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에 소외된 주민 없게 했더니 온 마을이 자녀육아 응원” [70th 창사기획-리버스 코리아 0.7의 경고]

2023. 4. 1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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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2.95명 나기마을의 비결
아이 낳으면 쏟아지는 육아지원 혜택 24개
주거·의료·일자리까지 전방위 복지 확대
아이없는 가족·노인에도 두루 혜택 노력
‘아이 행복은 곧 주민 행복’ 분위기 형성
오카야마현 가쓰타군 나기마을에 있는‘ 시고토엔 편의점’. 경력단절 여성이나 노인 등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초단기일자리부터 장기 일자리까지 중개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하면서 자녀를 돌볼 수 있게 장난감 등 시설을 구비하고 있다. 아래사진은 시고토엔 편의점에서 쌀을 포장하는 일을 하는 이나오카 마유미 씨. 김빛나 기자

나기마을(奈義町·나기초) 출산·육아정책은 주민 의견을 반영한 만큼 만족도가 높다. 나기초에서 30년 이상 거주한 구와무라 요시카즈 씨는 “아이가 자라기 좋은 마을이라 아이가 2~3명인 집이 많다”며 “자녀를 1명 키우는 부모도 다자녀 부모랑 어울리면서 ‘나도 더 낳아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육아시설뿐만 아니라 풍부한 의료제도·거주시설도 나기마을의 자랑이다. 5세, 1세 자녀가 있는 아구로 도모에 씨는 “18세까지 자녀의료비가 공짜”라며 “개인주택에 살고 있는데 주거보조금도 나와서 혜택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주민의 말처럼 나기초의 복지제도는 보육, 주거, 의료제도에 일자리 알선까지 다방면으로 이뤄지고 있다. 육아지원정책만 총 24개다. ‘나기 차일드홈’을 중심으로 일시 보육 ‘스마일’, 학부모와 보육교사가 번갈아 아이들을 돌보는 ‘다케노코(竹の子·죽순)’가 있다.

보육제도뿐만 아니라 지원금도 일본 정부가 제공한 것과 별도로 지원금을 편성하고 있다. 첫째 아이는 초·중·고등학교 비용이 다른 지역의 절반이고, 둘째 아이는 4분의 1, 셋째 아이는 무료다. 급식도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무상급식이다. 고등학생 자녀가 있으면 해마다 13만5000엔(우리 돈 약 135만원)을 지원받는다. 육아휴직에 들어가게 되면 생활보조금이 다달이 1만5000엔(약 15만원) 나온다. 난임부부에게는 최대 20만엔(약 200만원)이 지급될 수 있는데 정부 지원금을 뺀 금액의 2분의 1까지만 지원이 가능하다.

이러한 지원도 오랜 시간을 거치며 조금씩 늘린 결과다. 고등학생 지원금은 2007년에 처음 생겨 총 6번의 보완을 거쳤다. 내년부터는 해마다 24만엔(약 240만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풍부한 육아시설·의료제도·거주시설을 갖춘 나기마을은 2.95의 기록적 출산율을 기록하고 있다.[나기마을 공식 홈페이지]

파격적인 혜택이 가능한 비결은 무엇일까. 지자체의 뼈를 깎는 노력 덕분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복지예산 외에 다른 예산을 줄이고 또 줄인다. 올해 나기초 복지예산은 총 7억엔(약 70억원)이었고, 마을 운영에 필요한 예산 대부분이 복지에 쓰인다.

출산·보육정책을 확장하기도 한다. 노인이나 아이가 없는 가족이 ‘아이들에게만 투자한다’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일자리를 중개하는 ‘시고토엔(Shigotoen) 편의점’사업이 대표적이다.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싶지만 장시간 일자리를 원하지 않는 여성뿐 아니라 노인에게도 일자리를 알선한다. 이는 2019년부터 운영한 사업으로, 현재 280여명의 구직자가 등록돼 있다.

지난달 15일 방문한 ‘시고토엔 편의점’에서는 이나오카 마유미 씨가 쌀 포장을 하고 있었다. 이나오카 씨는 “자녀는 독립했지만 부모님이 아프셔서 돌봐야 하기에 오랫동안 일을 못한다”며 “납기일을 맞추는 일이라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 만족한다. 일한 지는 6년 정도 됐다”고 말했다. ‘시고토엔 편의점’ 소장은 “해마다 1000여건의 일자리 의뢰가 들어온다”며 “30분 만에 끝나는 일부터 수확기간 농사일까지 다양한 일자리가 있다”고 말했다. 집에 있는 독사를 잡아 달라거나 벌집을 제거해 달라는 독특한 의뢰도 있었다고 한다.

젊은 여성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스마트폰 학습지도’다. 인구 40%가 고령층인 나기마을에는 스마트폰 조작을 어려워하는 노인이 많다. 시고토엔 사무실에서 주로 수업하는데 장난감 등 간단한 놀이시설을 구비하고 있어 육아와 일을 둘 다 할 수 있다. 소장은 “예를 들어 수업에 참석하는 젊은 엄마가 3명이라면 2명은 수업을 하고 나머지 1명은 바로 옆에서 아이를 돌보는 식”이라고 설명했다.

소외된 주민을 줄이려는 노력은 나기마을 전반에 깔린 ‘마을사람들이 자녀육아를 응원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아동복지의 혜택을 고령층에게도 적용해 ‘아이의 행복을 곧 주민의 행복’으로 만든 것이다.

2012년 나기초가 선언한 ‘육아 응원 선언’

관공서 선언도 분위기 조성에 한몫했다. 2012년 4월 나기마을은 ‘육아 응원 선언’을 발표했다. 관공서가 안정적인 육아를 위해 든든한 후원자가 되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0년이 더 넘은 일이지만 형식에 그치지 않고 해마다 육아예산을 3000만엔(약 3억원)씩 늘리고 있다.

물론 한계도 있다. 나기마을 복지제도와 정책을 전체 일본 그리고 한국에 적용하기는 어렵다. 소도시와 달리 외교,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 예산을 투입해야 하는 정부가 예산 대부분을 복지에 투자하는 나기초 시스템을 도입하기엔 거쳐야 할 과정이 많다. 국가예산 전반을 손봐야 한다. 국민적 합의도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 전문가들도 나기마을이 전체 일본 상황을 대변하지는 않다고 말한다. 닛세이기초연구소 소속인 아마노 가나코 인구동향 시니어 연구원은 “나기마을 합계출산율이 높더라도 전체 일본 인구에 의미 있는 영향을 주진 못한다“며 ”지역 소도시 사례를 도쿄 등 대도시에 적용하기도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나기마을은 일본뿐만 아니라 한국 그리고 전 세계와 비교해도 ‘아이 기르기 좋은 마을’이다. 당장의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꾸준한 노력으로 일본을 통틀어 가장 높은 출산율을 기록했다. 주민 의견을 듣고 정책에 부족한 점을 보완해 실효성 있는 복지를 만든 것, 모든 주민이 아이를 가진 부모를 응원하도록 복지제도를 확장한 것 모두 나기마을만이 해낸 일이다.

한국은 그동안 수십조원의 예산을 투입해 무수한 제도를 만들어도 늘 “실효성이 없다“ ”피부에 와 닿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판도를 뒤흔들 파격적인 정책이 아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도(正道)를 추구해 성공한 나기마을은 한국에 분명 시사하는 바가 있다.

오카야마현=김빛나·신혜원 기자

binna@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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