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연쇄 살해사건을 다루는 두 여성 기자의 추적기[플랫][플랫 pick]

플랫팀이 새로운 시선과 시도로 완성된 콘텐츠를 ‘플랫pick’으로 추천합니다. 여성의 시각으로 세상을 담은 영상과 서적 등을 소개합니다. 이번 ‘pick’은 살인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 보다 두 여성 기자들의 사회를 향한 고군분투에 초점을 둔 영화 <보스턴 교살자> 입니다.

<보스턴 교살자>는 미국 보스턴 일대에서 1960년대에 발생한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총 13명의 여성이 목을 졸려 죽임을 당한 사건을 경찰이 아닌 기자의 관점으로 풀어낸 영화입니다. 지금까지도 이 사건은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이른바 미국판 <살인의 추억> 기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레타(키이라 나이틀리, 왼쪽)와 진(캐리 쿤)은 13명의 여성이 죽임을 당한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해나갑니다. 로레타는 불같이 돌격해나가는 반면, 진은 차갑게 냉정하게 사건을 파고듭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디즈니 플러스 제공

“기회를 주지 않으면 어떻게 경험을 쌓을 수 있죠?”

키이라 나이틀리가 연기한 ‘로레타’는 ‘레코드 아메리칸’이라는 보스턴 지역 신문사에서 패션이나 유명 정치인의 아내를 좇는 라이프스타일팀의 기자입니다. 그에게 ‘사건’이 주어지는 일은 없습니다. 사건은 모두 남성 기자들의 전유물인 시대였습니다.

로레타는 우연히 최근 벌어진 끔찍한 여성 살인 사건 3건의 공통점을 발견합니다. 기사를 써야 한다고 편집국장에게 말했지만 국장은 라이프스타일팀 영역이 아니라고 선을 긋습니다. 여성 살인 사건이 별일 아니라는 듯한 태도도 취합니다. 로레타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편집국장에게 기회를 달라고 당당히 요구합니다. “여자가 얼마나 죽어야 기사가 되는데요?”라고 편집국이 다 들을 수 있도록 크게 외칩니다. 사건이 단순하지 않음을 깨달은 국장은 또다른 여성 기자 ‘진’(캐리 쿤)을 붙여줍니다.

로레타는 불같은 성격으로 저돌적으로 나가고, 진은 이를 다독이며 냉철하게 사건을 밟아갑니다. 두 기자는 목숨까지 위협 받으면서도 사건을 추적해나갑니다.

로레타(키이라 나이틀리)는 편집국장(오른쪽·크리스 쿠퍼)에게 기회를 달라고 요구하고, 국장은 마지못해 취재를 수락하고 나중엔 로레타의 기사가 나갈 수 있도록 의견을 냅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진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범인인 것 같은 사람은 알리바이가 있습니다. 경찰과 사회는 누군가를 범인이라고 잡아들입니다. 그들은 다시 ‘안전한 세상’이 됐다며 서둘러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로레타는 여전히 미심쩍은데, 편집국장은 취재를 중단하라고 합니다. 로레타는 도저히 중단할 수가 없는데 말이죠.

살인 사건을 소재로 했지만 이 영화는 살인 사건을 추적해가는 롤러코스터 같은 과정 보다 두 여성 기자들의 사회를 향한 고군분투에 초점을 둡니다. 로레타는 사건을 추적해가면서 아이 양육을 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습니다. 1960년대 이야기인데 2020년대에 대입해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신문사는 연쇄 여성 살인 사건을 취재하는 두 여성 기자의 얼굴 사진을 신문에 실으면서 ‘신문팔이’에도 이용합니다. 두 기자가 살인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인데도 말이죠. 두 기자들이 “미친놈이 몇 놈인지 모르는데 우리가 죽게 생겼어요”라며 항의를 하고 나서야 얼굴 사진을 내립니다.

캐리 쿤이 연기한 진은 <보스턴 교살자>에서 선배의 ‘취재 스킬’을 보여줍니다. 디즈니플러스 제공

영화는 범인을 잡고 기자들이 특종상을 받는다든지 하는 극적이고도 행복한 결말을 안겨주진 않습니다. 실제로 지금도 범인을 잡지 못한 사건이니까요. 연출 및 각본을 맡은 맷 러스킨 감독은 “수사를 담당했던 형사들보다 두 저널리스트에 대한 이야기에 끌렸다”고 했습니다.

극적 쾌감은 없지만 시종일관 미스터리한 분위기 속에서 범인을 잡으려고 추적해가는 두 기자의 시선은 신선함을 주는 동시에 묵직한 무게감도 던져줍니다. 상영시간 1시간 53분의 영화로 디즈니플러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당찬 언니 지수 ★★★★★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땐 로레타처럼

알쏭달쏭 지수 ★★★★ 그래서 대체 범인이 누구야

▼ 임지선 기자 vision@khan.kr

플랫팀 기자 areumlee2@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