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롯 구사한 수필은 이렇게 다르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2023. 4. 10. 11:07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 ‘원재료’ 재구성하는 플롯 기법, 산문의 흡인력 강화

[머니투데이 더리더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리더의 글쓰기 원포인트 레슨] ‘원재료’ 재구성하는 플롯 기법, 산문의 흡인력 강화

[편집자주] 많은 리더가 말하기도 어렵지만, 글쓰기는 더 어렵다고 호소한다. 고난도 소통 수단인 글을 어떻게 써야 할까? 리더가 글을 통해 대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노하우를 구체적인 지침과 적절한 사례로 공유한다. <백우진의 글쓰기 도구상자>와 <일하는 문장들> 등 글쓰기 책을 쓴 백우진 글쟁이주식회사 대표가 연재한다. <편집자주>

▲백우진 글쟁이㈜ 대표

#1. 동화책을 처음 읽은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2. 소년 시절의 나는 집에서 광화문 교보까지 자주 걸어다녔다. (중략) 그래도 차비를 아껴서 모으면 시집을 사서 모을 수 있었다.
#3. 중학교 올라가기 전 어느 겨울날, 대학생인 막냇삼촌이 우리 집에 왔다. (중략) 삼촌은 포니2의 옆자리에 나를 태우고 시내로 향했다.
#4. 그때가 아마 스물넷 즈음이었고, 이제껏 살면서 가장 처절했던 시절이었다. (중략) 나는 곰팡이처럼 방 안에 콕 박혀 독하게 퍼져갔고, 그때 어느 책을 우연히 읽기 시작했다.
#5. 위인전이 물리기 시작했다.

이들 인트로(도입부)는 산문집 〈우리 사이의 순간들〉에서 인용됐다. 이 산문집은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2022년 개점 42주년을 맞아 기획했다. 필자는 소설가, 시인, 수필가 등 27인이다. 인용된 인트로는 모두 책과 얽힌 추억을 들려준다. 인트로 다섯 건이 모두 동일한 유형에 속한다고 여겨지는지? 다시 읽어보자. 5번 ‘위인전이 물리기 시작했다’는 산문은 이야기를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다. 작가는 ‘부모님이 언제 위인전을 사 주셨는데, 어느 정도 읽은 상황에서 어떤 계기가 발생했다’는, 그 앞 단계를 생략했다.

이 산문 중 생략된 이야기의 발단은 이 인트로에 이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다음과 같이 서술된다. 위인전은 그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큰맘 먹고 할부로 구입한 수십 권 시리즈였다. 작가는 몇 달간 위인전을 듬성듬성 읽었다. 그러고선 결론을 내렸다. 자신은 결코 위인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위인처럼 고단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고. 작가는 곧 다른 책을 만날 수 있었다. 동네에 막 생긴 도서대여점의 만화책이었다. 위인전이 물린 작가가 다른 작가들처럼 썼다면 글은 다음과 같이 전개됐으리라.

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큰맘 먹고 수십 권 위인전을 할부로 구입했다. 몇 달간 위인전을 듬성듬성 읽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위인전이 물리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곰곰 생각한 끝에 결론을 내렸다. 나는 결코 위인이 될 수 없을 것이고, 위인처럼 고단하게 살고 싶지도 않다고. 나는 곧 다른 책을 만날 수 있었다. 동네에 막 생긴 도서대여점의 만화책이었다.
시간 순 이야기의 첫 문장보다 재구성한 산문의 첫 문장이 더 눈길을 끈다. 재구성한 산문의 인트로가 더 독자의 궁금함을 끌어들인다. 다섯째 산문에는 플롯 기법이 구사됐다. 플롯이란 ‘문학 작품에서 형상화를 위한 여러 요소를 유기적으로 배열하거나 서술하는 일’로 정의된다. 이 정의 중 ‘유기적으로 배열하거나’는 ‘재구성해’라고 하는 편이 더 낫다.

플롯 짜기는 이야기 원재료를 재구성하기이다. 원재료는 시간 순서로 감춤 없이 펼쳐진다. 이를테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무엇을 어떻게 했는데, 다음 날 다른 일이 벌어졌고, 다른 사람은 그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고 등등을 다 담아낸다.

기법: 플래시백, 건너뛰기, 지연 등 다양
원재료를 재구성하는 기법으로는 특정한 장면이나 사실, 사건을 인트로로 던진 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플래시백이 있다. 다섯째 산문이 이 기법을 구사했다. 다른 기법으로는 사건의 일부를 건너뛰기가 있다. 이야기의 전모를 들려주는 대신 등장인물 각각의 관점에서 부분 부분 서술하는 유형도 있다.

독자의 흥미를 더 돋우기 위해 뜸을 들이는 지연의 플롯도 있다. 또는 이야기의 쐐기돌(아치의 정점에 있는 돌)을 설명 없이 서두에 배치하는 플롯도 있다. 독자는 그 쐐기돌이 전개되는 이야기와 어떻게 맞추어지는지 물음표를 곤두세운 가운데 글을 읽게 된다.

김유정의 단편소설 〈동백꽃〉이 바로 거슬러 올라가기 기법으로 쓰였다. 이 단편소설의 첫 문단은 “오늘도 우리 수탉이 막 쪼이었다”로 시작한다. 이어 덩치 작은 ‘우리 수탉’을 쪼는 놈이 오소리같이 실팍한 점순네 수탉이고, 이 일방적인 싸움은 점순이가 나를 약올리려고 붙여놓았으리라고 짐작한다.

점순이가 나를 향해 심술을 부리는 이유는 ‘나흘 전 감자 쪼간만 하더라도 나는 저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은 없다’로 시작하는 문단에서 비로소 서술된다. 점순이가 뒤에서 다가와 새살거리더니 내게 군 감자 세 알을 내밀었는데, 나는 퉁명스럽게 밀어버린 것이었다. 쐐기돌 사례. 플롯 짜기의 거장 켄 폴릿은 중세를 무대로 한 대하소설 〈대지의 기둥〉 서두에서 다음과 같은 역사 사실을 보여준다.

1120년 11월 25일 밤, 잉글랜드로 항해 중이던 화이트 십 White Ship이 바플뢰르 연안에서 침몰해 한 사람을 제외하고 전원 사망했다…… 그 선박은 당대 조선업자들에게 알려진 온갖 설비를 갖춘 최신형 해상 운송선이었다…… 이 난파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것은 상당수 유명 인사들이 승선해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왕세자 말고도 왕가의 서자 두 사람, 백작과 남작 몇 명, 그리고 대부분의 왕실 사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사건의 역사적 의미는, 이제 헨리 왕에게는 확실한 후계자가 남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헨리 왕의 서거 이후 왕위계승을 둘러싼 분쟁이 야기되었고 한동안 무정부 상태가 이어지게 되었다. A. L. 풀, 〈토지대장에서 대헌장에 이르기까지〉
폴릿은 이 쐐기돌에 이어 첫머리에 다른 의문의 사건을 던진 뒤 막바지에 이르도록 설명하지 않으면서 독자의 관심을 팽팽하게 잡아당긴다. 그는 끝에 이르러 ‘침몰의 의혹’과 ‘의문의 사건’을 연관지으면서 의문을 모두 풀어 보인다. 플롯은 문학뿐 아니라 시간 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 드라마나 영화 같은 장르에서도 활용되는 기법이다.

플롯 짜기는 역사 서술에도 활용 가능하다. 개인사나 기업의 역사, 나라의 역사를 서술할 때에도 사건의 흐름을 재구성할 수 있다. 하이라이트를 앞세우는 기법도 쓸 수 있고, 갈림길에서 시작하는 기법도 가능하다. 일례로 〈유럽지명사전〉의 아테네 편 중 역사를 소개한 다음 글을 든다. 내가 쓴 이 글은 아테네가 서구 문명에 기여한 바와 전성기를 앞세웠다.

그 다음에는 시간 순으로, 즉 신화 속 아테네에서 시작해 유적으로 확인되는 아테네의 기원 등을 전개했다. (괄호 속 단어나 문구는 인용하면서 추가했다.) 신화 속 아테네에서 시작한 뒤 아테네 도시국가의 기원 등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한 글은 십중팔구 단조로울 것이다.

아테네의 역사(의의) 서구 문명의 두 축인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중에서 헬레니즘의 요람이 된 도시이다. 헬레니즘은 세계시민주의, 개인주의, 그리고 자연과학 발달을 특징으로 한다. 헤브라이즘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전통을 가리킨다.(전성기 두괄식) 아테네는 기원 전 5세기(BC 480~BC 404)에 전성기를 구가했다. 이 시대를 ‘5세기 아테네’라고 부르고, 그중 일부 시기는 ‘페리클레스의 시대’라고 부른다. 이 시대는 ‘아테네의 황금시대’라고도 불렸다.(전성기의 정치적 토대) ‘5세기 아테네’는 BC 478년 아테네가 페르시아와의 3차 전쟁에서 승전하고 페르시아의 재침공에 대비하기 위해 다른 도시국가들과 델로스 동맹을 맺을 무렵 시작되었다. 아테네는 점차 델로스 동맹의 맹주로 올라서며 다른 도시국가들에 대해 지배력을 행사했다.(철학과 문학, 예술) ‘5세기 아테네’는 민주주의 정치체제를 발전시켰고 정치적 안정을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하는 가운데 철학과 문학, 예술이 꽃피었다.(중략)(전성기 인구: 중략)(페리클레스 시대 건축과 조각) 5세기 아테네의 중심 시기가 페리클레스의 시대라고도 불리는 데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 페리클레스는 BC 460년부터 BC 429년 병으로 숨지기까지 30여 년 동안 아테네를 통치했다. 그는 페르시아 전쟁으로 파괴된 아테네의 재건을 지휘해, 파르테논 신전을 비롯한 장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세워지고 조각으로 장식되도록 했다.(신화 속 아테네: 중략) (유적으로 확인되는 아테네의 기원: 중략) (그리스 중심 도시로 부상: 중략)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의 민주주의 개혁: 중략) (페르시아 격퇴: 중략) (전성기 구가와 델로스 동맹: 중략)(하략)출처: [네이버 지식백과] 아테네 [Athens] (유럽지명사전: 그리스)

지금까지 플롯을 주로 인트로 사례로 설명했다. 이로부터 플롯과 인트로의 관계가 나온다. ‘인트로는 잘 짜여진 플롯의 정점에 놓인다’는 것이다. 작가 방현석은 책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에서 “첫 문장, 첫 장면은 시작이 아니라 전체를 함축하고 규정한다”고 설명했다. 이 설명보다는 위의 관계가 더 적절하다고 본다.

서사 기법 중 플롯 짜기를 모른다면 독자를 흥미롭게 할 기회를 아예 활용하지 못한다. 플롯 짜기는 소설 같은 문예적인 장르에만 활용되지 않는다. 당신의 이야기를 담는 수필 또한 플롯을 구사하기 적합한 장르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백우진 글쟁이(주) 대표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