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의 최후 전선은 어디인가?

정의길 기자 2023. 4. 10.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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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 1년]⑦러시아 겨울 공세와 우크라이나 반격 모두 큰 성과 없어
이미 교착 국면 들어가 ‘동결된 전쟁’으로 갈 가능성 커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도네츠크 바흐무트 부근의 한 길에서 러시아제 비엠피 보병전투차량을 타고 이동 중이다. AFP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최대 격전지가 된 바흐무트가 러시아에 점령됐다는 주장이 지난 4월2일 나왔다. 러시아의 바흐무트 점령 공세를 주도하는 용병 그룹인 와그너 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은 이날 밤 늦게 바흐무트의 시 청사를 점령해 러시아 국기를 게양했다며 “법적인 의미”에서 이 도시를 점령했다고 주장했다고 <아에프페>(AFP) 통신 등이 보도했다. 그는 자신의 텔레그램에서 “시청과 도시 중심 전체를 장악한 부대의 지휘관들이 국기를 게양했다”며 러시아 국기 게양을 담은 동영상도 첨부했다.

우-러, 서로 바흐무트 점령했다고 주장

이에 우크라이나 총참모부는 “적은 바흐무트 공격을 멈추지 않았으나, 우크라이나 방어군은 수많은 적의 공격을 격퇴하며 용감하게 이 도시를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날에도 세르히이 체레바티이 우크라이나 동부군구사령부 대변인은 <로이터>에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의 것이고, 러시아는 아무것도 빼앗지 못했다”며 “그들은 화장실 같은 곳에 깃발을 게양했다”고 조롱했다.

이 장면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 전황을 상징한다. 지난해 5월부터 시작된 바흐무트 전투는 8월 들어 본격화하고, 연말부터는 러시아의 점령이 임박한 것처럼 보였으나 우크라이나가 여전히 지키고 있다. 러시아의 공격 앞에 위태롭지만 여전히 사수되는 바흐무트는 우크라이나의 위기와 저항을 상징한다.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포위하고 공격하나 함락을 못하는 상황도 우크라이나 전쟁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바흐무트 전선은 1년이 지나면서 교착상태로 들어간 우크라이나 전쟁의 양상을 드러낸다. 지난 연말부터 예상되던 러시아의 겨울 혹은 봄 공세가 있었는지도 불투명하고, 서방 쪽에서 기대하는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 역시 가능할지 불확실한 상황이다.

바흐무트 전투는 교착 국면인 전황의 속살도 보여준다. 시청 청사에서 러시아 국기 게양 논란이 보여주듯 러시아는 바흐무트 중심가를 점령하는 국면이다. 러시아는 어쨌든 바흐무트 전투에서 느리지만 진공을 해왔고, 이런 추세라면 함락은 시간문제로 보인다. 문제는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함락해도, 바흐무트 전투 결과가 어느 쪽에 유리하게 작용할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러시아 쪽은 바흐무트 점령은 도네츠크 전역을 장악하는 도약대가 될 것이라 본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방어선을 북서쪽(?)으로 약 50㎞ 떨어진 크라마토르스크-슬로비얀스크로 후퇴시켜야 한다. 러시아는 바흐무트 전투의 장기화를 통해 우크라이나를 소모전으로 끌어들여 전력을 소모시켰다는 것이 전략적 성과라는 주장도 있다. 러시아의 바흐무트 공세가 강화되자, 미 국방부 등에서는 그 도시가 전략적 가치가 없다고 공언해왔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성공적으로 격퇴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바흐무트를 사수하다 결국 막대한 전력을 소모하는 한편 다른 전선에서 전력 공백을 초래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바흐무트 시청에서 러시아 깃발 게양 논란 뒤인 지난 3일 친러 정부인 도네츠크인민공화국 대통령 보좌관인 얀 가긴은 “적들은 도시를 이미 상실했음에도 우크라이나군이 있는 외곽이라도 지키려 한다”며 “아르테모프스크(바흐무트의 러시아 지명)를 다시 장악하려고 예비군을 이동시킨다”고 말했다. 이는 우크라이나가 바흐무트 방어에 여전히 전력을 투입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겨울 공세와 반격, 끝없는 소모전으로

러시아가 바흐무트를 점령해도 상처뿐인 영광에 불과하다는 반론도 있다. 러시아의 바흐무트 공세는 전략적 가치가 없는, 병사들의 목숨을 희생시키는 인해전술에 그친다는 주장이 그동안 우크라이나와 서방 쪽에서 나왔다. 이는 지난 3월29일 미 하원 군사위 청문회에서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바흐무트 전투는 러시아에 “살육 축제”가 됐다고 증언한 일이 대표적이다. 밀리 의장은 “그들은 바흐무트 지역에서 엄청난 사상자를 겪고 있고, 우크라이나는 그들에게 많은 사망자와 파괴를 가한다”며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매우 값비싼 대가를 치르게 하는 아주 효과적인 지역 방어를 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러-우 양쪽의 군사평론가들은 러시아의 겨울 공세는 종식된 것으로 판단한다. 러시아 정보장교 출신이자 돈바스 내전에 관여한 이고르 기르킨은 <뉴욕타임스>에 “돈바스에서 겨울 공세는 끝났다”며 “우리는 겨울 공세가 실패로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의 군사전문가 올렉시이 멜니크도 이 신문에 러시아의 겨울 공세가 도네츠크 부흘레다르 전투에서 큰 피해 및 우크라이나의 바흐무트 사수 결정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 실패로 돌아갔다고 진단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바흐무트 공격을 주도하는 용병인 와그너그룹의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 깃발을 들고 있다. 프리고진은 자신의 부대가 4월2일 바흐무트의 시 청사를 점령했다고 주장했다. AFP 연합뉴스

그렇다면 이제 공은 우크라이나 쪽으로 넘어갔는가? 우크라이나는 반격 공세에 나설 수 있는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서방 쪽에서 사실상 감독하는 마크 밀리 미 합참의장은 하원 군사위 증언을 한 지 이틀 뒤인 3월31일 <디펜스 원>과 인터뷰에서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군을 점령지에서 몰아내는 것과 관련해 “올해 안 가까운 시기에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전망했다. 그는 “젤렌스키는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우크라이나 목표가 러시아를 우크라이나 점령지에서 몰아내는 것이라고 말했다”며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말하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러시아가 전략적, 작전적으로 “실패했고 현재는 전술적으로도 실패하고 있다”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에 가장 요구하는 장거리 정밀무기인 ‘육군전술미사일시스템’(ATACMS, 에이태큼스) 지원에 대해서도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군사적 관점에서, 상대적으로 우리도 에이태큼스가 거의 없다”며 “우리도 군비 재고를 유지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밀리 의장은 러시아가 바흐무트 등지에서 성과가 없으나 우크라이나도 점령지를 탈환할 가능성이 없고, 미국은 우크라니아 반격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장거리 정밀무기를 지원할 의사가 없다고 밝힌 것이다. 이는 교착 국면에 빠진 우크라이나 전쟁 전황과 러-우 양쪽의 딜레마를 확인한 것이다. 밀리 의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우크라이나가 크림반도를 탈환하고 모든 러시아 병력을 축출한 가능성은 “조만간 거의 없다”며 더는 무고한 학살을 막기 위해 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표명해왔다.

밀리 의장의 평가는 우크라이나 반격 공세가 사실상 가능하지도 않고, 성과도 없을 것임을 시사한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반격 공세가 가능하고 성공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 현재 빼앗긴 땅 탈환도 어려워

첫째, 우크라이나는 장거리 정밀무기로 먼저 러시아 방어선과 후방을 타격해야 한다. 통상 미국 등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침공 작전은 압도적 제공권을 바탕으로 공습을 통해 적의 전선을 먼저 초토화한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공군력이 없기 때문에 장거리 정밀무기가 필요한데, 밀리 의장이 밝힌 대로 에이태큼스 등 장거리 정밀무기를 확보할 가능성이 조만간 없다.

둘째, 장거리 무기로 러시아 진지와 후방을 때린 뒤 전차, 장갑차 등을 앞세워 적의 진지를 돌파해야 한다. 하지만 서방이 지원하기로 한 독일의 레오파르트-2, 미국의 M1 에이브럼스 등 핵심 전차는 기껏해야 100대 정도이고, 그마저 훈련 등을 감안하면 연말께나 기동이 가능하다.

우크라이나는 이런 두 가지 전제 조건 없이 러시아 전선을 돌파하는 성공적인 반격 공세를 펼칠 수 없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은 군사전문가들을 인용해 보도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반격 공세가 예상되는 헤르손-자포리자를 잇는 전선뿐 아니라 크림반도로 이어지는 도로와 반도 주변에 참호, 대전차장애물, 용치 등을 빽빽하게 만들어놓았고, 이를 보여주는 항공사진 등을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3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가 장거리 정밀무기와 전차 등의 충분하고 압도적인 지원 없이는 러시아의 이런 방어전선을 돌파하기는 불가능하고, 엄청난 피해만 입을 것이라고 신문은 지적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지난 3월30일 <에이피> 통신과의 단독 회견에서 서방으로부터 무기, 탄약, 훈련 제공이 우크라이나의 항쟁 지속에 사활적이고, 추가적 지원이 없다면 우크라이나는 패배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미 육군 중령 출신의 군사전문가 대니얼 데이비스는 군사 전문 사이트 <19포티파이브> 4월4일자 기고에서 우크라이나가 “성공적인 봄 공세를 펼친다 해도 패배의 무대를 만들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지난 1년 동안 전쟁으로 가용 병력이 절대 부족하다며, 성공적 반격을 펼친다 해도 이는 남아 있는 가용 병력을 소모해서 오히려 러시아 반격에 더 취약해질 것이라 경고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현재 바흐무트 등 동부전선에서 경험 없는 징집병을 동원해 간신히 방어하는 사이 약 8만 명의 병사가 중부지역 안전지대에서 나토의 장비와 훈련을 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격 공세에는 이 병력을 동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반격 공세가 가장 효율적이려면, 러시아의 돈바스 점령지와 크림반도를 잇는 육로 회랑을 끊어버리기 위해 자포리자-메리토폴을 잇는 남북으로 진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러시아의 방어전선을 감안할 때 이 공세가 성공하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우크라이나가 봄이나 여름에 성공적인 반격 공세를 펼쳐도 마지막 남은 공세 전력을 소모할 가능성이 커서 그 후 오히려 러시아의 포위와 반격으로 전황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크라이나의 공세는 한 번만 기회 있을 것”

우크라이나의 병력 부족은 <워싱턴포스트>의 지난 3월13일 ‘우크라이나, 숙련된 병력과 군수품 부족으로 비관주의가 점증’, <월스트리트저널>의 3월23일 ‘전쟁 1년, 우크라이나 병력 동원 난관에 직면’이라는 보도 등 서방 언론에서도 최근 부쩍 지적되고 있다.

체코군 참모총장 출신으로 나토 군사위원장을 지낸 페트르 파벨 체코 대통령은 지난 3월19일 “우크라이나가 반격 공세를 결정한다면 오직 한 번의 기회만 있을 것”이라며 “이것이 실패하면 다음 공세를 위한 자금 지원을 받기가 극도로 힘들 것이다”고 전망했다.

러시아의 겨울 혹은 봄 공세나 우크라이나의 향후 봄 혹은 여름 공세 모두 사실상 존재했거나 가능한지도 불확실할 정도로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제 교착 국면에 들어섰다. 이 전쟁이 결국 ‘동결된 전쟁’으로 가고 있다는 시사이기도 하다. 러시아로서는 점령지 굳히기에 들어갔고, 우크라이나나 서방은 러시아 괴롭히기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정의길 <한겨레>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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