 DMCA 신고 서류에 명시했다. 게임의 전반적인 디자인 콘셉트와 분위기, 시스템 역시 매우 유사한 것으로 봤다. P3의 데이터를 활용해 다크앤다커 캐릭터와 배경을 창조했다는 주장이다.
아이언메이스 측은 유출된 P3 에셋을 게임 제작에 사용하지 않았다며 넥슨이 제기한 의혹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다만 아이언메이스에 소속된 A씨가 넥슨 프로젝트 P3 팀장으로 재직했다는 것과 그가 재택근무를 하며 일부 코드를 개인 서버에 저장했다는 것은 사실로 인정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전반적인 판세가 아이언메이스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게임을 유통할 수 있는 채널 자체가 막혔다. 게이머 여론조차 전 회사 재직 중 개발에 참여한 프로젝트의 자산을 유출한 만큼 도의적 책임은 물론 법적 처벌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게 중론이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게임 개발자는 프로젝트 진척도와 성패에 따라 이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편”이라며 “다크앤다커 사건으로 저작권에 대한 인식과 개발자 도덕성을 다시 돌아보는 분위기가 형성됐다”고 말했다.
박정은기자 jepark@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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